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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부장 Jan 14. 2021

여자 목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그 청년의 사정

어느 군인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

   군대 역시 특정 공무원 집단의 소속 인원과 역할을 확인할 수 있는 '온-나라 시스템'을 사용하며, 그 시스템 내에 나는 군 내 변호사라고 그 직책이 등록되어 있다. 그렇기에 군인 중에는 법적인 문제에 휘말릴 경우, 내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지극히 개인적인 민사, 가사의 영역에서부터 형사나 행정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상담 내용은 언제나 가지각색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내게 전화했을까 하는 마음에, 모든 상담에는 친절하고 성실하게 답변해주려고 노력한다. 때때로 나 역시 상담을 통해 군 내 제도의 불합리성이라던가, 새롭게 공부해보면 좋을 분야 등 깨닫는 점 역시 많다는 것 역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상담이 필요할 때, 간부들의 경우에는 이처럼 직접 전화를 하곤 하나, 병사들은 상급부대의 모르는 장교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거는 것이 아무래도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실제로 내게 직접 연락을 해서 상담을 요청하는 병사는 분기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다. 간부들의 상담 전화는, 못해도 1주일에 한 번 이상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병사들로서는 행정병이 아니고서야 온-나라 시스템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병사들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일과 시간 이후에는 나 역시 모든 일과를 마치고 퇴근을 한다는 제도적인 문제 탓도 있을 것이다.


   군은 이러한 제도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병사들의 고민을 듣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병영 생활 고충 상담 등을 위한 전화 서비스인 '1303 국방헬프콜'이 대표적이다. 올림픽대로를 운전하다 보면 그 대형 광고 현판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군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제도이다. 실제로 많은 실적을 올리기도 한다. 병영 생활 중 부조리나 가혹행위를 당한 병사가 국방헬프콜을 이용하여 가해자를 신고하고, 신고 내용에 따라 군 수사기관에서 움직이는 경우는 이제 굉장히 흔한 사례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마음의 편지' 제도가 일부 부대에서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단점을 잘 보완해주었다고 생각된다.


군 내 비리와 내부고발자에 관한 영화 '1급 기밀(2016)'


   그러나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국방헬프콜뿐만이 아니라 병영생활 상담관, 인권상담관 등 제도를 아무리 마련하여도, 내부고발자로 취급받는 것이 두렵다거나 부대에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이 겪고 있는 고민을 사소한 것이라고 치부하며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혼자 고통을 감내하는 병사들의 경우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식 개선 등을 통하여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문제이다.


   어쨌든, 위에서 언급한 많은 이유로 나는 병사들의 고충에 대해서는 직접 들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다른 사건 때문에 병사들과 마주할 때면 항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가령 피고인의 신분으로 만난 것이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행위의 동기 아래에 깔린 개인의 다양한 사정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되고, 그러한 정보는 실제 변론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여러모로 유익한 것이다. 그렇게 병사 개개인의 고충을 자세히 듣다 보면 가끔은 정말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에도 직면하곤 한다.




   미국에서 온 A 병장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A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가서 오랜 시간 생활을 하다가, 성인이 된 후 우리나라 군에 입대한 청년이었다. 그는 미국의 자유로운 문화 속에서 생활하다가 많은 행동에 통제를 받는 병영 생활을 하게 되며,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한다. 어쨌든 당시 A가 나를 만난 이유는 핸드폰을 사용하여 타인을 모욕한 것이 적발되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기 때문인데, 사건 자체는 매우 간단히 끝났으나 당시 A와 내가 나누었던 고충 상담은 여전히 내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A는 미국에서 살 때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꾸준히 교회를 다녔다고 했다. A가 다녔던 교회의 종파는 우리나라에서 조금 낯선 '침례교'라 말했고, 자신은 그 침례교의 교리에 대한 믿음과 종교적인 신념이 굉장히 크다는 얘기로 상담은 시작됐다. 이후 A가 말하기를, 자신이 미국에서 성경의 교리에 대해 배울 때는, 교회의 목사가 될 수 있는 것은 남성뿐이고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하였는데, 하필이면 A가 속한 부대의 군 교회 목사님이 여성이기에 주말마다 예배를 보는 것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위반된다는 것이었다.


