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인 2021. 1. 경 육군 경기도 모 부대의 예방적 격리 중인 병사가 담배를 구하기 위해 3층 건물에서 창문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다 떨어지는 바람에 크게 다쳤다는 소식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기사가 보도되자 인터넷 댓글 여론의 대부분은 병사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했다. 요즘 군대의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군 관련 사건 보도의 단골 댓글 역시 빠지지 않았다. 예방적 격리 중이면서도 탈출을 시도한 행위는 이론의 여지없이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군 조직의 특성상,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그 확산은 겉잡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비난의 정도 역시 매우 크다. 그러나 그 병사의 탈출 시도 동기는 너무나도 애잔하기만 하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에 고층 건물에서 탈출하고자 했다니, 문자 그대로 '짠내'가 진동한다.
당연하게도 흡연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흡연권' 역시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사건은 한 번쯤 다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과거 2004년 헌법재판소는 "흡연자들이 자유롭게 흡연할 권리를 흡연권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흡연권은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 제10조와 사생활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17조에 의하여 뒷받침된다."라고 판시하였다. 물론 이러한 흡연권의 행사는 비흡연자의 이른바 '혐연권'을 헤치지 않는 한정된 범위에서만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어쨌든 흡연권 역시 정당하게 행사된다면 그 범위 내에서는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기본권이라는 것이다.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는 대표적인 영화 '땡큐 포 스모킹(2005)'
이처럼 흡연권 역시 기본권 중 하나임에도 흡연에 대한 규제는 언제나 매우 강하다. 아마도 매너 없이 길을 걸어 다니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나, 아무 곳에나 담배꽁초를 버리고 침을 뱉곤 하는 흡연자들 때문일 것이다. 그런 잘못된 습관의 흡연자들이 꽤나 다수이기에 사회적으로 '흡연자들은 민폐를 끼치니까, 흡연자에겐 그래도 돼'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은 상황이다. 흡연자 본인이나 주변 사람의 건강에도 좋지 않고 상당한 비용까지 드는 데다가 이렇게 언제나 냉대를 당하면서도 대체 왜 금연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흡연자들에게 역시 최소한의 권리는 보장되어야만 할 것이다.
흡연권 역시 기본권이라는 점, 흡연자에게 역시 최소한의 권리는 보장되는 것이 옳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얼마 전 사고가 발생한 병사의 경우는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무언가 선제적 조치가 있었다면 안타까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예방적 격리의 특성상 흡연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긴 어려웠겠지만, 단순히 2주 동안 강제적으로 금연을 하라는 지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니코틴 껌이나 니코틴 패치 등을 지급해주며 2주만 참아줬으면 좋겠다는 방식이었다면 병사 역시 이해하고 참아냈을 것이라 믿는다.
군 조직에는 젊은 남성의 비율이 높기 때문일까, 체감상 흡연자의 비율 역시 상당히 높다. 그렇기에 나 역시 업무 중 담배와 관련된 사건을 종종 접하곤 한다. 가장 흔한 것은 역시 초병 경계근무 중 몰래 흡연을 하여 군기교육대(과거의 영창을 대체한 징계 종류)의 처분을 받은 병사들의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정상 참작의 여지가 거의 없다. 독일의 드라마 '포화 속의 우정(2013)'을 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인공이 한밤중에 매복 중인 참호에서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적군이 그 담배 불빛을 보고 포격을 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우리나라가 현재 전쟁 중인 것은 아니기에 초병의 흡연만으로 그런 대참사가 벌어지진 않겠지만, 경계근무 시 흡연은 여전히 군에서 매우 강하게 징계하고 있는 대상 중 하나이다.
군인들이 자신의 흡연권 보장과 관련된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 역시 종종 있다. 과거 군 병원에 입원했던 어느 군인의 A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사건이 대표적이다. 내가 직접 수행했던 사건은 아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주요 인권 관련 결정 사례집에 수록되어 나를 비롯한 여러 군법무관이 업무를 수행할 때 참고자료로 사용하는 사건이다.
