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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켠서 Jun 05. 2022

오토바이 위에서의 여섯 시간

캄보디아 오토바이 생존기

대망의 그날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가슴이 쿵쾅거리는 게 느껴졌다.

오늘은 수도 프놈펜에서 남서쪽 바닷가 도시 캡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도합 30킬로그램쯤 될 짐을 챙겨 오토바이를 타고 처음으로 고속도로 위를 달릴 거라는 말이다.


아스팔트가 다 벗겨져 있던, 캡으로 향하는 어느 길에서


전날부터 우리는 걱정이 많았다. 우리가 직접 캄보디아의 고속도로를 경험해본 적 없으니 사전조사를 아무리 많이 했더라도 실제로는 어떨지 많은 것이 불확실했다.


일단 도시를 빠져나가는 게 관건이었다.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만에 프놈펜의 교통체증과 혼돈 그 자체인 도로 상황을 실감한 우리는 고속도로 위에서의 운전만큼이나 프놈펜을 빠져나가는 일이 어려울 것임을 깨달았다. 이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도로를 꽉 채운 차들과 엄청난 크기의 트럭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마다 테트리스 게임하듯 빈틈없이 들어서 있는 무수한 오토바이들을 뚫고 달려야 했다.


우리는 최대한 도로에 차가 많지 않고 태양이 덜 뜨거울 때 움직이자는 계획을 세웠다. 어두워지기 전에는 캡에 도착해야 했다. 프놈펜에서는 언제 가장 교통체증이 심한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대충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대가 가장 바쁠 것이라 짐작했다. 그래서 우린 그 시간을 피해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한 뒤 캡에 있는 숙소를 목적지로 찍고 이동하기로 했다.  



구글 지도에 뜬 예상시간은 약 3시간 20분.

오토바이로 로드트립을 할 때는 구글 지도의 예상시간보다 약 1.5배에서 2배가량 더 걸릴 거라는 말을 들은지라 우리는 도착까지 대략 5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5시간이라...... 우리가 달릴 길이 어떤 풍경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게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자면 A의 운전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캡으로 향하기 전날 밤, 왓프놈까지 짧게 나갔었던 드라이브가 좋았는지 그에게 자신감이 조금 붙은 게 느껴졌다. 시간이 늦어 도로는 한산했고 몸을 훑고 지나가는 기분 좋은 밤공기 덕분에 우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나름 편안한 자유도 만끽했었다.


나는 프놈펜에서 캡으로 가는 여정이 전날 밤에 나간 드라이브만큼 안전하고 쉽고 짧기를 바랐다. 특히, 안전하기를. 제 나름의 걱정에 잠긴 A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하게 그의 등을 두드려 줬지만 잠들기 전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했다. 사고 같은 건 이 여행에 없게 해 주세요.


아침이 됐다. 여섯 시에는 일어나려 했는데 피곤했는지 여섯 시 반이 다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양치를 하고 선크림을 목과 얼굴에 듬뿍 바르고 로드트립을 위해 한국에서 구매한 쿨토시도 장착했다. 그래 놓고 나는 A가 가져온 흰색 긴팔 티셔츠를 뺏어 입었지만.


레깅스까지 긴팔 긴바지로 꽁꽁 싸맨 나와 달리 A는 전날 산 하와이안 셔츠에 쿨토시, 그리고 반바지를 입었다.


꼼꼼하게 짐을 싸고 숙소에 두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잘 확인한 후 우리는 헬멧을 챙겨 방을 나섰다.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한껏 분주하게 깨어있는 도시가 느껴졌다. 따듯하고 상쾌한 아침 공기, 은은하게 맡아지는 풀과 나무 냄새,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낯선 언어들. 거리를 지나는 오토바이 엔진 냄새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소리가 묻힌다.


