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과 바다 그리고 원숭이, 캡
이전날 분명히 마스크를 쓰고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 마스크가 벗겨져 있었다. A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걸 알기 전까지 밥도 같이 먹고 물도 같이 마셔놓고서는 검사 결과가 양성과 음성으로 나뉘자마자 방 안에서 마스크도 쓰고 물도 따로 먹는 게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8시도 되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잠에서 깼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돼 다시 잠에 들 수 없었다. 열은 크게 없었지만 아프긴 한지 이불에 파묻힌 채 끙끙대며 자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는 일찍부터 준비를 마치고 커피를 살겸 근처 ATM에서 현금을 뽑기 위해 잠시 나갔다 오기로 했다. 이 나라에 와서부터는 더더욱 둘이서 모든 걸 함께했기 때문인지 A를 혼자 두고 나홀로 밖에 나가는 것이 낯설기만 하더라.
아침 여덟시 반부터 햇살이 따가웠다. 또 어깨에 선크림을 바르는 걸 까먹고 나왔다. 캄폿은 서양에서 온 여행객들이 많다보니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A가 마실 따듯한 라떼와 내가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포장하고 근처에 있는 ATM 기기로 향했다.
제대로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 무작정 현금인출기를 사용하러 간 거라 출금 수수료가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다. 은행에 따라 최소 인출 가능한 현금의 금액도 다 다른가보다. PPC뱅크의 ATM기는 신기하게도 한국어로도 지원이 된다. 다만 달러 출금시 50달러 배수의 금액만 출금이 가능한 것 같았다. 게다가 거래수수료가 5달러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은행만 수수료가 이렇게 비싼가 싶어 다른 곳에서 돈을 뽑기로 했다.
바로 길 건너편에 ABA 은행의 현금인출기가 있는게 보였다. 이 ATM에서는 꼭 50달러 배수로 돈을 뽑지 않아도 되는 듯했다. 하지만 출금수수료가 똑같이 5달러였다. 결국 커피 두 잔 값보다 비싼 수수료를 내고 50달러를 인출했다. 지폐 한 장 달랑 나온 걸 손에 쥐고 호텔로 돌아가는데 이왕 수수료 내는거 적어도 한 100달러 인출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오더라. A가 옆에 같이 있었더라면 그냥 돈을 뽑지 말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캡으로 떠나기 전 밥을 먹기는 해야 할 것 같아 시내에 있는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도넛 하나를 포장해왔다. 음성이 뜬 나조차도 사람들과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니 음식을 주문하자마자 바로 받아올 수 있는 메뉴를 골랐다. 아픈 A에게 뜨끈한 음식을 사 먹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컵라면이라도 사올 걸 그랬나.
-몸은 좀 어때?
베개를 등받이처럼 받치고 침대에 기대 앉은 A에게 내가 물었다. 전날은 딱 목만 불편했는데 오히려 어제보다 몸이 안 좋다는 거다. 이마에 손을 대보았는데 열은 없었다. 대신 A는 주된 증상이 콧물과 재채기라 계속 코를 풀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멍하니 힘없는 표정을 짓는 게 너무 안쓰러웠다.
아무튼 대충 끼니를 때운 우리는 짐을 싸고 방청소를 했다. 일반 쓰레기와 A가 사용한 휴지들을 한데 모아 넣은 비닐봉지를 꽁꽁 묶고 소독 물티슈로 겉을 닦았다. 문고리도 다 닦고 환기도 잘 해두었지만 괜히 이 방을 청소하게 될 직원들이 걱정돼 마음이 무거웠다. 청소를 마치니 캡으로 자가격리를 하러 떠날 채비가 끝냈다.
