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이 시작되면서 우리 집에 귤 선물이 끊이질 않았다. 늦가을 막내 아이가 맹장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회복하면서 먹으라고 아이의 친구가 한 박스를 보내왔다. 그 귤이 떨어지기도 전에 둘째 생일 선물로 또 귤이 왔다. 곧이어 보름 사이로 내 생일이 다가왔다. 제주도 맛있는 귤이라고 내 친구도 선물로 보내왔다.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마지못해 가끔 한 개씩 귤을 먹었다.
어느 날 막내가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귤 박스 앞에 서서 “자자, 귤 팡이 관리국에서 나왔습니다.” 한다. 귤 팡이란 귤에 곰팡이가 생긴 것을 뜻하는 말이란다. 그런 말이 있는지 물으니 막내가 만들어 낸 말이라 했다. 곰팡이가 생겼거나 수분이 많아 보이는 귤은 간격을 두고 줄을 세워 놓았다. 곰팡이가 옮을까 봐 분리 중이란다. 그리고는 내게 한마디 한다. “엄마, 음식에도 책임 져 주세요. 선물 받으신 귤을 열심히 드셔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음식에도 책임 져야 할 일이 많다. 친정어머니께서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이것저것 곡식들을 보내오신다. 그때마다 버리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나눔도 하고 열심히 챙겨 먹는다. 그중에 가장 먹기 힘든게 보약이다. 양파 농사를 지었다고 양파즙을 보내오신다. 그것도 상상하기 힘들 만큼 많은 양이다. 온 가족을 억지로 먹이고 나도 열심히 먹는다. 그래도 줄어들지 않는다. 갈비 양념으로도 쓰고 생선 조림에도 넣는다. 겨우겨우 다 먹어 치운다. 다음 해에는 양배추가 좋다고 양배추 즙을 보내오신다. 역시 양이 장난 아니다. 주변에 위가 나쁘다는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그리고 또 열심히 먹는다. 아이들에게도 억지로 먹이고 `술이 인생의 진리다,`라고 말하는 남편도 열심히 먹인다. 결국 남김없이 먹는다.
그 보약들에는 어머니의 온갖 정성이 들어 있다. 여름내 땀 흘려 농사지으신 곡식과 약초들이 섞여 있다. 깨끗이 씻고 말리고 잘 간수하셨을 정성을 생각하면 한 봉지도 허투루 버릴 수가 없다. 어느 해에는 우리 막내 아이가 비염이 있다고 수세미를 기르셨다. 수세미를 즙으로 만들어 보내 주셔서 막내에게 먹으라고 했다. 우리 막내는 할머니의 정성을 어쩌지 못하여 겨우겨우 다 먹고 내게 부탁을 하였다. “엄마 제발 이런 책임감 지게 하지 말아 주세요.”
선물을 받은 음식은 더더욱 함부로 어쩌지 못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맛있게 먹어 줘야 할 것만 같다. 그게 음식에 대한 책임감이고 선물하신 분에 대한 예의다. 몇 년 전 내가 병원에서 간호조무사 실습을 할 때였다. 나이가 팔순이 넘으신 어르신께서 감자 삶은 것을 드시고 계셨다. 50이 넘은 나이에 간호조무사 실습을 하고 있었으니 어른께서는 내가 기특해 보이셨나 보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나를 큰소리로 불러서 내 입에 자꾸만 감자를 넣어 주셨다. 나의 사수인 선배님이 보고 계셔서 어쩌지 못해 갈등을 하다가 맛있게 먹어 드렸다. 어른께서는 무척이나 기뻐하셨고 입원해 계시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른의 지혜도 듣게 됐고 소설책 몇 권이 될 것 같은 인생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감자 한입 같이 먹게 된 동지애로 우리에게는 라포가 형성된 것이었다.
음식에는 주는 사람의 정성과 사랑이 있다.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깊은 인연의 줄이 생긴다. 때문에 선물할 음식을 선택하는데 신중을 기하게 된다. 내가 좋아한다고 섣불리 선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잘 먹어주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힘겨운 쓰레기가 될까 봐 걱정도 하게 되는 게 음식 선물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음식 선물을 받게 되면 끝까지 잘 먹어줘야 할 책임감이 생긴다. 우리 집 귤 팡 이들은 막내의 엄격한 품질관리 덕분에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있다. 남아있는 귤의 숫자를 세어보니 열두어 개 정도다. 이만하면 올 겨울 귤 팡이 관리국은 이제 폐업이다.
신맛과 차가운게 싫어서 후추넣고 살짝익힌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