이틀 밤 밖에 묵지 않았는데도 정이 들었나 보다. 직원에게 웃으며 키를 건네고 인사를 나눴다. 오토바이에 타려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걱정이었는지 설렘이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라라, 근데 시작하기 전부터 작은 문제가 생겼다. A가 배낭을 멘 채 오토바이에 올라타자 내가 앉을 공간이 없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내 배낭을 메고 A는 두 명분의 옷가지가 든 40리터 크기의 배낭을 짊어진 채였다. 큰 배낭이 제법 무거웠기 때문에 A가 이걸 메겠다고 한 건데, 이 상태로는 내가 앉을자리가 없는 것이다. 어찌어찌 앉더라도 배낭의 부피 때문에 A와 너무 멀어져 그에게 길을 알려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배낭을 바꿔 메야했다. A는 자기가 메고 있던 배낭이 엄청 무겁다며 나를 걱정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운전을 할 A가 먼저 오토바이 안장 위로 자리를 잡고 내가 큰 배낭을 멘 채 그 뒤에 앉았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오토바이 위에서는 바람과 헬멧 때문에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에 A에게 길을 안내하려면 이 정도로 가까워야 했다.

구글 지도로 목적지를 설정하고 가장 쉬워 보이는 길을 선택했다. 백 퍼센트 정확한 건 아니었지만 실시간으로 현지 교통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중간중간 몇 가지 다른 경로도 보여주기 때문에 참고할 만했다.

아참, 캄보디아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에 미리 캄보디아 지도를 다운로드해두는 게 좋다! 중간에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지역을 지나게 될 수도 있는데 미리 지도를 다운받아 두면 인터넷 없이도 지도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A는 한국에서 이미 캄보디아 전체 지도를 다운로드해뒀고 나는 프놈펜과 캡, 캄폿과 시아누크빌을 포함한 지역을 저장해뒀다.


솔직히 스마트폰 기술이 이만큼 발전하지 않았다면 이런 로드트립은 엄두도 못 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무튼, 프놈펜 외곽의 도로에는 큰 트럭 등 도심보다 크기가 큰 차량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도시를 최대한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출발한 지 2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A가 스트레스를 받는 게 느껴졌다. 차선을 바꿔 다른 길로 들어서야 할 때마다 분주히 주위를 살피는 그가 극도로 긴장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A의 고향 영국엔 원형 교차로(로터리)만 있을 뿐 '교차로'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서울에서는 흔하디 흔한 교차로를 영국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더라.)


길을 따라 쭉 직진할 때는 그래도 좀 나았다. 다만 우리의 앞, 뒤, 그리고 양 옆이 모두 다른 오토바이들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안전거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점은 불안했다. 오토바이와 한 몸인 마냥 편안하게 운전 중인 현지 사람들이 신기했다. 나는 휴대폰을 오른손에 들고 길을 살피면서도 혹시 모를 소매치기를 조심하려 휴대폰 케이스에 붙인 그립톡을 더 꽉 움켜쥐었다.

숙소를 떠난 지 한 시간이 넘어가니 프놈펜과 그 외곽을 완전히 빠져나온 기분이 들었다. 한가해진 도로에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잠시, 작은 마을을 가로지르던 우리는 우리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았다는 걸 기억해냈다.


중간중간 갓길에 보이는 노점상들은 물이나 음료수를 팔았다. 우리도 작은 노점상에서 물을 사기 위해 잠시 오토바이를 멈췄다.

물을 마시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아 있었다. 아침 아홉 시가 넘어가자 배가 고팠다. 게다가 이젠 엉덩이와 어깨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A에게 부탁해 오토바이를 세웠다. 처음 프놈펜에서 출발할 때 등 뒤로 단단히 고정해 두었던 배낭을 고쳐 멜 수밖에 없었다. 가방끈을 어깨에 딱 맞게 고정하고 흉부와 허리 스트랩까지 채워 둔 상태였지만 20킬로짜리 짐을 몇 시간 동안 등에 짊어지고 있자니 어깨가 빠질 것처럼 아팠다. 어떻게 하면 내가 무게를 덜 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 가방끈을 일부러 느슨하게 늘려 배낭을 살짝 오토바이 위로 안착시키는 방법을 썼다.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지만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팠던 우리는 콜라나 과일이라도 먹고자 도로 옆으로 보이는 한 노점상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젊은 엄마가 아기를 안은 채 가게를 보고 있었다. 노점상 뒤에는 간이음식점처럼 해를 가리기 위한 천막 아래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의자 위에 가방을 두고 한숨 돌리며 땀을 닦는데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작은 금액의 현금이 없었다. 캄보디아 화폐도 아까 다른 노점상에서 물을 사느라 다 써버렸고 1달러 짜리도 없었다. 이런 걸 미리 생각하지 못했다니.