우리끼리 자가격리를 하기에는 캡만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도시라기보다는 한적한 바닷가에 자리한 마을 정도 규모라 애초에 캄폿보다 훨씬 사람이 없기도 하고 에어비앤비로 주방이 딸린 숙소를 예약해 되도록 안에서 요리를 해 먹겠다는 심산이었다. 다만 캄폿에서 캡까지 약 삼십분 정도 거리를 아픈 A가 운전해야 하는 게 너무나 미안했다. 햇볕도 뜨거워 나는 A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있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잘 닦인 도로를 삼십 분 정도 달리니 벌써 캡에 들어섰다. 예전엔 캄폿과 캡이 한 도시로 묶여 있었다는데, 그게 이해가 될 정도로 두 도시가 가깝기는 하다.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기 전 크랩 마켓 입구에 있는 큰 약국에 들러 약을 좀 사기로 했다. 저번에 캡에서 머물 때 숙소 호스트가 새로 약국이 크게 생겼다며 알려줬던 곳이었다. 아직 지도에 등록이 안 되었는지 검색은 되지 않았지만 기억하기 쉬운 위치라 금방 찾았다.
사실 캄보디아에는 약국이 꽤 많다. 찾기도 어렵지 않다. 십자가 모양에 뱀이 그려진 부호가 있는 곳을 찾아가면 웬만해서는 원하는 종류의 약을 다 구할 수 있다. 알레르기 때문에 처음으로 캄보디아에서 약국을 찾아갔을 때는 이걸 몰랐다. 그때는 UCare Pharmacy라고 수입산 화장품들도 취급하는 럭셔리한 느낌의 드럭스토어 체인점에 방문했었는데 약사님께서 스테로이드가 함유된 연고는 처방전이 있어야만 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도 그 이후에 프놈펜에서 몇 번 다른 UCare Pharmacy 체인점을 방문한 적 있는데 이 드럭스토어 같은 경우 근무하는 분들이 영어를 꽤 잘 하셔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일반 약국에 가더라도 번역기를 사용하거나 찾고 싶은 약을 사진으로 보여드리면 비슷한 약이라도 찾아주시기 때문에 굳이 UCare Pharmacy를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약국을 찾아간 거였다. 조금 더 가격도 저렴할 것 같고 그때 갔던 UCare 보다 규모가 커서 살 수 있는 약의 종류도 많아보였다. 일단 인후통에 도움이 될 약과 발포 비타민을 샀다. 그리고 내가 사용할 코로나 진단키트도 몇 개 구매했다. 그나마 어제 샀던 것보다 2달러 저렴한 5달러짜리 진단키트였다.
다시 돌아온 캡에서 묵을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것치고 조금 비싸더라도 공간이 넓직한 곳으로 골랐다. 계속 안에만 있어야 하는 걸 고려해서다. 호스트에게 열쇠만 얼른 건네 받고 방으로 바로 이동했다. 앉아서 노트북을 할 수 있는 작은 탁자도 있고 침대와 주방 사이에 소파도 있다. 방 자체가 넓어서 답답함도 덜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주방에 주전자도 없고 전자레인지나 가스레인지도 없었다.
냄비나 컵, 싱크대는 있는데 가장 중요한 가스레인지가 없다니. 그럼 요리를 어떻게 한담?
사진으로 확인했을 때 분명 있었는데 없는 방을 배정 받은 건지, 호스트가 일부러 다 없앤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에어컨 바람이 영 미적지근한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방이 마음에 들면 더 길게 묵을 수 있냐고 여쭤보려 했는데 혹시 몰라 2박만 예약하길 잘했다. 그 후에 다른 곳으로 옮기더라도 일단 여기서 묵으면서 A가 몸을 회복할 수 있게 푹 쉬고 나도 매일 진단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하면서 상태를 지켜봐야 했다.
배달도 안 되는 이 시골마을. 나는 요리를 해 먹으며 자가격리를 하려고 주방이 있는 숙소를 겨우 찾은 건데 가스레인지가 없다니, 갑자기 막막해졌다. 일단 아직까지는 내가 음성이니 포장이라도 해 먹을 순 있었다.
