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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자유–바람의 길을 따라』

by 박경현

1.

여행은 도망이 아니다.

도망치는 이가 바라는 것은 숨고 사라지는 것이고,

여행자는 그저 더 멀리 살아 있으려는 것이다.


2.

익숙한 하늘 아래선 날 수 없다.

자유는 낯선 풍경을 통과할 때,

비로소 자신의 무게를 벗는다.


3.

여행은 목적지를 정하는 일이 아니라

길 위에 자신을 던지는 일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당신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4.

지도에 없는 장소를 향해 걷는 자는

결국 자신의 안쪽을 걷는다.

그 깊은 골짜기에 바람이 머물고,

바람 속에서 나란 존재가 흔들린다.


5.

모든 자유는 혼돈을 품는다.

그리하여 떠나는 사람은 언제나 고독하지만,

그 고독이야말로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6.

어느 날 나는 길 위에서 울었다.

울음에는 목적이 없고,

여행에는 계획이 없다.

모든 것은 그저, 흘렀다.


7.

자유란 가진 것이 없는 자의 마지막 특권이자,

모든 것을 가진 자의 마지막 갈망이다.


8.

발자국 없는 땅을 밟을 때마다

나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사람이라 믿게 된다.

그 믿음 하나로 오늘도 먼 곳을 꿈꾼다.


9.

떠난다는 건,

아직 내가 굳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바람에 흔들릴 줄 아는 몸만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


10.

자유는 외로움을 견딘 자에게만 허락된다.

그래서 자유로운 자는 언제나 눈빛이 맑다.

그 맑음은 깊은 쓸쓸함의 증명이다.


11.

여행길은 언제나 자신과의 화해로 이어진다.

풍경은 변하고, 사람은 지나가도,

남는 건 ‘내가 왜 떠났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12.

낯선 도시의 새벽 공기는

내가 어제였던 사람을 지우고

내일의 내가 머물 자리를 만든다.


13.

자유로운 사람은 방향을 묻지 않는다.

그들은 길을 걷는 게 아니라,

길 자체가 되어간다.


14.

어느 골목에선 시간이 숨을 쉬었고,

어느 바닷가에선 고요가 날 끌어안았다.

이 세상엔 아직 내 마음이 닿지 않은 감정들이 있었다.


15.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는

떠나는 발걸음에 삶의 무게를 두고 왔기 때문이다.

여행은 짐을 버리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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