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실존주의 시리즈
신은 왜 월요일을 만드셨을까?
월요일 아침만 되면 삶의 새로운 호랑이 기운 같은 게 솟아나는 직장인은, 아마 없을 거다. 적어도 난 아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생긴다. 일이 힘든 경우는 크게 두 가진데 양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와 일이 어렵거나 까다로워서 첫 단추를 끼우기가 어려운 경우다. 경험상 차라리 일이 많은 게 낫다. 오래 걸리더라도 일단 진도는 나가니까. 그런데 두 번째 경우는 잘못 걸리면 정말 골치가 아프다. 하긴 해야 하는데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몰라 시간만 흘러갈 때, 그때 혹시 한글 프로그램의 흰색 여백 위에 검은색 커서만 껌뻑껌뻑하는 공포를 느껴보셨는지…
업무의 성격이 애매해서 어느 부서가 그 업무를 맡을지 정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누가 주인인지가 빨리 결정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속절없이 시간이 끌리면 일은 일대로 안 되고 부서 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이런 경우는 기관장이나 본부장급에서 깔끔하게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A이야 네 말도 맞고, 응? 듣고 보니 B, 네 말도 맞구나, 옳거니, 인제 보니 모두의 말이 맞구나! 라고 얘기하는 황희 정승 같은 리더십은 절대 사절이다. 죄송합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지금 근무하는 회사는 공공기관인데, 공공기관의 특성상 정부의 관리지침을 따라 수행해야 하는 업무가 꽤 많다. 예를 들어 정부는 모든 공공기관에서 직무급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실 권고보단 강한 수준이어서 경영평가를 받을 때 얼마만큼 직무급을 잘 도입하고 있는지 평가 점수를 받는다. 경영평가 총점에 따라 한 해 성과급이 달라지니 말을 안 들을 도리가 없다. 아 참 그전에. 참고로 직무급은 연봉을 주는 여러 가지 제도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연공급이 대세였다. 쉽게 말해 연차가 올라갈수록 연봉이 올라가는 식이다. 그런데 직무급은 이제부턴 단순히 나이가 많고 연차가 많다고 해서 돈을 더 많이 주는 게 아니라 하고 있는 일, 즉 ‘직무’의 난이도에 따라서 연봉을 다르게 주자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게 새로운 대세로 자리 잡을 것처럼 보인다. 듣기에 민간에서는 직무급을 도입한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직무급이 얼핏 보기에 합리적으로 보여도 이게 막상 도입하려고 보면 절대 쉽지 않다. 예컨대 직무 간 난이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어찌어찌 정해놓아도 직원들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산 수립과 회계 관리, 사업 프로젝트 관리, 정책연구 수행 등 수 많은 직무 중에 과연 중요도를 어떻게 가린단 말인가.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소지가 다분하다. 게다가 극단적인 경우로 30년 차 팀장급 직원보다 10년 차 팀원이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면? 이게 우리나라 정서상 받아들이기가 아직은 쉽지 않다.
그래도 정부의 지침이니, 언젠가는 도입해야 하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이 어렵고 부담스러운 총대를 메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한번 따져보자. 직무급이란 결국 직원들의 월급이기 때문에 월급을 주는 부서의 소관이 맞다(고 난 생각한다). 그런데 직무에 대한 평가와 순위를 매겨야 하는 작업은 조직을 관리하는 부서의 일이다. 이 작업이 선행되어야 월급을 차등해서 줄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직무급은 경영평가 점수를 관리하려는 차원의 성격이 강해 경영평가 담당 부서도 관여되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년 직무급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현란한 탁구 게임이 시작되는 거다. 야 이거 받아! 핑퐁, 핑퐁. 뭐? 이걸 왜 나한테 넘겨. 네가 받아! 핑퐁, 핑퐁.
이런 사례는 직무급 말고도 얼마든지 많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기관의 기획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근무하다 보니 이게 단순히 일하기가 싫어서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본질은 서로 자기 부서에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런 핑퐁 게임이 발생하는 이유는 업무 분장에 명확한 경계가 없는 애매한 일이 생겨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치열한 핑퐁 게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핑퐁, 핑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