짐을 대충 풀자마자 A는 진통제를 먹고 낮잠에 빠져들었다. 일단 마실 물도 없어 장을 보러 가야하는데 아픈 A를 깨우기가 정말 미안했다. 도로도 한적한데 내가 혼자 오토바이를 운전해볼까 싶기도 했다. 그치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A의 도움 없이 도로 위에 오를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그냥 그애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마트까지는 오토바이로 4분. 태워다 줄 수 있냐고 묻자 A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픈 연인을 괜히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했다.
내가 장을 보는 동안 A는 땡볕 더위에서 나를 기다려야 하기에 급하게 물과 음료수, 간식거리들과 컵라면을 챙겨 계산했다. 몸이 많이 좋지 않은지 오토바이 핸들 위에 이마를 대고 엎드린 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 A의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그래도 다행히 A는 열도 없고 증상도 양호했다. 재채기를 많이 하고 콧물이 계속 나와 코를 쉴 새 없이 풀어야 했던 것만 빼면 인후통도 심하지 않았다. 캄보디아 출국 한 달 전에 백신을 3차까지 접종했던 덕분인가 싶었다.
다음날 아침, 일곱 시가 겨우 넘은 이른 시각에 누군가 우리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누구세요?
내가 물어도 아무 대답이 없어 주섬주섬 마스크를 쓰고 문을 열었다. 숙소 호스트 할머니의 손녀딸이었다. 소녀가 들고 있던 뭔가를 내게 내밀었다. 전기 주전자였다. 아직 비몽사몽인 내가 놀라며 주전자를 받았다. 고맙다고 말하자 소녀가 빙그레 웃더니 수줍은 듯 급히 뒤를 돌아 사라졌다. 전날 밤, 혹시 남는 주전자가 있는지 에어비앤비 앱을 통해 호스트에게 메세지를 보냈었던 게 기억이 났다. 영어를 제법 할 줄 아는 손녀 딸에게 심부름을 시키셨나보다.
같이 지내는 동안에도 마스크를 쓰고 생수도 따로 마셔서일까, 나는 이날 아침에도 음성이 떴다. 솔직히 이제는 양성일 줄 알았는데. A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부스터 샷까지 맞은 A가 먼저 코로나에 걸리고 2차까지만 백신접종을 완료한 내가 아직까지 바이러스에 옮지 않은 게 이상하기는 했다. 물론 시아누크빌에서 A가 컨디션이 정말 좋지 않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드디어 평일이 됐으니 캄보디아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전화해 현지에서 코로나에 걸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사실 우리 둘 다 주말 동안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이렇다 할 가이드 라인을 찾지 못했었다. 당황스럽고 난처한 상황이었지만 찾을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백신 접종이 시작되기도 전에 발표된 것들 뿐이었다.
여기 사는 것도 아니고 해외여행 씩이나 와서 대사관에 이런 이유로 전화를 거는 내 자신이 어이가 없었지만 그만큼 간절하기도 했다. 이렇게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다는 걸 다 감수하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정말 막막했다.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지금 우리 상황을 설명하며 여기서 코로나에 걸렸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여쭤보았다. 대사관 말로는 지금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어 교민들과 대사관 직원들 중에도 확진자가 늘고 있는데 병원치료를 받거나 격리시설로 이동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들 자가격리를 하며 자가치료를 한다는 거다. 직원분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일단 A가 많이 아픈 건 아니니 자가치료로 나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오는 토요일 출국으로 예정되어 있는 비행기 표도 얼른 바꿔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야 하는데 기간이 너무 촉박해 절대 음성이 나올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수업도 들어야 하고 수강신청했던 과목들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수업이 있어 대체할 수업을 이리저리 찾아보느라 바쁜 A를 대신해 내가 비행기표 티켓을 어떻게 변경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저렴하게 항공권을 구매하는 방법이 대부분 그렇듯 우리도 항공사 홈페이지가 아니라 여행사 예약 사이트를 통해 프놈펜-인천 왕복 티켓을 구매했었다. 일단 해당 여행사에 문의하려고 전화를 계속 시도하는데 국외 전화라 그런지 전화 연결이 안되고 자꾸 끊기는 거다. 그래서 A의 부모님께서 해당 여행사의 영국 지점에 문의해 보겠다고 하셨다.
