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룡부장 Jan 21. 2021

그 남자는 자기 아내의 성매매를  직접 주선했다.

군인의 영리 행위 금지에 관한 비극적 이야기

   최근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실제 벌어졌던 사건을 각색하여 방영하는 프로그램들이 참 많이 눈에 띈다. 시청자의 호기심을 유발해야 하기 때문일까, 소재들은 언제나 자극적이다. 불륜, 범죄 등과 같은 요소들을 버무린 프로그램을 보며 예전에는 과장이 조금 심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군에서 여러 사건을 마주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실제 현실에선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보다 더욱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일들이 무수히도 많이, 그리고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군대라는 조직은 폐쇄적이고 외부에 공개되는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자극적인 소재와 결합되었을 때 그 극적인 효과가 더욱 커지곤 한다. 내가 우리나라 공포 영화 중 언제나 최고라고 꼽는 '알포인트'는 군인들과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훌륭하게 풀어낸 명작이다. 그밖에도 군인들의 이야기와 좀비를 결합하였던 'GP506' 같은 영화 역시 꽤 흥미로웠다.


군인과 전쟁이라는 소재를 통해 공포를 극대화시킨 국내 공포영화계의 수작 '알 포인트(2004)'


   귀신이나 좀비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평범한 군인들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하며 꾸며진 내용 역시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이다. 과거 tvN에서 방영했던 '푸른 거탑'은 수많은 명대사와 함께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말년에 유격이라니!', '대뇌의 전두엽까지~'와 같은 최종훈 병장의 대사들은 여기저기서 패러디되며, 군인들의 평범한 일상 이야기 역시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낼 수 있다는 대표적인 예시가 되었다.


   나 역시 군에서 수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나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접하며 지낸다. 이제껏 접했던 TV나 영화 속 이야기들보다 훨씬 더 극적인 여러 군인 이야기 중에서도,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가장 비극적이며 또한 충격적이었기에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이야기이다. 복합적인 제도적 문제들이 작용하여 대참사를 낳았던 사건이다. 피고인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정까지 파국으로 치닫게 했던, A 일병에 관한 것이다.

   




   A 일병은 고교 시절 폭행, 상해 등으로 이미 다수의 전과를 쌓았던 문제아였다. 그러나 A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살던 한 살 아래의 여 후배를 알게 되며 A의 인생은 완전히 변하게 되었다. 사랑의 힘이었다. A는 여 후배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고자 더 이상의 비행을 일삼지 않고 건실하게 살고자 노력했다. 그런 모습에 감동해서였을까, 여 후배 역시 A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어 둘은 연애를 시작했으며, 20대 초반의 연애답게 그 사랑은 위태로울 만큼 뜨거웠다.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여 후배, 아니 A의 여자 친구는 임신을 하게 되었으며 결국 20대 초반의 두 남녀는 사랑만을 믿고 갑작스러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당연히 반대가 심했다. 양가 모두 둘의 결혼은 서로에게 비극일 것이라 말하며, 둘이 출산과 결혼을 강행한다면 가족의 지원은 일절 없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둘에게 두려운 것은 없었다. A와 그의 여자 친구는 결국 양가 모두와 연락을 끊은 채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A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그렇게 마련한 생활비로 자그마한 원룸에서 결국 아이까지 출산하였다. 예쁜 딸아이였다. A는 아내와 딸을 위해서 평생 열심히 일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다짐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군에 입대할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A에게는 병역을 미룰만한 방법이 없었다. 가족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사유로는 부족했다. 다수의 전과가 있고 결혼까지 한 덕분에 일반 현역 병사는 아닌,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하게 되어 퇴근 후에는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러나 생활비가 문제였다. A가 비록 상근예비역으로 군에서 월급을 받는다고 하여도, 한 달에 50만 원도 되지 않는 병사의 월급으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내가 직장을 가질 수도 없었다. 아이를 맡길 가족도, 기관에 맡길 금전적 여유도 없었기에, 아내는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서히 모두에게 비극이 시작되었다. A가 입대한 이후, 부부는 기저귀 등 육아용품을 살 돈은 고사하고, 원룸의 방값과 가족이 먹을 밥값을 마련하기도 버거운 상황에 직면했다. 상황을 해결하고자, A는 퇴근 후 야간에 할 수 있는 대리기사 일을 시작했다. 군인 신분인 사람은 영리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 교육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대리기사 일을 통해 간신히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대리기사 일을 하던 중 졸음 때문에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게 되었고, 그 사고의 처리 도중 A의 신분이 군인임이 밝혀지게 되어, 결국 A의 소속 부대에서도 A가 몰래 영리 행위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A의 소속 부대에서는 사건을 조사하며 그 딱한 집안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규정은 규정이었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30조 제1항에 따라 군인은 영리 업무를 할 수 없다. 물론 예외도 있다. 국방부 장관의 승인(시행령에 따라 각 군 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으면 겸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병사가 무려 '육군 참모총장'의 승인을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A는 당연히 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아 겸직을 한 자가 아니었으며 명백하게 영리 행위를 하였고, 이는 군인에 대한 징계 사유에 해당했다. 영리 행위를 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동안 대리기사 업무 때문에 늦잠을 자서 부대에 자주 지각을 했다는 사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A는 '영창'의 징계를 받게 되었다.


