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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Feb 18. 2022

나는 생산 공장 노동자다.

식품회사에 다닙니다.

   


또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작업복을 갈아입는 순간부터 머릿속에는 오늘 작업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펼쳐진다. 오늘 출근자 중에 갑자기 무단결근을 하겠다는 연락은 없었는지 핸드폰을 확인한다. 집안의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는 경우에 결근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각자 아침을 맞는 몸의 상태가 같지 않으니 결근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결원에 대한 대책을 생각하고 효율성 높은 작업 배치를 생각한다. 온몸을 크린 테이프로 훑어 내리고 에어샤워기를 통과한 후, 크린 콜로 취할 만큼 소독을 하고 생산 현장에 들어선다.

         

기계에 전원을 켜서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내 몸에도 작업 시작의 신호를 건다. 식품회사의 특성상 청결과 위생이 무조건 우선이라 몇 단계의 점검에 점검을 거친다. 전날 퇴근할 때 정리하고 소독해둔 도구와 기계의 안전과 청결을 점검한다. 잘 정리되어 줄을 지어 서있는 식자재와 반제품을 확인한다. 점검이 끝날 때쯤 큰소리의 아침 인사와 함께 동료들이 들어선다. 오늘 하루를 같이 보낼 동료들의 인사가 반갑다. 온몸을 위생복으로 뒤집어쓰고 있어서 눈동자밖에 안 보여도 눈빛만으로 정겨움이 느껴진다.     

     

동료들이 모두 출근하고 작업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이 게임의 성과를 위해 정확한 포지션으로 동료들을 배정한다. 나의 포지션은 전천후다. 감독이자 코치이자 선수여야 한다.  작업 배열로 길게 줄을 서서 각자 담당하는 업무의 재료와 자재를 확인하고 점검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마치 핸드볼 공을 올려놓고 휘슬이 불려 지기를 기다리는 선수들 같다. 작업 시작이다. 수많은 손들이 일사 분란하게 움직인다. 샐러드 도시락을 생산하는 회사답게 싱싱한 야채를 담은 그릇의 덮개가 먼저 열린다. 오늘 첫 번째 생산제품의 이름은 `군고구마 단 호박 샐러드`이다. 용기에 싱싱한 야채가 표시된 중량만큼 담긴다. 단 호박 샐러드도 담기고, 노릇노릇 잘 구워진 단 호박도 담긴다.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적당한 크기의 고구마도 식감을 더하고 빨갛게 빛나는 방울토마토는 화룡점정이다.   


출처  스윗밸런스 군고구마 단호박 샐러드


       

행동에 군더더기는 없다. 정돈된 작업 자세와 규격화된 제품만 움직인다. 제품은 동료들의 손을 거쳐 토핑이 된다. 기계의 힘을 빌어 수축포장을 마치고 최종 포장지로 꽃단장을 마친다. 상큼한 레몬 케일 드레싱에 포크를 얹고  유통기한 날인을 확인하면 완성, 이젠 팔려 나갈 차례다. 제품은 소중하게 이동된다. 상전이 따로 없다.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 팀이 되어 한 종목의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 집중한다.  동료들의 평균 나이가 50을 넘겼다. 한결같이 엄마 마음이다. 티끌만 한 하자가 발견돼도 바로 폐기한다. 하나하나 손길이 정성스럽다. 동료들의 집중력도 어떤 스포츠 정신보다 고급지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확한 제품과 생산량을 위해 달린다. 생각도 달리고 몸도 달린다. 실수 없이 완벽하게 작업을 마친다. 한 품목을 위한 경기가 끝났다. 노동으로 등줄기에 살짝 베인 땀의 흥분이 뿌듯하게 심장으로 녹아 들어온다.   

        

나는 생산 공장 노동자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안다. 땀으로 맺은 동료와 생긴 우정에 월계수를 씌울 줄도 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푸쉬킨의 명언에 답을 만들어 낼 줄도 안다. `삶이 그대를 속이면 노여워할 시간에 일을 해라.` 나는 육체노동의 이 담백함에 빠졌다.


이 일을 시작할 당시 십여 년 전 한동안은 나의 직업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구분하던 60년대 출신인 나에게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일하는 부모님께서는 `나처럼 살지 마라`고 열심히 공부시켰고  내 의식 속에는 육체노동이 폄하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일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만들어진 자리의 직업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만족하는 일거리가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거 아닌가. 나의 당당함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당당함이 된다. 어느 순간 깨달은 이 당당함의 논리는 나의 일과 동료들을 근사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열심히 일하는 엄마들의 일터가 자랑스럽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 보다 더 멋질 수 있을까. 내일 또 나는 멋있는 동료들과 신나는 경기 한판을 위해 즐거이 출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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