아기를 안은 채 우리를 흥미로운 듯 바라보던 젊은 엄마에게 5달러 지폐를 보이며 여기서 쓸 수 있는지 물었다. 그녀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 거슬러 줄 현금이 충분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A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배가 고파 힘이 나지 않는데 돈이 있어도 쓸 수가 없었다. 망연자실하며 혹시 먹을 게 있을까 하고 내 배낭을 열었는데 전날 A가 맛있어 보인다며 사뒀던 주스가 있었다. 뜻밖의 발견에 우리는 그래도 다행이라고 웃으며 젤리가 잔뜩 든 주스를 나눠 마시고 다시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


이외에도 우리는 셀 수 없이 갓길에 오토바이를 세워야 했다. 로드트립을 다녀온 사람들이 괜히 예상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거라는 말을 한 게 아니었다. 등에 멘 가방이 흘러내린다던지, 다리와 엉덩이가 너무 뻐근하다던지, 좋지 않은 도로 상황에 휴식이 필요하다던지, 오토바이를 멈춰야 하는 일이 계속 생겼고 어쩔 수 없이 시간은 더 지체되었다.


오토바이 위에서 세 시간쯤 지났을까, 제발 커피 한잔만 마시고 싶다며 풀 죽은 표정으로 운전하던 A가 어딘가로 고갯짓 하며 "커피!"를 외쳤다. 오토바이가 가르는 바람 소리에 A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뭐라고?"만 몇 번이고 반복해 물었다.


그가 오토바이를 갓길에 급히 정차한 후, 우리가 방금 지나온 곳을 가리켰다. 반대편 도로 옆으로 카페를 보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로에 차가 없기를 기다렸다가 오토바이를 돌려 A가 보았다는 카페로 향했다.


내 눈엔 그냥 가정집 같아 보였는데 A의 말처럼 커피를 파는 듯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오토바이를 주차시킨 뒤 주위를 살피자 간판 쪽에 작게 마련된 카페가 보였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듯 불이 꺼져 있었다.


우리가 타고 온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를 들었는지 집에 사는 분들이 밖으로 나왔다. A가 손으로 무언가를 마시는 시늉을 하며 그들에게 물었다. 커피?


카페로 안내받은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역시 카페 뒤로 보이는 가정집에 사는 가족들이 운영하는 카페인지 아이들도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흥미로운 듯 힐끔거렸다. 헬멧과 짐을 내려놓은 후 둘러보니 간단한 간식들도 파는 제대로 된 카페였다. 우리는 초코바 두 개도 같이 계산했는데 배가 고팠던 탓인지 너무 감격스러운 맛이라 재빠르게 먹어치운 후 두 개를 더 사 먹었다. 간식과 커피까지 총 2.25달러 밖에 되지 않았다.



A와 나는 진이 다 빠진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다가 서로를 쳐다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지치지만 이 정도는 감수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결국 이것도 우리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인지, 이유는 몰라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와 그곳에서 보이던 도로 풍경

카페에 앉아 20분쯤 쉬었더니 다시 도로 위를 달릴 힘이 났다. 정오에 가까워질수록 뜨거워지는 햇볕, 도로의 흙먼지와 불편한 엉덩이, 무거운 짐까지 더해 점점 지쳐가던 우리에게 너무 간절했던 휴식이었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묻는 A에게 지도를 보여주었다. 출발한 지 세 시간은 더 지났지만 이제 마침 절반쯤 왔다는 것에 헛웃음이 났다. 그래도 잘 쉬었으니 얼른 또 가보자고 다독여줄 서로가 있다는 게 좋았다.


다시 오토바이 위에 올랐다가 또 잠시 갓길에 멈춰 섰다가를 반복하며 우리는 점점 목적지인 캡에 가까워져 갔다.


그렇게 목적지까지 한 시간 반쯤 남았을까, 구글 지도에 각기 다른 경로로 세 개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프놈펜 외곽을 벗어난 후 우리는 계속해서 3번 국도(Highway 3)를 쭉 따라 내려왔는데, 이제 지도가 보여주는 세 가지 경로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지금 갈림길로 들어서지 않고 캄폿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를 계속해서 따라가다가 캄폿을 가로질러 캡으로 향하는 방법도 선택지였다. 곧 있을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선택하면 그보다 몇 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 조금 더 3번 국도에 머물다 다른 길로 들어서는 건 다른 방법보다 20분 정도 느린 길이기에 고르지 않기로 했다.


