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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Jan 21. 2022

쉰아홉 살의 버킷리스트

60을 100미터 앞에다 두고

   

요즘은 60을 다시 시작하는 스무 살이라고 한다. 개뿔, 60은 60이다. 하지만 정년을 하기 에는 너무 정정하게 젊은 나이이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는 의미로 다시 시작하는 스무 살이라고 하는 가보다. 그러면 육체도 다시 시작하는 스무 살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그저 바람일 뿐, 애지중지 더 낡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한창 피어오르던 스무 살의 혈기 넘치던 몸과는 정반대다.  

    

더 나이 먹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첫 번째가 새벽 기상이다. 나는 타고난 밤 선생이다. 저녁만 되면 기운이 샘솟고, 내가 가진 아이큐를 의심할 만큼 머리 회전이 잘된다. 일도 미뤘다가 밤에 하고 공부도 밤에 한다. 밤마다 잠은 안 자고 뽀스락거리다가  아침이면 늦잠을 잔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마다 서두르는 내가 싫어서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새벽 네 시 기상이다. 갑자기 시차가 바뀌니 며칠을 비몽사몽으로 보냈다. 일주일의 하루는 하루 종일  낮잠을 잤다. 아이들이 놀린다.

“엄마 새벽 기상하지 마시고 그냥 주무세요.”    

 

새벽 기상 3주가 되어가고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한 새벽 기상도 아니고, 인류를 바꾸기 위한 새벽 기상도 아니다. 트렌드에 뒤떨어질세라 실천해야 하는 미라클 모닝은 절대로 아니다. 나의 여유 있는 아침을 보고 싶어 시작했다. 덕분에 출근은 여유 있다. 충분히 챙기고 뛰지 않고 출발한다. 버스카드가 있는 핸드폰은 꼭 챙긴다. 대신 퇴근 무렵인 6시만 되면 졸리기 시작한다. 일과 정리를 하고 밤 열 시를 넘기기 어렵게 되었다. 초저녁부터 졸리다. 하지만 휴무 전날은 여전히 밤을 꼴딱 새우며 놀고 있다. 토요일은 밤이 좋다는 유행가도 있지만 직장인인 나는 휴무 전날 밤이 좋다.    

 

새벽 기상에 더하여 또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몸치 탈출이다. 30대에 에어로빅 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열심히 배워볼 요량으로 앞줄에 서서 따라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음악에 끌려 다녔다. 시선은 선생님의 몸을 따라다니지만 내 몸은 무엇을 하는지 의식조차 하기 힘들었다. 손이 어디로 뻗었는지, 발은 어느 점을 찍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원래가 약간 박치라서 음악을 듣는 감도 느렸다. 빠르고 시끄러운 음악을 따라가지 못해서 항상 한 박자 늦는다. 서둘러 움직여도 어느새 다른 분들은 모두 끝나 있다. 내 몸은 언제나 에어로빅 교실에 기쁨과 웃음을 주었다.   

  

 두 달쯤 지났을까, 에어로빅 동기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뒷줄에 서면 안 되겠어? 웃겨서 수업을 못 하겠어~” 하면서 깔깔거렸다. 무엇이라, 그날로 에어로빅을 그만두었다. 언젠가는 내가 춤을 배워 보리라. 하지만 그건 아직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무슨 춤을 배울 것이며 어디 가서 배운단 말인가. 일단 몸이 구부려지지가 않는데 무엇이 가능할까. 얼마 전 텔레비전 드라마에 발레를 배우는 어르신 이야기가 있었다. 그분은 배우고 싶은 춤이 확실하게 있었지만 나에게는 딱히 배우고 싶은 춤도 없다. 다만 에어로빅 학원에서 쩔쩔매던 그 상황은 한 번만이라도 벗어나 보고 싶은 열망이 있다. 이제라도 직장 동료들과 함께 라인댄스 반이라도 찾아볼 생각이다.   


  

친정 가까운 시골에서 1년 살기를 해 보는 것도 나의 버킷리스트다. 몇 포기씩 몇 그루씩 채소가 자라는 적당한 텃밭을 가꾸고 싶다. 나의 지인들에게 무공해 채소로 맛난 밥상을 언제든 대접하고 싶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근처의 오일장에 나가 꽃무늬 몸빼 바지를 사 입고 즐거워하는 일상을 가져 보고도 싶다.  마당 가장자리에는 조만조만 한 채송화를 빙 둘러 심어놓고 싶다. 항아리 서너 개쯤 들여 만들어놓은 장독대 주변에는 불타는 샐비어도 심으리라. 방문을 열어놓고 들어오는 바람에 책장을 넘기면서 채송화 꽃잎, 샐비어 꽃잎이 부딪치는 향기는 덤으로 챙길 것이다.  집 앞 거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생각 없이 쳐다보면서 툭툭 빨래를 널고, 누군가 찾아오나 싶어 고개를 쑥 빼고 담장 밖으로 시선을 보내는 나를 보고 싶다.   

   

 이왕이면 부모님 곁에서 직장을 다니고 싶다.  퇴근길에는 아버지 좋아하시는 막걸리와 잘 삭힌 홍어를 안주로 사들고 노부모님 마당에 불쑥 들어서고 싶다.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늙은 부모님께 들려 드리고 싶다.  팔순이 넘으신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으실 게 뻔한데, 알면서도 나는 효도를 미룬다.       


60을 맞이하는 마음이 이리도 복잡할 줄 몰랐다. 60을 맞이하는 내가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청춘이 되어갈 줄 몰랐다. 60은 정리에 들어가는 나이인 줄 알았었다. 막상 내가 60을 앞에 두니 새로운 꿈이 생긴다. 그동안 가족들 속에 묻어두었던 나는 이제 밖으로 나왔다. 내가 하고 싶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다시 시작하는 스무 살을 노인으로 살아갈지 젊은이로 살아갈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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