아, 그래도 정말 맛있는 캄보디아 간식들을 많이 찾아냈다. 보통은 밖에서 사 먹느라 캄보디아 간식을 이것저것 시도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한국에 가져가고 싶을 만큼 맛있는 것들을 많이 찾은 것 같아 뿌듯했다.
특히 이 컵라면!
전날 장을 보러 들린 마트에서 한국식 컵라면을 구하지 못해 이걸 산 건데 정말 박수가 나오는 맛이었다. 약간 사골 육수 맛이 나면서 맵지 않고 칼칼한 국물이 시원했다. 한국인인 내 입맛에만 잘 맞는 줄 알았는데 A도 마음에 드는지 한입 먹어보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한 박스 사서 가겠다고 마음 먹었건만 짐이 너무 많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다.)
그 외에도 김의 풍미가 가득했던 김 맛 감자칩 등 맛있는 과자도 많이 찾았다. 그리고 우리의 넘버원 음료수가 된 과일펀치 맛 환타 말고도 딸기맛, 바나나맛 등 신기하고 다양한 환타 맛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이런 소소한 재미가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을 버티는 데 도움이 되더라.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결국 이 숙소를 연장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여긴 공간 자체가 넓기는 하지만 창이 작아 답답하고 에어컨이 말썽이라 방이 너무 더웠다. 물론 숙소를 옮겨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식사를 해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조리가 가능한 곳이라 생각해 예약을 했었지만 싱크대 외에 주방의 기능이 없는 방이었고, 계속 간식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캡을 방문했을 때 묵었던 곳으로 새로 숙소를 예약했다!
아, 물론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할 수 없으니 그때처럼 나무 오두막에서 또 묵겠다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그 숙소에는 bungalow라고 불리는 나무 오두막 외에도 샤워실과 화장실이 침실에 딸린 럭셔리한 별채들도 여러 개 있었는데, 그 중 한 곳을 예약해 머물게 됐다.
게다가 거기는 숙소에서 자체적으로 식당을 운영하기도 하고 커피나 음식을 주문하면 룸 서비스처럼 체크아웃시에 한번에 계산을 할 수 있어 편리했다. 그리고 이 숙소는 음식도 다 홈메이드인데다가 맛있기까지 하다. 저번에 치킨 너겟과 감자튀김을 주문했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했더니 진짜 닭을 잡아서 만든 치킨 너겟에 직접 잘라서 바로 튀겨낸 감자튀김이라 그런 거였다.
사실 그 당시에는 1박 가격이 꽤 비싸다고 느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정말 합리적이다 못해 저렴한 가격이었다. 오두막과 별채들이 투숙객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 자가격리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데다가 각 숙소마다 바로 앞에 발코니처럼 앉아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이전 숙소만큼 답답하지 않았다.
일단 A가 코로나에 걸린 날짜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증상이 나타났던 날부터 일주일째가 되는 날까지 3박을 예약했다. 묵고 있던 에어비앤비 숙소를 정리한 후 체크아웃을 하고, 새로운 숙소로 출발했다. 캡 시내의 끝에서 끝으로 이동해야 했지만 고작 12분 정도 거리다. 나는 원래 이렇게 작고 단순한 지도를 가진 도시에 애정이 잘 붙는터라 점점 이 곳에 정이 드는 게 느껴졌다.
