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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부장 Apr 06. 2021

거짓말은 언제나 비극을 낳는다.

군대와 '무고'에 관한 이야기

   장교이자 군검사로서 내가 가장 처음 수행했던 재판은, 어느 상병의 병장 폭행 사건이었다. 내 전임 군검사가 수사한 후 군사법원에 기소한 사건의 공판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사건의 개요는 간단했다. 평소 병장의 행실에 불만을 품고 있던 상병이, 병장의 전역 하루 전날 생활관에서 주먹으로 병장의 가슴을 6회 정도 가격하는 방법으로 폭행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공판을 준비하며 전임자가 수사한 증거 자료들을 보니, 피고인인 상병과 피해자인 병장의 진술이 완전히 상반되고 있었다. 상병은 자신이 병장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계급 질서가 있는 군대에서 상급자를 어떻게 폭행할 수 있겠냐고 말하며 자신의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반면, 병장은 자신이 상급자임에도 불구하고 왜소한 체구와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평소에도 상병이 자신을 많이 무시했다고 말하며, 전역 바로 전날 하급자에게 폭행을 당한 것이 너무나도 분하고 자존심이 상했기에 고소에 이르렀다고 진술했다.


   사실 공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다른 여러 증거들에 의해 상병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병장이 당시 입고 있던 옷의 가슴 부분에서 상병의 DNA가 검출되었다는 점, 과거에도 상병이 병장을 모욕하여 영창에 갔던 점 등이 수사 중에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판이 시작되고, 피고인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정말로 많은 눈물을 흘리자, 내 마음도 같이 흔들렸다. 피고인은, 자신이 피해자를 평소에 무시했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그럴싸한 거짓 고소를 하여 자신의 인생을 망치려 한다고 주장했다. 정말로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표정과 말투였다. 공판이 끝난 후, 혹시나 내가 애꿎은 사람을 전과자로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복잡했다.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군사법원에서의 첫 번째 경험이었다.


   이후 해당 사건에서 군사법원은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시간이 흘러 피고인은 유죄 판결에 따른 벌금 납부 때문에 우리 사무실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피고인을 내 방으로 불러서 조용히 물었다. "진짜 남자 대 남자로 하나만 물어보고 나 혼자만 알고 있을게. 정말 피해자를 안 때렸니?" 그러자 피고인은 씨익 웃으며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몇 대 때렸습니다!"


   피고인의 고백(?)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피고인이 재판에서 흘린 눈물이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였다는 점이나 진실을 얘기하며 지었던 멋쩍은 표정도 재밌었지만, 내가 억울한 전과자를 만들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컸기 때문이다. '거짓 신고'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고, 그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크다. 비단 이 사건의 경우뿐만이 아니라, 군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도 '거짓 신고'는 언제나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군은 거짓 신고, 즉 '무고'에 대해 생각보다도 더 엄격하게 대처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치안에 관한 지표로 '5대 범죄'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 범죄들은 치안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범죄로, 사건 처리에 있어 더욱 신중을 기하도록 하고 있다. 군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육군규정 등을 통해 '5대 군기강 문란행위'를 정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민간의 5대 범죄와는 꽤 다르다. 군의 5대 군기강 문란 행위는 성폭력범죄, 보안위규 위반, 하극상, 이적성 행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해성, 무고성 투서'이다. 이 행위들의 경우, 강화된 양정기준을 적용하여 징계를 하도록 규정으로 명시하고 있다.


   성폭력범죄가 군에 매우 큰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또한 군 조직의 특성상 보안과 관련된 행위, 하극상, 이적성 행위 모두 중대한 범죄에 해당하는 것 역시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음해성, 무고성 투서'의 경우는 조금 의외이다. '무고'가 잘못된 행위라는 점은 당연하지만 다른 네 개의 비위 행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5대'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까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외성이 나타날 정도로 군 조직은 '거짓 신고', 즉 '무고'에 대해 강경하고도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


무고의 피해자에 대한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8)'


   '무고'는 선량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 매우 중한 범죄이다. 무고 때문에 평범하게 살던 사람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사례는 흔하다. 심지어는 무고를 당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 역시 흔하다. 특히 군 조직의 경우, 일단 혐의가 있는 것으로 의심을 받게 되면, 혐의가 완전히 소명되기 이전이라도 보직 해임, 부대 전출 등의 인사 조치를 선결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무고에 대해 엄격히 대처할 필요성이 더욱 높다.


