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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o Oct 21. 2023

흄이 맞다면 근대적 자아는 허구였다!

4. 실존주의 시리즈

본격적으로 실존주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선행학습 과정이 있다. 바로 현상학이다. 누군가 모든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그랬던가. 사실 실존주의도 따지고 보면 플라톤의 수많은 각주 중 하나에 포함될 수 있겠지만 (물론 주로 플라톤과 반대되는 입장에서) 실존주의를 제대로 알기 위한 좋은 출발선은 아무래도 현상학(phenomenology)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그 현상에 대한 학문인데(아니 이걸 별개 학문 분야로 구분해서 연구한다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현상이 어떻게 나의 의식에 나타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현상학은 의식에 대한 아주 길고 복잡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실존주의는 결국은 의식에 대한 철학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1. 실존주의(A)의 이론적 토대는 현상학(B)이다.

2. 현상학(B)은 의식에 대한 철학(C)이다. 

3. 따라서 실존주의(A)는 의식에 대한 철학(C)이다.

       

철학의 한 분야라지만 현상학의 계보도 만만치 않다. 우선 현상학의 아버지가 독일 철학자 후설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후설은 또 다른 독일 철학자 브렌타노에게 ‘의식의 지향성 이론’이란 개념을 빌려와 큰 영향을 받았는데 그렇다면 브렌타노를 현상학의 할아버지 정도로 볼 수 있을까? 그런데 후설과 브렌타노는 칸트에게, 칸트는 또 흄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끝도 밑도 없이 올라가면 결국 플라톤까지 가겠구나 싶다. 재미있는 건 여기서 흄을 제외하곤 전부 다 독일인이다. (독일사람들이 왜 그렇게 ‘의식’적인 사람들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이쯤 되면 현상학은 독일산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 같다(반면에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메를로퐁티에 카뮈까지 등장하는 본격 실존주의는 프랑스산에 가깝다.)   

    

지면의 편의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식의 한계상) 논의의 범위를 한정 지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흄과 칸트 이야기는 안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흄과 칸트가 현상학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최대한 간략하게만 언급하고 현상학으로 넘어갈까 한다.     


먼저 흄. 데이비드 흄과는 개인적인 인연(?)이 조금 있다. 흄은 1711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는데, 12살에 에딘버러 대학교에 입학한 걸 보면 한국 어릴 때부터 상당한 천재였던 모양이다. 대학들은 캠퍼스라는 개념과 경계가 명확해서 보통 정문과 후문이 있는 특정 범위 안에 건물들이 모여 있다. 그런데 영국은 조금 더 자유분방? 어수선하다고 해야 할까? 도시 전체에 대학 건물들이 퍼져 있다. 에딘버러 대학을 예를 들면 1교시에 A건물에서 미시경제학 수업을 듣고 2교시에 현대철학 수업 수강을 듣기 위해 B건물로 가야 하는데, 만약 경제학과와 철학과 행정실이 평소에 서로 사이가 안 좋거나 소통이 잘 안 된다면 시내버스를 타거나,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야 하는 일도 있다. (참고로 에딘버러 대학 표어가 “Quaerite et Invenietis: 찾아다녀라! 그러면 발견하리라”이다.) 이런 웃지 못할 광경은 주로 1학년 신입생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대학 건물 위치가 친숙하지 않고, 또 신입생이다 보니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과목들의 조합을 수강하는 경우가 2학년 이상 재학생들보다 아무래도 많기 때문이다. 3학년쯤 되면 자연스레 전공 범위도 좁혀지고 짬도 생겨서, 스스로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는 수강표를 만들게 된다. 그래도 나름의 캠퍼스 같은 개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서, 에딘버러 대학교의 경우 중앙도서관을 중심으로 중앙에 작은 공원을 끼고 그 주위를 4~5개의 주요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내가 주로 경제학 수업을 들었던 데이비드 흄 타워가 그중 하나였다.      


(*출처: Daily Mail: 우뚝 솟은 건물이 데이비드 흄 타워가 그 왼쪽이 중앙도서관이다)

그러니까 내가 흄의 까마득한 후배가 되는 셈인데, 놀라운 우연이 하나 더 있다. 둘 다 에딘버러 대학과의 인연이 2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다. 흄은 입학 후 2년 동안 자연철학과 고전, 논리학 등 당시 보편적이었던 대학 교과과정을 이수했는데 해보니까 별것 없었던지 대학을 그만둬 버린다. 나도 따라 했다. 딱 2년만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둘의 차이는 있다. 흄은 이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란 어마어마한 저작을 집필했고 난 군대에 갔다는 사실.      


