물고기, 안락사로 보내야 할까

정향오일

by 김서현


35KLXSJR362UXW6OC6ABKZ4MLI.jpg?type=w773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별 고민 없이 '죽여주는 여자'라고 답한다. 볼 때마다 마음이 먹먹하고 고통스러운 영화다. 때로는 앞통수와 뒤통수를 동시에 얻어맞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할 만큼 보기 괴롭다. 그럼에도 종종 본다. 주인공은 말 그대로 ‘죽여주는 여자’다. 주인공 ‘소영’은 중풍에 걸린 노인과 인지증 노인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죽음’을 도와주길 바란다. 병들고 외로운 육신의 괴로움과 존엄한 인격을 잃어간다는 공포가 죽음을 불렀다. 안락한 삶과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물고기와 함께 하는 동안 정말 많은 죽음을 봤다. 어려서, 약해서, 장애가 있어서, 병에 걸려서 수많은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 모든 생명은 지엄하고 경중이 없지만 마음 속에 상흔으로 남는 죽음과 체념한 채 받아들이는 죽음이 있다. 마음 속 깊은 상흔으로 남은 죽음들의 많은 경우에 ‘안락사’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물고기도 안락사를 할 수 있다. 물고기의 안락사에는 정향오일을 쓴다. 인도네시아산 정향나무의 꽃을 짜서 만든 오일인데, 항산화 기능이 있어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유용한 용도로 쓴다. 물고기에게는 전혀 다른 효과를 내는데, 정향오일 속 유게놀(eugenol)이라는 정유성분이 마취효과를 낸다. 세 방울로는 수술적 마취효과를 낼 수 있지만 거기서 딱 한 방울을 더 넣게 되면 마취가 온몸에 퍼지면서 조용히 잠이 들고 죽음에 이른다.


OaPdsrDCBu8tjbTdI%EF%BC%BF9TETS47%EF%BC%8Do.jpg%EF%BC%BFbrunch.png?type=w773 수컷 베타 '코코'



내 인생에 두 번째로 초대했던 물고기의 이름은 '코코'였다. 코코는 너무 아름답고 귀여운 물고기였는데, 처음 온 때 뺨에 아주 작은 종양을 가지고 있었다. 키우다 한참 후에야 발견한 종양은 1년여에 걸쳐 아주 천천히 자랐다. 나는 마침 기회가 있어 어의사에게 코코의 문제에 대해 상담했다. 어의사는 항생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단 이야기만 했다. 수명이 고작 2년밖에 되지 않는 물고기 베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차라리 돈을 내고 수술이라도 할 수 있으면 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코는 긴 시간 동안 비늘의 색이 변했다. 시간이 흐르며 투명했던 지느러미는 마치 쪽빛 물감 한 방울 떨어진 물처럼 아름답게 푸른 색으로 물들어갔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내 기억 속 가장 강렬한 모습은 코코가 최고로 아름다웠던 때가 아니라 가장 아픈 때다. 종양이 터지기 직전, 길고 너덜거리지만 비단 같은 지느러미를 수초에 누이고 가만히 있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왜 지금에까지 이르렀을까, 얼마나 힘들까, 나는 왜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무력감을 느꼈다.


코코의 종양이 자라고 또 자라는 동안 수십 번을 고민했다. 정향오일을 살 것인가? 내가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력하게 기다리기와 정향오일로 잠들 듯 죽음으로 삶을 끝내는 것 두 가지였다. 나는 결국 정향오일을 사지 못 했다. 어쩔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종양은 자라고 또 자랐고 끝내 터졌다. 코코가 죽을 것을 알았음에도 죽음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지 못 했다.


clove%EF%BC%8D5169673%EF%BC%BF1920.jpg?type=w773 정향나무 꽃.


가끔 반려하던 물고기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길 본다. 커뮤니티에서 본 한 사람과, 유튜브에서 본 한 사람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커뮤니티에서 본 사람은 본능적으로 물고기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때, 어떻게든 살려보려 노력하다 포기한 후 이틀에 걸쳐 잠도 자지 않고 죽음을 함께 기다렸다고 한다. 인터넷에 거칠게 쓴 글이었지만 그의 절망에 빠진 마음이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유튜브에서 본 사람은 심각한 솔방울 병에 걸려 고통에 몸부림치는 금붕어를 정향오일로 보내주고 울고 있었다. 죽음을 맞이한 두 물고기의 마지막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한 물고기는 죽음을 기다려주는 사람과 시간을 보냈고, 한 물고기는 일순간 죽음으로 고통에서 해방했다.


여러 이유로 존엄사와 관련한 글을 몇 번인가 썼을 때 나는 아주 긍정적인 태도로 썼다. 나 또한 고통 속에서 삶을 연명하고 싶지 않고, 가장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고 싶기 때문이었다. 물고기들은 어떨까? 어떻게든 물고기를 살려보려 어쩌면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는 약욕을 하고 어항을 뒤엎는 동안 끝없는 딜레마에 시달린다. 물고기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뭐라고 할까? 나를 죽여달라고 할까, 아니면 나는 더 살고 싶다고 할까? 둘 다 아니라면 무슨 말을 할까. 무서워서 듣고 싶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듣고 싶다.

keyword
수, 일 연재
이전 02화달팽이, 모순의 연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