군인인 A는 부상으로 인하여 국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A는 입원과 동시에 소지하고 있던 담배를 모두 원무과에 제출해야 했으며, 입원 중에는 무조건 금연을 하여야 하고 만약 금연 지시를 어기고 흡연을 하다가 적발될 경우 '지시 불이행'에 해당되기에 징계 조치를 받게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A는 그런 조치에 대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입원 중 흡연을 한다면 자신의 회복이 더딜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병명이나 증상을 구분하지 않은 채 모든 입원자에 대한 예외 없는 금연 지시는 이해하기 어려우며, 더욱이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징계까지 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A는 군 병원의 조치가 자신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게 된 것이다.
A의 주장에 대한 군 병원의 방어 논리는 매우 합리적이었다. 첫째로 치료를 받기 위하여 국군 병원에 입원을 한 사람에 대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법으로서 일시적인 금연 지시는 합리적이라는 점, 둘째로 병원에서 흡연을 허용할 경우 다른 환자들에게 간접흡연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 셋째로 각종 가연성 물질이 즐비한 병원에서의 흡연은 화재 위험을 매우 높일 수 있다는 점 등을 주장했다. 따라서 병원의 금연 지시는 합리적인 조치이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시 위반 시 징계 회부 및 과태료 부과 요청 등의 실질적인 제재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인권위원회는 양측의 입장을 모두 듣고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렸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주문은 다음과 같았다. "국군의무사령관에게, 현행 국군 병원 입원환자의 전면적, 의무적 금연 조치에 대한 개선방안 마련을 권고한다." 즉 진정인의 진정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병원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흡연자의 권리를 보장해주긴 힘들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국가인권위원회가 군인 A의 진정을 받아들인 것은 흡연자들에게 기념비적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인권위원회의 주 논거는, 군 병원의 정책이 '최소 침해의 원칙'을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금연 수칙을 어긴 환자에 대해 퇴원 조치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것, 군의관으로부터 금연을 처방받지 않은 환자에게도 지정된 흡연 장소에서의 흡연까지 금지하고 있는 것, 이를 어길 경우 지시 불이행으로 인한 징계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흡연자의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의관이 금연을 지시한 환자 외에는 금연을 의무사항이 아닌 권장 사항으로 하여야 하고, 이를 어긴 경우에도 징벌적 차원의 제재보다는 금연을 유도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등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까지 덧붙였다.
다시 흡연을 위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던 최근의 어느 병사 사례를 떠올린다. 그가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잘못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내가 '짠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사례와 같은 여러 사정 때문이다. 군인은 언제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군인 중에서도 병사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변화는 언제나 아주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흡연권'과 같이 모두에게 외면받기 쉬우며 아주 사소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군 인권의 변화가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모든 흡연자가 금연에 성공하기를 더더욱 바라기도 한다.
이상으로 이젠 설 곳이 점점 더 사라져 가는 흡연자들을 위한 최종 변론, 아니 어쩌면 군인 인권의 최소한을 위한 최종 변론을 마치는, 그런 군사법원의 평범한 오후이다.
<P.S>
지난주에는 재판 일정이 너무 타이트해서 야근에 치이는 바람에 글을 업로드하지 못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은 꼭 업로드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는데, 불과 두 달만에 실패하다니 제 게으름을 반성하게 됩니다. 혹시나 지난주 내내 제 글을 기다려주신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물론 제 글을 기다려주신 분이 아니더라도, 여기까지 글을 읽어주신 데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얘기가 군대 얘기라던데, 군대 얘기에다 법 얘기까지 섞어서 글을 쓰다 보니, 가끔은 제가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하트도 눌러주시고 댓글로 자신의 경험담도 적어주시는 것을 보면 제 글이 그래도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 내어 다음 글을 작성하곤 합니다. 관심 갖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는 모두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어쨌든 이 글을 보신 모두 즐거운 명절 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