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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부장 Feb 18. 2021

그가 경찰에게 거짓말을 한 이유

군인에 대한 수사 관할 이야기

   과거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통치 수단 중 하나로 '패션'을 이용했다.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정부 기관인 '제국 패션국(Deutsches Modeamt)'을 따로 설치할 정도로 군복이나 정복의 색감을 비롯한 각종 디자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그 결과 실제로 독일인들이 나치에 대해 더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거나, 많은 청년이 군에 자원입대하는 등 소정의 효과를 얻어내기도 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인 '휴고 보스'가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군복을 디자인했다는 소문은 유명하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당시 휴고 보스의 역할이 단순 납품 업자 정도에 그쳤다고 정정되는 분위기이나, 사람들이 수십 년간 유명 디자이너가 나치 군복을 디자인했다고 믿었을 정도로 독일의 군복은 세련된 모습이었다.


   나치 독일은 이처럼 세련된 디자인을 통해서 당시 독일 국민에게는 군에 대한 동경심을, 독일군에게는 군에 대한 자부심을 주입했다. 사실 독일인의 눈에 군복이 멋있기에 군인도 멋있어 보인 것인지, 군인이 멋지기에 군복도 멋있어 보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군인들의 자부심이 군의 전체적 전투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강한 전투력이 향한 방향이 홀로코스트와 같은 아주 완벽히 잘못된 방향이란 점은 전 인류적인 비극이자 대참사이지만 말이다


나치 복장에 관한 고증이 매우 잘 이루어진, 나치 때려 잡는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우리나라 군대 역시 군인들의 자부심을 키우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여러 매체를 통해 홍보 자료를 배포하거나 각종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한다. 그러나 군인들의 자부심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군인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만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 믿는다. 특히나 군의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병사들의 임금이나 처우의 제대로 된 개선만이 군 전체 조직의 위상을 증대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르고도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현재 군의 다양한 노력 역시 군인의 자부심을 키우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은 될 수 있겠으나,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이러한 노력은 장기적 관점에서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 군의 노력과 바람과는 달리 여전히 일부 군인들의 경우 자부심은 고사하고, 사회에서 자신이 군인임을 밝히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신분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이다. 신분을 숨기는 대표적인 이유는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손해를 볼까 걱정해서이다. 과거 일부 지역에서 외출이나 휴가를 나온 군인들을 상대로 '군인 전용 메뉴판'을 만들어 군인에게만 추가 금액을 받던 사례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신분을 숨긴 이유가 이해된다. 아무런 대가 없이 단지 국가를 위해 군 복무 중인 병사들을 '등쳐먹기 위하여' 전용 메뉴판까지 만드는 노력이라니, 너무나도 끔찍하다. 요즘에는 많은 지역들이 내부에서부터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많이 변화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손해를 볼 것이 무서워 군인 신분임을 숨기는 사람은 꽤 많다.


   군인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경우 중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달리 매우 불순한 의도 때문이다. 바로 '경찰서'에서 발생하는 사례이다. 군인에 대한 수사권은 일반 경찰이 아닌 군사경찰(과거의 헌병)이 갖고 있다. 군인에 대한 기소를 검사가 아닌 군검사가 한다거나, 군인에 대한 재판을 민간 법원이 아닌 군사법원에서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군인이 밖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가 적발된 경우에는 자신이 군인 신분임을 밝혀서 해당 사건을 군사경찰이 담당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군인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 부대에 알려지면 사법 절차에 따른 처벌 외에도 해당 행위로 인한 징계까지 받아야 하기에, 이러한 결과가 무서워 자신의 신분을 속이는 것이다. 