3번 국도를 타고 캄폿까지 갔다가 캡으로 가는 길이 가장 이상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캡을 여행한 뒤 캄폿으로 향할 거라 미리 도시를 구경하고 싶지 않았다. 운전자인 A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었기에 잠시 갓길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지도를 보여주었는데, A도 나와 생각이 같았다.


핀이 꽂힌 지점이 갈림길, 우리는 화살표 스티커를 따라 왼쪽에 난 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우리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난 작은 도로를 타기로 했다. 아스팔트가 엉망인 길도 지나고 한가한 도로 위에서 속도도 좀 높여보다가 처음으로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기름을 가득 채우는 데에 고작 3-4달러 밖에 하지 않았다. 아까 전 카페에서 하나 남은 5달러를 써버렸기 때문에 10달러짜리 지폐로 계산을 해야 했는데,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아는 그 집 꼬마 소녀가 계산기를 두드리며 꼼꼼하게 거스름 돈을 챙겨주었다.

옆에서 뛰어놀던 다른 동생들보다 어른스러웠지만 우리를 신기한 듯 힐끔거리는 모습이 아직 아이 같아 귀여웠다.


처음 들렸던 캄보디아 주유소


기름을 넣고 다시 신나게 길을 떠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사정이 매우 심각해졌다. 포장이 되지 않은 붉은 흙길에 군데군데 구덩이가 많이 파여 있어 오토바이가 사정없이 위아래로 덜컹거렸다. 바위나 나무뿌리도 조심해야 했다. 이렇게 울퉁불퉁한 길에서는 앞에 앉은 A보다 상대적으로 뒤에 탄 내 쪽이 훨씬 힘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 웃긴 추억이지만 그 당시엔 정말 열 받더라...


울창한 나무 숲에 둘러싸인 흙길을 달리고 나니, 자갈밭이 나왔다. 이 구간은 정말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이런 곳을 길이라고 알려준 구글 지도까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도로 사진을 찍어 뒀어야 했는데. 마치 야외 주차장 바닥에 빼곡히 깔아 둔 것처럼 도로 위에 자갈이 아주 두껍게 깔려 있었다. 자동차도 아니고,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자갈밭 위에선 앞바퀴와 핸들을 제어하기가 어려웠다.


왼쪽으로는 웬 마을이 보였고 오른쪽으로는 비탈이 꽤나 가파르게 나 있었다. 시속 15km는 될까 싶을 정도로 천천히 자갈밭을 지나는데 저 앞에서 엄청나게 큰 덤프트럭이 우리를 향해 운전해 오는 것이 보였다. 길 자체가 상당히 좁았기 때문에 A가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일단 트럭이 우릴 봤으니 속도를 조금 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트럭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왔고, 그걸 피해 더 오른쪽으로 붙으려는 순간 앞바퀴가 자갈 때문에 크게 휘청이는 바람에 오토바이가 그대로 오른쪽으로 고꾸라졌다. 사실 나는 이 길이 맞는지 지도를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진짜 어이없는 건, 오토바이 몸체가 크게 중심을 잃은 순간, 겁쟁이인 내 뇌가 엄청난 반사신경을 발휘해 나를 오토바이에서 내리게 한 거다. 내가 인지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도 놀랐다. 다만 오토바이가 느린 속도라도 계속 앞으로 가고 있던 상태였기에 나는 등에 메고 있던 배낭과 함께 엉덩방아를 찧었다.


트럭은 먼지를 내뿜으며 지나가고, 나는 얼빠진 상태로 몇 초 간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A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놀라 그쪽을 쳐다봤다. 오토바이의 무게 때문에 몸체가 오른쪽 비탈로 미끄러져 내려가려는 걸 A가 겨우 겨우 붙잡고 있었다. 황급히 뛰어가 A와 함께 오토바이를 도로 위로 올려두었다. A의 오른쪽 장딴지 외측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오토바이가 오른쪽으로 넘어질 때 함께 넘어지는 바람에 자갈에 찍혀 상처가 난 거다.


돌들이 꽤나 날카로웠기에 깊게 파인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고, 종아리 전체에 꽤 많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급히 상처를 깨끗이 씻고 응급처치를 했다. 큰 상처는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신고 있던 흰 양말이 흐른 피로 붉게 물들 정도였다.


