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용기`. `포기하지 않을 용기.` 포기라는 단어의 뜻을 검색하니 의도하지 않았던 내용이 나온다. 귀찮아서 포기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도 용기가 필요했던 것인가? 나는 게을렀을 뿐인데 어울리지 않을 법한 단어, 포기를 놓고 보니 씁쓸하다.
”누구누구는 글을 쓴다네 “라고 내가 글을 쓴다는 소문은 직장 내에 암암리에 퍼져 있다. 감쪽같이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아는 사람은 안다. ”브런치에서 글 잘 읽었어요. 이번 글은 되게 재밌어요. “그런 인사를 들을 때 부끄러워 미치겠다. 누가 보든 안보든 상관없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도 누군가 읽었다고 하면 부끄럽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있는 대로 굴려 본다. 그리고 어디라도 구석에 들어가 썼던 글을 다시 본다. 혹여 누군가에게 상처될 표현은 없었는지, 또는 내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버린 것들은 없는지 수정하고 수정한다.
책방활짝
그런데 드러내지도 못하면서 감추고 싶지도 않은 나의 글 쓰는 습관이 주위 사람들에게 때로는 안심을 주는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매일매일 쓰는 생산현황 보고서도 내가 봐주면 조금 안심을 하는 눈치다. 조금 긴 문자를 보낼 때도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조용히 말한다. ”이거 보내야 하는데 한 번만 봐줘요. “ 하다못해 사고 경위서도 글이라고 그걸 봐달라고 한다. 그래봐야 내가 고작 봐주는 건 흐름이 어색하지 않은지, 육하원칙에 맞게 썼는지, 맞춤법 틀렸는지 정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위로를 받는 듯하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 교정을 해 줬으니 안심이라도 되나 부다. 그럴 때 나는 속으로 미안하다. 특별히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 주위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그들보다 글을 좀 쓴다는 소문만 믿고 나를 의지하는 것뿐.
나를 의지하는 기대에 부응하려면 더 열심히 글을 쓰고 더 열심히 책을 읽고 노력을 하는 게 맞을 텐데 나는 포기가 빠르다. 책 5페이지 읽기는 2페이지 읽기로 줄어들고, 필사 1쪽 하기는 다섯 줄 필사하기로 줄어든다. 오늘 못한 루틴은 백만 가지 이유를 붙여서 내일로 미루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점점 귀찮아진다. 어디 어디 공모전에 글 한번 내볼까를 생각하다가도 미루고 미루다 결국 마감시간을 넘어가는 초침을 바라보며 보내기도 한다. 글은 안 써지고 머릿속은 하얗게 변한 채로 내년에 해 보는 거지 뭐, 나를 달래면서 단념한다.
포기할 용기는 아프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를 선택해야 하는 용기란다. 포기하지 않을 용기는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가지는 용기란다. 거대한 용기가 전혀 필요 없는 게으른 나의 포기는 너무 자잘해서 우습다. 나의 포기는 의미가 없어서 우습다.
개미 한 마리가 베란다의 화분 위를 아슬아슬하게 돌고 있다. 어디서 들어왔을까? 화분의 둘레를 돌고 돌아도 타고 내려올 잔 풀떼기 하나가 없다. 개미의 움직임을 보던 나는 슬그머니 시든 화초 잎 하나를 비스듬히 화분 아래로 기대 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개미는 덥석 시든 나뭇잎 위로 올라선다. 화분 아래로 내려가는 길인 줄 알고 그러는 겐가? 아니면 돌고 돌아도 반복되는 길이라서 다른 길을 찾아 나선 것일까? 실보다 가는 발들을 쉼 없이 움직이며 살아나갈 방도를 찾는 것인가 보다. 나는 개미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며 속으로 바라본다.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