   징계를 피하기 위한 신분 속임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은 '음주운전' 사건이다. 군은 음주운전에 대하여 굉장히 강경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을 한 군인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의 정도와 무관하게 군에서 자체적으로 그 음주 수치가 아무리 낮더라도 정직의 징계를 할 수 있으며, 음주운전을 하다가 물적 피해라도 일으켰다면 해임의 징계를 의결할 수도 있다. 또한, 정직이나 해임의 징계를 받은 군인은 필수적으로 '현역 복무 부적합 심의'의 대상이 되기에 징계에서 나아가 강제로 전역까지 시켜버릴 수 있는 제도까지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이러한 규정대로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음주운전 사건은 반드시 변호사 자격을 갖춘 군법무관이 징계 간사를 맡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음주운전이 적발된다면 군인으로서의 삶은 완전히 끝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내가 징계를 담당했던 대위 A의 경우가 그러했다. A는 군 내 엘리트 코스라고 알려진 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군 생활을 시작한 장교였다. 평소 복무 태도도 우수했으며, 주변의 평가 역시 매우 좋았기에 앞날이 창창한 군인이었다. 그랬던 그는 어느 금요일 밤 관사에서 부대의 친한 동료들과 함께 늦게까지 다량의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의 습관이라는 것은 참 무서웠다. 매일 누구보다 빠르게 기상하여 출근하곤 했던 A는 전날 늦은 새벽까지 술을 마셨음에도 두 시간도 잠들지 못한 채 이른 새벽에 잠이 모두 깬 채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A는 다시 잠을 자려했지만 쉽지 않았고, 속도 계속 좋지 않자 해장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해장국집에 가기 위해 자신의 차에 시동을 거는 일생일대의 잘못을 저질렀다. 그는 운전을 시작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길가에 놓여있던 어느 상점의 간판을 들이박는 사고를 냈으며, 이윽고 목격자의 신고에 따라 경찰에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되었다.


   A는 자신의 범행에 대해 모두 자백하며, 경찰의 조사에 모두 진실하게 답했다. 단 한 가지의 사실, 자신이 군인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A는 자신의 우수한 커리어가 모두 망가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끝내 군인 신분임을 밝히지 않았고, 결국 민간법원에서 음주운전에 따른 벌금형의 판결까지 받게 되었다. 당연히 부대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군 생활을 계속해나갔다. 그러나 완전 범죄는 존재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간 감사기관에서 A가 군인임에도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적발하게 되었고, 군에 그 사실을 알리는 공문을 보내온 것이다.


   군에서는 군법무관인 나를 징계 조사자로 선정했다. 징계 조사자로서 나는 비위 사실에 대해 착실히 각종 증거 서류를 모으기 시작했고, 이윽고 A를 음주운전 및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경찰과 부대에 거짓말까지 했다는 등의 내용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시켰다. 징계위원회 당일 A는 끝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지금껏 얼마나 열심히 복무해왔고, 앞으로 얼마나 더 열심히 복무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지만, 위원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결국, A는 매우 중한 징계를 받게 되었으며, 불명예스럽게 군복을 벗어야만 했다. 음주운전이라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인생 전체의 방향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인터넷에서 "공무원의 장점은 '내가 잘리지 않는 것'이고, 단점은 '쟤도 잘리지 않는 것'이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본 글의 서두에서 나는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군 내에 여러 군법무관이 매일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군인들의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군법무관의 업무 목적은 '쟤도 잘리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깨버리기 위함이라는 것이다국선변호사로서의 업무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군법무관이 '도려내야 할 인물'이라고 판단한 것이 실수일 경우도 있기에, 재판에서 잘못된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을 조직에서 도려내고 성실하고 존경받을만한 사람들만이 조직에 남게 된다면, 군 전체의 위상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그에 따라 조직원들의 자부심과 자긍심 역시 증가할 것이라 믿는다. 군복을 벗게 된 A의 경우를 보며, 다른 군인들은 '사필귀정'을 떠올렸을 것이고 군의 자정 작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A가 징계위원회 내내 흘렸던 눈물은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징계 결과를 통보했을 때, A가 나를 보며 지었던 원망 섞인 눈빛 역시 아직 선명하다. 여러 사람에게 원망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원망을 받는 것 역시 내 업무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견뎌내는, 그런 군사법원의 평범한 오후 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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