당시 A가 찍은 사진


상처를 봐주며 A에게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물었다. A는 트럭을 피해 오른쪽으로 더 붙으려 했는데 자갈들이 방해해 앞바퀴가 중심을 잃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바닥으로 넘어지는 순간에 뒤에 타고 있는 내가 다칠까 걱정돼 뒤를 돌아봤는데 나는 이미 오토바이를 탈출한 상태였다며 안심이 됐다고 키득키득 웃었다.


A의 상처에 밴드를 붙이고 먼지 범벅이 된 옷을 터는데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로 들어오던 어린 학생들이 우리를 보자 웃으며 손을 흔들고 지나갔다. 이 모든 걸 다 지켜봤을 마을 앞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더라.


다시 짐을 정비한 후 우리는 오토바이에 올라 자갈길을 빠져나갔다. 다시 붉은 흙길이 이어졌는데 A는 이게 더 낫다고, 우리가 방금 지나온 그 길은 도로라고 부를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드디어 33번 국도에 들어서니 도로 상태는 훨씬 나았다. 시간은 벌써 오후 한 시에 가까웠다. A가 속도를 높이며 내게 물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해?

거세진 바람소리에 내가 한껏 목소리를 높여 답했다.

-30분 남았대!!

내 대답을 들은 A가 고통스러운 듯이 평생 이 오토바이 위에 있을 것만 같다-고 덧붙였다. 한낮의 태양이 뜨겁게 헬멧을 달구고 등에 멘 배낭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삼십 분을 더 달려간 우리는 드디어 캡에서 묵을 숙소에 도착했다. 주차를 한 뒤 헬멧을 벗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한 시 이십 분. 도로 위에서 여섯 시간을 보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이날은 우리만의 발렌타인데이를 보내기로 한 날이었기에 반나절 동안 이런 고생을 한 것이 어이없으면서도... 참 특별했다.


지치고 피곤한 데다가 이때 이미 얼굴에 알레르기가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했어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솔직히 나는 얼굴에 올라온 두드러기가 이 험난한 여섯 시간 때문인 줄 알았었다) 우리가 이 여정을 함께 해냈다는 것이 참 대견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운전을 해 준 A에게 고마웠고, 작은 사고(?)는 있었지만 건강히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에 감사했다.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싶어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땀과 붉은 흙먼지에 뒤덮인 우리 몰골도 재밌었고.


이 뒤로도 로드트립은 계속됐다. 우리는 처음이었던 이날보다야 훨씬 더 준비되고 숙련된 배낭여행객이 됐다. 다 이 여섯 시간 덕분일 것이다.


캄보디아 도로 위에서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풍경들을 자주 마주하게 됐다.

지도에 없는 작은 마을을 가로질러 가기도 하고 야자나무와 풀 밖에 없는 들판을 지나기도 하고. 우리는 한가롭게 풀을 뜯는 흰 소들과 포장이 되지 않은 붉은 흙길이나 자갈길도 자주 만났다. 가끔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등하교 중인 교복 입은 학생들과 함께 도로를 달리기도 했다.


다른 누군가가 운전하는 차를 탔더라면 더 편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 옆을 지나가는 이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진 못했을 거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만끽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도착지점까지 가는 여정은 온전히 우리 몫이었다. 어디에 멈춰서 무엇을 볼지, 어떤 길을 가볼지, 모든 게 우리 것이었다.


그날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A의 뒤에 앉아 덜컹거리는 도로 위를 달리며 나는 우리가 떠나왔고 내가 선택한 이 여행에 대해 생각했다. 여행이라기보단 모험처럼 느껴졌던 이 여정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가슴 벅차는 추억으로 기억되리란 걸 그 순간에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세계와 너무 다른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준 사람이 나와 함께 있었다. A가 없었더라면 이 여행은 불가능했을 거다. 그런 생각을 했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못했을 테니까. 꿈조차 꿔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우리라서 가능했고 함께라서 충분했으며 지금이 아니면 어려웠을 이 모험 속에, 그 순간에 내가 있다는 게 자꾸 믿기지 않았다. 마음속 어딘가가 한껏 부풀어 올라 나도 함께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즐거웠다. 멋졌다. 감사했다.


잠시 오토바이를 세워 스트레칭하던 갓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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