흄은 이후 프랑스에선 디드로, 몽테스키외 등과, 영국에선 애덤 스미스와 교류하면서 경험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차근차근 다져간다. 흄에 의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비롯되는데, 경험하지 않은 것이면 참이 될 수 없다. 그런 흄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인상(impression)과 관념(ideas)이다. 인상이란 생생하고 강렬한 감각적 지각인데, 해 질 녘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같은 직접적인 이미지나 기쁨과 슬픔 같은 심리적 경험들도 포함한다. 그리고 이런 인상이 사라지고 난 후 머릿속에 떠올려지는 잔상, 즉 정신적 이미지가 관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어떤 관념도 선행하는 인상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즉,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직접적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인상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동양으로 치면 백문이 불여일견, 즉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과도 같지 않을까? 아마도 맞는 것 같다. 우리는 경험한 만큼만 세상을 볼 수 있다.      


잠깐 여담이지만 영국에 있으면서 독일에 몇 번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영국에 산 지 몇 년이 지나서야 바로 옆 독일에 고모할머니 가족이 살고 계신단 말을 들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독일에 가본 적이 없던 나에게 독일이란 맥주, 아우토반, 히틀러, 전쟁 등의 인상과 관념뿐이었다. 왠지 모르게 독일사람들은 엄격하고 깐깐하며 독일은 햇빛도 잘 들지 않는 회색빛의 우중충한 나라일 것만 같았다. 처음 독일에 간 건 고모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서였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 편견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모할아버지와 할머니가 60년대 서독으로 파견을 간 광부와 간호사로 만나서 결혼하시고(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들이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독일에 사셨던 놀라운 가족사부터 시작해서, 독일에서 태어나 쭉 자라온 고모와 삼촌이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해 무늬만 한국인이지 속은 독일사람과 마찬가지란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신기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외국인들이 가족이란 사실이 반가웠고, 삼촌이 그냥 외국인이구나 싶어 안심하고 같이 맥주 마시며 담배를 피우려고 할 때 삼촌이 씩 웃으면서 “넌 싸가지 없이 삼촌 앞에서 맞담배를 피우냐?”라고 했을 때 한국에 한 번도 산 적이 없었는데도 유교 DNA가 탑재된 것 같아 신기했다. 


고모할아버지부터 시작해서 삼촌까지, 그렇게 줄담배를 피우면서 종일 맥주를 마시고, 또 말로만 듣던 아우토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시속 200km가 훌쩍 넘는 속도로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독일에 대한 내 고정관념이 굳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러기엔 독일사람들은 너무나도 친절했고, 독일은 또 어찌나 그렇게 아름다운 나라였는지. 삼촌의 친구들을 포함해서, 길거리에 행인들까지 모두 밝은 미소를 띠고 삶에 여유가 넘쳐 보였다. 칙칙할 줄만 알았던 도시의 건물들은 섬세한 석공 디자인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도시 전체를 감싸던 푸른 하늘과 기분 좋은 햇볕을 쬐면서 그제야 내가 날씨 안 좋기로 소문난 영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사람은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다. 독일에 안 갔으면 어쩔 뻔했나…     


아무튼 흄은 백문이 불여일견을 아니, 경험을 강조했고 우리가 어떤 사물을 경험해 인식할 때 그 인식은 직접적인 인상들의 집합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인상주의 화가 모네는 자기 집 정원에서 평생 약 250여 점의 수련 그림을 그렸다. 같은 장소에서 수련을 그렸지만 250개가 모두 다른 그림이다. 매번 햇빛의 위치와 방향, 세기가 달랐고 물 위에 떠 있는 수련의 위치가 변화무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분명 같은 정원 속 수련이다. 우리가 모네의 수련을 인식하는 것은 250여 점의 다른 그림을 통해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련의 ‘배후’에서 우리의 감각 지각으로는 인식되진 않지만, 수련을 수련이게끔 만드는 실체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각자 저마다의 수련이 있을 뿐 이것이야말로 수련이다! 식의 본질은 없는 것이다. (살짝 실존주의의 향기가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흄은 정신적 실체 관념에 대해서도 배후 조직은 없다고 단언한다. 즉, ‘인간은 다른 지각(인상+관념)의 다발이거나 묶음에 불과’하므로 배후에서 이러한 지각 더미들을 질서정연하게 관리하는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오해 중의 하나는 우리가 살면서 계속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흄의 주장대로 우리가 그때그때 느끼는 여러 인상과 관념의 집합일 뿐이라면 지난주와 어제의 나는 오늘 나와 같을 수 없다. 독일에 가기 전의 나와, 다녀온 후의 나는 같을 수 없다. 심하게 말하면 인간은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 대로 생성되는 인상과 관념의 네트워크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 대로’가 이후 칸트를 거쳐  실존주의의 핵심 중 하나인 ‘의식’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한다.     


어쩌면 약 백 년 전 데카르트가 말한 통일된 자아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나는 경험한다, 고로 매번 다르게 존재한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흄이 맞다면 근대적 자아는 허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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