   무교이기에 특정 종교나 교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정말로 당황했다. 아니 대체 여성이 목사가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일단은 그런 내용에 대해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보겠다고 말한 후 A를 부대로 돌려보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머릿속을 스쳤다. 가장 먼저 확인해보아야 할 것은 상담 내용의 진실 여부였다. A의 부대 내 교회의 목사님이 여성분이 맞는지에 관한 것부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군 내 교회는 목사의 자격을 갖춘 군종장교가 예배를 주도하는데, 당시 우리 부대 내에는 여성 군종장교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확인 결과 A가 속한 부대의 경우 그 규모가 매우 작기 때문에 군종장교가 직접 예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부대 인근의 민간 목사님을 위촉하여 예배를 진행한다고 하였으며, 실제로 그 민간 목사님은 여성분이었다. 두 번째로 확인할 문제는 실제로 침례교에서는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가에 관한 문제였다. 자료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침례교에서도 2014년 이후로 여성 목사에 대한 안수를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미국의 경우에는 그 입장이 조금 불분명해 보였고,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A가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 해석상 여성 목사에 대해 허용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고수 중이라는 내용의 글도 보였다.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되어, 여러 사람과 논의를 시작했다. A는 군인이기 이전에 종교 및 신앙의 자유를 갖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에는 당연히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그의 '조금은 특이한' 종교적 가치관을 군에서 어디까지 보장해주어야 하는지에 관하여는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했다. A가 원했던 해결책은 매주 일요일 남성 목사가 있는 다른 교회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무 생활을 하는 병사가 일요일에 영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인솔 간부가 필요하며, 매주 A 한 명 만을 위해 인솔 간부와 차량을 배정하는 것은 지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의견이 나왔다. A의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종교적 가치관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통념과 전혀 맞지 않으며 객관적으로도 옳은 것이 아니기에 그런 것까지 배려해줄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 군에서는 기본적으로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네 가지의 종교에 대한 예배를 시행하고 있기에 그 이상의 요구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A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주는 것이 인권보장을 위해서는 가장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요일마다 외출을 시간이 제한된 외출을 허락하는 방법이라면 지휘 부담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대의 지휘관이 아닌 나로서는 섣불리 하나의 의견을 고를 수 없었다. 특히 종교가 없는 내게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A의 의견은 동의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러나 나의 상식만으로 타인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동의 여부와는 조금 다른 영역의 문제였기에 더더욱 어려웠다. '다름'과 '틀림' 사이에서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며 며칠이 지났을 때, 사무실에 A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A는 자신이 이제 말출, 즉 군 생활 마지막 휴가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신의 고민이 너무 사소한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했었는데, 진지하게 들어주고 해결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마지막에는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뼈 있는 말도 덧붙였다.


   A의 전화를 받았던 날, 퇴근 후 참 많은 맥주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종교적인 문제, 남성과 여성의 문제, 군 조직의 특성에 관한 문제 등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고, 그 많은 문제 사이에서 쉬이 답을 찾지 못한 괴로움 때문이었다. 만약 조금만 더 A의 고민을 빨리 알게 되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조금만 더 빨리 내게 상담을 요청했더라면, 혹은 자신의 고민을 지휘관을 포함한 누군가에게 토로했었다면 그가 가진 신앙의 옳고 그름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다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전역을 불과 2개월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알게 된 A의 사정은 나만의 힘으로 즉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기에 무력했다.


  그렇게 A의 전역 이후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상담 전화를 기다린다. 군 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A를 기다리며 오늘도 책상 앞에 대기 중인, 군사법원의 평범한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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