다시 돌아온 그 숙소는 여전했다. 평화롭고 아름답고 아늑한 느낌이다. 이주도 안 지난 시점에서 돌아왔으니 당연했지만 그때가 아주 오래 전처럼 느껴질 만큼 그 사이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저 멀리 마당에서 주인집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참 다정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잘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래도 나무 오두막이 아니라 프랑스 남부 느낌이 묻어나는 사랑스러운 별채에서 머물게 돼 너무 좋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방도, 화장실도 훨씬 넓었다. 진작 여기서 지낼걸! 3인실로 쓰기도 하는지 더블 침대 하나와 싱글 침대 하나가 있었다.
대충 짐을 풀고 있는데 A가 코로나 진단키트를 다시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갑자기 오늘 몸 상태가 엄청 좋아졌다며 아직도 결과가 양성으로 나오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는 거다. 아직 일주일도 안 됐는데 당연히 아직 양성이지 않나?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어차피 나도 검사를 해야 하니 같이 하기로 했다.
어? 잠깐만.
어제까지 한 줄이 떴던 내 결과지가 두 줄인 거다. 나도 양성이라고? A도 물론 아직까지 두 줄이 나오기는 했지만 확실히 회복되는 중인지 줄이 옅어져 있었다.
사실 A가 코로나에 걸린 걸 알게 된 시점부터는 언제든 내가 양성이 떠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며칠 간 음성이 떴지만 그 결과를 완전히 믿기 힘들기도 했고, 착각일 수도 있지만 코로나 증상이 있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받아들여야하는데 왜인지 확 짜증이 났다. 내가 이걸 누구에게 옮았는지 뻔했기 때문이다. 그치만 A가 양성이란 걸 알게 된 시점에 따로 방을 써서 격리를 하지 않은 것도 다 내 선택이었다. 밀접 접촉자였으니 어쩌면 잠복기였을 수도 있고.
솔직히 자가격리 기간이 더 길어지게 됐다는 게 참 착잡했다. 짜증이 난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거다. 겨우 시아누크빌을 벗어났는데.
우리의 여행이 잠시 멈췄다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그 기간이 자꾸 길어지는 것 같아 속상했다.
코로나에 걸렸다는 걸 확인하고는 울상을 짓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A가 이따 오후에 짧게라도 드라이브를 하러 가자고 했다. 콧물이 좀 나는 걸 빼면 보통 때처럼 멀쩡하다며 운전을 할 기력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우리끼리 오토바이를 타더라도 밖에 나가는 거 자체가 고민스럽긴 했지만 내리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상인들이 몰리는 메인 도로를 피해 사람이 없는 뒷골목 쪽으로 오토바이를 몰아봤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길로도 한 번 올라가 보고 저 멀리 산 위로 보이는 사원도 구경했다. 짧은 드라이브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A가 급하게 오토바이를 멈춰 세우더니 어딘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Monkey!
한적한 도로 위로 원숭이 가족들이 이동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 수의 야생 원숭이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적어도 스무 마리 정도 될 법한 무리가 다 같이 이동 중이었다. 조그마한 새끼 원숭이들까지 데리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걸 보니 이사를 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도로에 차가 별로 없대도 혹시나 원숭이들을 보지 못한 차가 달려오기라도 할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하던지. 절반은 주변을 살피며 도로를 건너고 나머지 절반은 전봇대와 전봇대를 잇는 전선을 따라 길을 건넌 뒤 무리에 합류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원숭이를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나게 될 줄이야. 정말 선물 같았다. A와 나는 며칠 간 걱정으로 답답했던 마음은 접어두고 바다를 처음 본 아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계속 웃었다.
그래, 사실 바쁘게 움직여야만 할 줄 알았던 여행이 잠시 멈췄다고 해도 아직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건데.
여긴 정말 바다 밖에 없는 작은 마을. 아무 것도 할 것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했었다. 그래도 다 잘 될거라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소중히 보내고 돌아가야지.
어제 숙소 앞에서 올려다 본 노을은 정말 예뻤다. 새카맣게 탄 어깨가 점점 익숙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