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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Apr 27. 2022

어쩌다, 달팽이


   어쩌다 달팽이를 키우게 되었다.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달팽이는 먹은 음식에 따라 똥의 색깔이 달라진다. 빨간 파프리카를 먹으면 빨간 똥을, 노란 파프리카를 먹으면 노란 똥을 싸는 달팽이. 우아하게 파프리카를 먹고 알록달록 예쁜 색깔의 똥을 싸는 달팽이라니! 그렇다면야 '한번 키워볼 만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예상대로 달팽이는 키우기 쉬웠고 조용했다. 처음엔 컬러 똥을 볼 생각에 비싼 파프리카를 몇 번 주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주로 상추를 주게 되었고 등 껍질을 단단하게 한다기에 가끔은 달걀 껍데기를 부수어 주기도 했다.


   달팽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는 광진구청에서 지원하는 도시농부 교육프로그램에 지원했고 운 좋게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그해 여름, 도시농업 선생님들과 함께 광장동 자투리 텃밭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방울토마토, 상추, 고추, 열무, 쪽파 등등 여러 가지 작물을 재배했다. 덕분에 달팽이도 매주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었다.


   농약을 치지 않는 친환경 텃밭이라 그런지 아주 크기가 작은 귀여운 달팽이들이 많았다. 내가 달팽이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유달리 달팽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아이들을 몇 마리 데려고 와 집에서 키우는 달팽이의 집에 넣어주었다. '종류는 다르지만 먼 친척들이니 너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려무나.' 하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엄마 달팽이와 새끼 달팽이들 같다며 즐거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죽었다. 사육통 안에 텅 빈 달팽이 집만 남긴 채, 집주인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는 달팽이의 죽음을 자연사라고 생각했다. '사는 환경이 달라지니 적응을 못 하고 죽고 말았구나.'라고 말이다.


   달팽이 죽음에 진상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 텃밭에서 데려온 달팽이 한 마리가 보이지 않기에 달팽이 사육통 안을 부지런히 눈으로 훑던 중이었다. 작은 달팽이는 바로 거기 있었다. 커다란 백와 달팽이의 주둥이 아래.


 끈적끈적한 굴을 작은 달팽이의 몸에 밀착한 채, 1만 개가 넘는 이빨로 디 작은 달팽이를 쪽쪽쪽 빨아대고 있는 주먹만한 달팽이의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어린 시절, 대공원에서 잘 빠지지도 않는 소라를 먹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며 소라 껍데기를 빨아 대던 나처럼 달팽이는 최선을 다해 동족을 빨아 대고 있었다.


   몇 년 전, 삼촌이 기르던 햄스터가 같이 사는 친구의 어깨를 감싸 쥐고 그 머리통을 씹어 먹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 동족끼리 잡아먹는 동물은 절대 키우지 말아야지 결심했었다. 그랬던 내가 '초식동물'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달팽이의 처절하고 잔인한 동족 살해 현장을 보게 되다니!


   알고 보니 달팽이는 사람 피부의 각질도 뜯어 먹고, 지렁이도 잡아먹는 잡식 동물이었다. 다만 내가 초식동물로 오해하고 상추나 파프리카, 오이 같은 것만 주구장창 주었을 뿐.


   어쨌든, 나는 더 이상 달팽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도 지인 중에 달팽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피부도 좋아 상당한 미인이었던 그녀는 달팽이 점액이 피부에 좋아 예전에도 달팽이를 키웠었다며 좋아라했다. 그녀는 종종 달팽이를 얼굴이나 팔다리에 올려놓고 순수 100%의 점액으로 피부를 마사지하곤 했다며 다소 엽기적인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기도 하였다.


  달팽이는 죄가 없다. 잡식성인 달팽이에게 뭣도 모르고 '단백질이 풍부한 먹이'를 친하게 지내라며 공급해 준 내가 잘못이지. 햄스터 또한 잘못이 없다.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물이라 한 사육장 안에 한 마리씩만 키웠어야 하는 걸 삼촌은 몰랐다. 햄스터에게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햄스터는 동료가 아닌 적이었다.


   나는 동물들과 함께 살아보고자 하면서, 그 동물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었다. 나와 다른 대상과 같이 살가기엔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다. 달팽이 사건 이후로 살아있는 것은 더 이상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만난 안은영 선생님이 미니메추리의 알에서 새끼가 부화 되었다며 나에게 한번 키워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과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지금의 나는 나와 다른 낯선 존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다른 존재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일은,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여러 번 되새겨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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