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매일 수십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 청정구역’이었던 나의 좁은 인맥에도 비로소 확진자가 생긴 걸 보면 우리 삶의 깊숙한 곳까지 코로나가 침투했음을 느낀다.
혹한기 훈련에 대한 구체적인 날짜가 나온 것은 꽤 예전의 일이었다. 작년에는 갈수록 심해지는 코로나 때문에 유격훈련이 번번이 미뤄지다가 끝내 취소되고 말았다. 선례를 경험한 선임들은 이번 혹한기도 그러리라 믿으며 구체적인 일정이 나왔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실제로 확진자 수가 점점 치솟았고 우리 대대를 비롯해 인접대대에서도 꾸준히 확진자가 나오는 탓에 그들의 믿음은 실현되는 듯 보였다.
예정된 날짜는 슬금슬금 다가오는데 훈련이 미뤄지거나 취소될 기미가 전혀 없었다. 이제는 미뤄져야 하는데, 지금쯤이면 취소된다 해야 하는데. 정말 이러다가 훈련해버리는 거 아닌가 발만 동동 구르다 보니 어느새 혹한기는 문 앞까지 찾아왔다.
어김없이 영하의 기온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오질 않길 밤중에 빌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달 들어 가장 추운 주간에 훈련은 시작되고 말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중대에 계셨던 반장님 말씀으로는 7년 만에 처음으로 숙영을 한다고 했다. 매년 혹한기 훈련은 진행했지만 보급부대 특성상 보직에 관련된 훈련만 했지 숙영은 생략했었는데 올해 들어 다시 하게 된 것이다. 작년 말에 새로 부임하신 여단장님의 영향이 아닌가 하고 우리들은 짐작했다.
그런 이유로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나가야 했다. 엄동설한에 야외 취침을 해야 하니 불편하더라도 껴입어야 했다. 평소에는 꺼내지 않는 타이즈까지 입었다. 하반신은 추울지언정 편해야 한다는 주의였는데 이번만큼은 고집을 피우지 않기로 했다.
해가 떠 있는 주간에는 보직과 관련된 훈련을 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0도 부근의 기온이었지만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겹쳐있은 깔깔이나 타이즈가 땀에 젖어 찝찝하고 불쾌했지만 잠깐 있으면 금세 말라버려서 다시 추워졌다. 땀을 흘리고 또 말라서 추워지기를 반복했다.
훈련 기간에도 식사는 정상적으로 취사장에서 진행됐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완전군장 상태에 총기까지 맨 채로 밥을 먹고, 먹고 나서는 본인이 직접 식판을 씻어야 했다. 숙영지는 우리 업무지 중 한 곳이었는데 대대를 가로로 놓고 봤을 때 취사장과 숙영지는 양 끝단이었다. 그래서 하루 네 번, 아침 점심 저녁을 비롯해 야식까지 4일 동안 대대 끝과 끝을 왔다 갔다 했다. 훈련이 끝난 다음날에 30km 행군이 계획돼있었는데 훈련기간 동안 우린 이미 행군을 한 거나 다름없단 생각이 들었다.
야식이라고 해야 저녁을 먹은 지 1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20시였으나 우습게도 배는 또 고팠다. 저녁을 든든히 먹었어도 숙영지로 돌아오는 동안 배가 다시 꺼지기 때문이다. 배를 채우려 숙영지를 떠나 취사장으로 갔거늘 돌아오면 다시 배가 고파져있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야식을 먹고 돌아온, 여전히 굶주린 우리들은 잘 준비를 했다. 이 날 밤은 30년 조금 덜 산 내가 겪은 최악의 밤으로 꼽을 수 있다.
잠에 들기 전까지는 아늑해 보였다. 침낭 속에 모포를 깔아 두니 포근해 보이는 게 빨리 그 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핫팩도 잔뜩 터트려놨으니 아무리 추워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무거운 군장과 총을 메고 움직여서 지친 몸을 얼른 누이고 싶었다.
첫날밤이 최악의 밤이었던 이유를 꼽으라면 우선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살벌한 추위에 비해 충분하다 싶었던 핫팩은 치명적으로 모자랐다. 두 번째는 모포를 덮고 잔 게 아니라 깔고 잤다는 것, 세 번째는 침낭을 이날 처음 써봤다는 점이다.
훈련소 때 숙영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침낭을 써봤다. 몸의 어느 부분까지 침낭에 넣어야 할지 몰랐기에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무작정 욱여넣고 지퍼를 잠갔다. 침낭이라는 좁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셈이다. 군복에 두터운 외피에 목도리까지 두른 채 비좁은 침낭 안에 갇혀있으려니 너무나 답답했다. 자세를 바꿀 여유도 없는 환경에서 계속 누워있어야 했다. 공간이 없어 무릎은 펴지도 못하고 어깨는 결리고 평평하지 못한 바닥 때문에 등이 저렸다. 코까지 덮어쓴 목도리에는 찬 공기를 만난 입김이 만들어낸 물방울이 주렁주렁 맺혀 기분 나쁜 습기가 느껴졌다. 그렇다고 목도리를 내릴 순 없었다. 영하의 차가운 공기를 목도리를 통하지 않고 그대로 들이마셨다간 기관지가 깨질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낮이 오기만을 빌었다. 시간아 빨리 가라, 빨리 해가 떠라. 추워서 잠은 오지 않고 몸은 쑤시지 않은 곳이 없고 숨도 편하게 쉴 수 없는 밤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아침은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육체의 피로감은 여전했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더했다. 오늘 밤도 여기서 자야 하는 건가.
두 번째 밤에는 두 배의 핫팩을 터트렸다. 침낭 바닥을 전부 핫팩으로 덮었다. 양말도 두 겹 신고 양말 사이에 핫팩을 넣었다. 몸도 겨드랑이까지만 침낭 속에 넣고 윗부분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쾌적한 밤이었다. 첫날밤보다 덜 추운 것도 있었지만, 전에 비해 개선된 사항들이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핫팩을 넣고 잤던 내 왼발의 일부는 약 3주가 지난 아직까지도 감각이 없다. 저온화상이라나 뭐라나.
지친 몸을 이끌고 숙영지로 돌아오면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별들이 저마다의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혹한기에서 얻은 유일하게 감명 깊은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