   물론 엄격한 대처를 명분으로 무고의 형량을 무작정 높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무고가 지나치게 무거운 범죄가 될 시에는, 진정한 피해자들도 피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한 경우 이른바 '맞고소'가 두려워 고소를 꺼리게 될 수 있다. 특히 성범죄와 같이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만을 놓고 법정에서 판단을 받아야 하는 사안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정말로 악의적인 무고만을 딱딱 골라내서 엄히 처벌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 경계선이 너무나 모호하다. 깊은 고민이 필요한 문제이다.


   군에서는 이처럼 '무고'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양한 이유로 '무고'가 발생하곤 한다. 특정 직렬 출신의 예비군 동대장들이 다른 직렬 출신의 동대장들을 몰아내기 위해 정치싸움의 일환으로 허위 고소를 했던 사건이나, 피의자가 자신의 혐의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오판하여 피해자를 무고로 고소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오늘은 그중 가장 씁쓸했던 여군 소위 A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여군 소위 A는 인접 부대의 대위 B와 공개 연애 중이었다. 부대 소재지가 전방이며, A와 B의 병과가 소규모였기에, 둘이 연인 사이라는 점은 꽤 유명했다고 한다. 성격도 잘 맞고 선남선녀인 A와 B는 정말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그런데 A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A는 남들 몰래, 같은 부대의 대위 C와 주기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사이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C와 술자리를 가졌는데, 취기 때문인지 성관계까지 나아가게 되었고, 이후에는 1주일에도 몇 번씩이나 따로 만나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고 했다. 둘이 성관계를 자주 갖던 장소는 당시 C가 거주하던 간부 독신자 숙소였는데, 여성 출입이 금지된 독신자 숙소 내에서 성관계를 자주 갖다 보니, 옆 방의 거주자가 소음 스트레스에 이러한 사실을 부대에 신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A는 자신이 지금껏 열심히 쌓아 온 모든 것이 무너질까 두려웠다고 한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부대 내에서의 평판도 잃고 싶지 않았던 A는 상황을 모면하고자 큰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지휘관에게, 자신은 C와 행한 모든 성관계가 기억나지 않으며, C가 아무런 합의 없이 자신의 만취 상태를 이용해 강제로 성관계를 한 것에 불과하다고 거짓 진술을 한 것이다. A 입장에선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고자 한 것에 불과하나, 지휘관의 입장에선 받아들이는 말의 무게가 완전히 달랐다. A의 말은, C가 군형법의 '군인등준강간'을 범한 범죄자이고, A는 그 피해자라는 진술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A는 한순간의 판단 실수로 인하여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군인등준강간죄는 법정형이 '징역 5년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는 매우 중한 범죄이다. 그런 범죄가 발생했다는 진술에 따라, 지휘관은 단순 징계 사건이 아니라 형사사건이며, 조용히 넘어갈 수 없다고 판단해 군사경찰에 면밀한 수사를 의뢰했고, 그 결과 피해자의 진술이 거짓임이 들통나게 된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A의 거짓말이 금방 발각될 것임을 알 수 있었을 텐데, A가 군사경찰에 이르기까지 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했었는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그 거짓말로 인해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강간범의 취급을 받던 C가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역시 나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어쨌든, 결국 A는 군사법원에 무고죄의 피고인 신분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법정에서 A는 순간의 거짓말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이 너무나 후회된다고 얘기했다. 군사법원은 A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였고, A는 연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직장까지 잃게 되었다. 군에서 '무고'에 대해 얼마나 엄정히 대응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대학생 시절 처음 형법을 배울 때, 교수님께선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죄형법정주의의 근간이 되는 가치이다. '무고'는 이러한 대원칙을 수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군 조직의 경우, 소문이 쉽게 퍼져나갈 수 있고 일단 혐의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나면 그 피해를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기에 무고에 대해서 더욱 강경할 필요가 있다. '5대 주요 군기강 문란행위'에 '무고'가 들어가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거짓말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도, 타인의 거짓말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도 모두 사라지기를 바라며, 오늘도 군사법원의 평범한 오후 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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