   A가 영창에 갇혀있느라 며칠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A의 아내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A 또한 영창을 다녀오고 나니, 다시 대리기사 일을 시작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한다. 결국, 둘은 A가 퇴근 후에 아이를 보고, 아내가 야간에 일을 하러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짧은 시간만 일을 하고 높은 소득을 올리고 싶던 부부는 결국 비극적이고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A의 아내는 생활고를 이겨내기 위한 방법으로 끔찍하게도 '성매매'를 결심한 것이다.


   20대 초반의 '어머니'가 생활고를 벗어날 방법으로 고른 것이 성매매라니 비극을 넘어 비참하였다. 더 비참한 것은 그녀의 남편인 A 역시 동의를 한 것이다. 둘은 그렇게 성매매를 위해 한 팀이 되었다. A는 조건만남 사이트에서 성매수자를 찾아 대화하며 성매매 일정을 잡았고, 아내는 그 일정에 맞춰서 집 근처의 모텔로 향했으며, 아내가 없는 동안 A는 집에 남아 아이를 보았다. 성매매를 위해 집 밖을 나서는 아내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런 아내를 기다리며 집 안에 남아있는 A의 마음이 어땠을지 나로서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처음은 어려웠으나 두 번째부터는 쉬워지기 시작했다. 둘은 죄책감이 희미해질 정도로 자주 역할을 분담하며 성매매를 하였고, 그렇게 번 돈으로 원룸의 월세를 내고 아이의 기저귀를 구매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역시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A의 성매매 알선 행위와 아내의 성매매 행위는 몇 달 만에 경찰에 적발된 것이다.


   A의 죄명은 가볍지 않았다. 성매매를 알선하는 이른바 '포주'와 같은 죄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내의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경악스러운 스토리와 다수의 전과 사실 때문에, A는 군사재판 끝에 결국 징역형을 선고받아 국군 교도소로 수감되었다. 아내 역시 민간법원에서 성매매로 인한 처벌을 받았으며, 그렇게 둘의 신혼 생활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시작은 뜨거운 사랑이었지만, 그 끝은 지켜보는 사람까지 힘들게 만들 정도로 비극적인 결말이었다.


   아버지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마음먹었던 상근예비역 A의 삶이 이토록 비참해진 것은 개인의 잘못된 선택들이 첫 번째 원인일 것이나, 여러 가지 제도적인 문제들 역시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부양가족이 있는 가장이며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임에도 입대를 미룰 방법이 없었던 점, 군에 입대하여 받는 월급이 최저시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점, 그러나 군인이 합법적으로 복무 외 다른 영리 행위를 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 인터넷의 발달로 성매매에 너무나도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점 등 너무나도 많은 각각의 사정이 하나로 모여 비극적 참사를 자아낸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나는 군인의 영리 행위를 일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을, 병사들에 한해서는 장성급 이상 지휘관의 승인이 있으면 가능하도록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물론 장성급 지휘관의 승인도 쉽지는 않을 것이나, 그래도 국방부 장관의 승인처럼,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의견이 입법이나 정책에 반영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언젠가는 입법을 통한 개선책이 나타날 것이라 여전히 굳게 믿고 있다.


   육아를 위해 성매매를 결심했던 A 부부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착잡하고 슬퍼진다. 그러나 그런 착잡한 마음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해결책을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그 해결책이 실제로 반영될 수 있게 노력해야만 우리 군이,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는 군에 입대한 것 때문에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군에 입대한 덕분에 모든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군사법원의 평범한 오후이다.  

이전 14화 여자 목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그 청년의 사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