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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써니 Oct 27. 2022

마법의 테이블

게으른 엄마의 치명적 약점

우리 집엔 기다란 테이블이 있다. 언제쯤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서재형 거실을 꿈꾸며 미리 들여놓았던 거실용 식탁인셈이다.


그 테이블은 마법에 걸렸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럴 것이다. 집안의 온갖 잡동사니가 희한하게도 그 테이블로만 모이기 때문이다. 자질구레한 종이접기(아이는 보물이라지만..), 반쯤 먹다 넣어놓은 빵 쪼가리, 끼적이던 수첩과 색연필, 펜, 색색깔의 물컵, 오밀조밀한 피규어들까지…한두 개가 테이블 끄트머리부터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식탁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물건들에 꽉꽉 들어차 있다. 때문에 가끔은 온갖 잡동사니를 그냥 한켠으로 쭈욱 밀어놓고 테이블의 반만 사용해 옹기종기 식사를 마치기도 한다.


 테이블이란   커다란 살림살이인 데다가 집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보니 집안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데에 핵심 역할을 한다. 커다란 인형에 가방까지 얹어져 있는 날에는  집안이 뒤죽박죽인 걸로 느껴지는  물론이다. 실제로 테이블이  정도일 때는 집안의 상태도 뒤죽박죽인  사실이지만..







엄마로서 아내로서 주부로서 나의 최대의 약점은 '집안일'이다. 해도 티가  나고 품이 많이 드는 데에 비해 성과나 만족감 뿌듯함 등의 긍정적인 감정이 별로 느껴지질 않는 , 무릇 모든 ''이라는 것에 '노력'이라는 것이 들어가면 '성과"라는 것이 보여야 하는 법이거늘 하루 종일 시간을 들여 정리하고 치워봐야 아이가 1시간만 자유로이 놀아도 원상복구 되고 마는 세상 가장 의미 없는 일로만 느껴진다. 물론 이건 철저히 ''라는 사람에 한해서다. 누군가는 반짝이는 거울을 보며 미소 짓고 향긋한 거실에서 뿌듯함을 느낄 것이 당연하니까. 그만큼 '나는' 집안일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신랑이 참 부러웠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지만 육아도 살림도 여성에게 더 무게를 두는 사회적 통념 덕분에 슬쩍 나의 몫이 아닌 듯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을 마음이 말이다. 맘 같아서는 나도 내 일에만 더 매진하며 집안일에는 양다리를 걸친 듯 슬쩍 한 발만 담가 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게으른 덕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더러움에 대한 역치가 남들보다 높다. 웬만한 정도로는 거슬리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부대끼지도 않는다. 피곤해 죽을  같은 상태에서도 발에 무언가 밟히는  싫어 퇴근하고   집안을 청소해야 한다며 골골거리는 동료에게 "그럼... 양말을 신어!"라고 답할  있는 것도  때문이다. 사람이 이처럼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이미 번쩍번쩍 멀쩡한 집도 쓸고 닦고 씻어내야 살아지는가 하면   같은 사람은 설거지가 쌓이건 테이블이 뒤죽박죽이건   일을 하는 데에 전혀 제약이 없다.



그 덕분에 우리 아이는 굉장히 더티하게 자랄 수 있었다. 조금 더러운 '꼴' 따위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비 오는 날 구정물에서 첨벙 거리는 일도, 맨 손으로 개미를 잡고 열매를 잔뜩 수집해오는 일도 모두 별 일 아니었다. 식사 시간에도 온 얼굴에 손바닥에 칠갑을 하고 먹어도 닦느라 애쓰지 않았고 온 바닥에 반찬이 굴러다녀도 찌푸리거나 성질낼 일이 없었다.


"아오... 정말!"

"애한테 뭐라고 하지 마~다 먹고 닦으면 되지~그게 왜?"


날아다니는 밥풀 아래에서도 태연한 나를 보며 신랑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누가 보면 본인은 되게 깔끔한 줄 알겠다.






처음에는 말끔하고 깔끔한 것이 최고인 줄 알았고, 이유식 책에 나온 재료들의 몇 그람 몇 그람까지 다 맞추어야 아이가 잘 자라는 줄로만 알았다. 겪어보니 조금 게으르고 가벼워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수시로 쓸고 닦고 밥 먹는 내내 주변을 졸졸 따라다녀봐야 너도 나도 피로하고 지치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칠갑을 하는 것도 밥알이 날아다니는 것도 다 한때였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양반도 이런 양반이 없다. 여전히 자장면을 입 주변 그득 묻힌 얼굴로 씨익 웃는 아이이지만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래도…이제 마법의 테이블에 잡동사니들은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거 또 누가 올려놨어, 여기 올리지 말랬지!!"

내일은 우리 집에서도 큰소리가 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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