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인트리 Mar 23. 2022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동자의 시간

종일 핸드폰이 손안에 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를 나약하게 만든다. 세상이 저만치 달아나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과학의 발전이 달리기를 하고 사람들도 같이 달려 나간다. N 잡러의 시대, 직업이 여러 개인 건 당연한 일, 명함에 여러 개의 직함이 있는 것들도 이젠 익숙하다. 한우물만 파던 시대는 지났고, 그 우물 안에서 꽃을 피워 민들레 씨앗처럼 다방면으로 날려 보내야 하는 시대를 만난 것 같다. SNS에서 한 곳쯤은  소통을 해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생산 노동자인 의 시간은 어떠한가.


새벽 일찍 잠이 깬다. 어찌어찌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이라도 붙여보려고 새벽 기상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간다. 네시 반 기상해서 무조건 한 시간 동안 책을 보면서 필사를 한다. 5시 반부터 15분 동안 업무 스케줄을 짠다. 총알같이 출근 준비를 하고 5시 40분 버스에 몸을 실어야 한다. 코로나로 배차 간격이 커서 이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 한다.


직장이다. 저마다 부지런히 아침을 챙기고 출근하는 동료들을 보게 된다. 전날의 컨디션과 오늘의 컨디션을 주고받는다. 노동자의 시간이 시작된다. 작업 시작은 오전 7시 30분, 여유는 없다. 계획대로 생산을 맞추기 위해 인원이 부족하면 부족한 곳을 메꾸고, 감정이 격 해진 곳이 있으면 몸으로 막아 진정시킨다. 작업의 정점에 이르면 점심식사가 주어진다. 우리 회사는 급식 맛집이다. 우리가 만드는 샐러드 도시락보다 훨씬 화려하고 맛있는 식사가 제공된다. 포만감이 느껴지도록 점심을 먹고 서로서로 손에 약봉지를 들고 정수기 앞에 모여든다. 영양제를 먹는 사람, 관절약을 먹는 사람, 혈압약을 먹는 사람, 약봉지를 들고 서로 바라보며 웃는다.


스윗 밸런스  단호박 밀 샐러드


퇴근시간이 다가올수록 몸이 지친다. 노동으로 점점 기운이 빠져나간다. 힘이 드는 작업이 많았던 날에는 유난히 몸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분위기를 바꿀 만한 적당한 농담으로 웃음거리를 찾는다. 나이 50이 넘은 아줌마들의 건강한 농담은 웬만한 코미디보다 재밌다. 농담에는 걱정과 안부가 들어 있으므로 따뜻하기까지 하다. 웃음 속에  의리도 만들고  신뢰도 만든다. 그래도 몸은 점점 지치기 시작한다.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몸이 더욱더 빨리 알아채고 퇴근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서로 지쳤으니 더욱더 배려를 하고 퇴근을 서두른다. 청소를 하고 정리를 마치고 퇴근 지문을 찍는다.


별  사고 없이 무사히 하루를 마쳤음을 감사하면서 나도 퇴근을 한다. 평균 오후 6시 귀가하는 버스를 탄다. 두어 번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좋다. 퇴근이니까. 코로나  이전이면 어디 운동 모임이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모임을 할 수가 없다. 컴퓨터 관련해서 더 배워보고 싶은데 문화센터도 문을 닫았다. 그저 집으로 간다. 마트에서 제철 과일  한 봉지  사들고 7시쯤 도착한 집에는 대부분 저녁이 준비되어 있다. 나보다 먼저 퇴근한 딸들이 저녁을 준비해놓고 나를 기다린다. 언젠가부터 엄마의 시간은 철저히 엄마 혼자 즐기라는 식구들의 배려가 생겼다.


저녁을 먹고 아침에 보던 책을 본다. 매주 줌 수업을 한 곳쯤 신청해 두고 수업 준비도 한다. 몸이 지쳐 있으니 졸리다. 피곤한데 책을 언제 보냐면서 펄쩍 뛰던 동료가 생각나 픽 웃음을 흘린다. 나도 피곤하다. 눈이 천근 만근이다. 반려견 상구랑 잠깐 놀면서 잠을 깨 본다. 블로그 인사 오신 분(거의 없다)들께 답을 드린다. 책 리뷰를 중심으로 블로그를 꾸준히 해 보려던 계획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잘 안 된다. 글을 써볼까 궁리를 한다. 매일 그날이 그날인 59살의 나에게 쇼킹하게 글의 소재가 될 일은 많지 않다. 결국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공감하다가 부럽다가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자정을 넘기지 못하고 잠자리에 든다.


나를 들여다보니 나는 스스로 잘하는 것이 없다. 혼자서는 무엇을 이루어내지 못한다. 운동도 돈을 내고 끌어당겨야 하고 공부도 돈을 내고 끌어당겨야 한다.  끌어당기면  중상위는 유지한다. 머리 안 좋은 모범생 성적이다. 인생에도 회비를 내더라도 정확히 끌어당겨주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걱정하는 노후의 그 길에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쳐주는 굳건한 틀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나,  이제 보니. 나는 7,80년대 주입식 교육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새로운 발견이다.





이전 07화 나는 생산 공장 노동자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