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짱 할머니 돼
엄마, 천 살 만 살 돼야 해. 좋은 말만 하고 좋은 거 먹고 핸드폰 많이 보지 말고 운동도 하고. 그래서 몸짱 할머니 돼. 나 할머니 될 때까지 같이 있자.
아이는 어른을 살고 싶게 한다.
그것도 아주 '잘' 살고 싶게.
복제 인간이 나오는 동화책을 한참 읽던 꼬맹이는 그 주인공 복제인간의 수명이 짧아진 것에 제법 심각해했다. 오래 살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그 복제인간의 모습을 보며 지 엄마를 생각한 모양이다.
자기 전까지 복제인간이야기를 한참 하던 꼬맹이는 엄마를 꼭 끌어안고 당부하는 걸 잊지 않았다.
"엄마. 엄마는 천 살 만 살도 돼야 해."
인간의 수명이나 삶과 죽음에 대해 알만한 나이의 알만한 아이임에도 말도 안 되는 억지스러운 요구를 남겼다.
"그러니까 좋은 말만 하고 좋은 거 먹고 핸드폰 많이 보지 말고 운동도 하고!! 몸짱 할머니 돼!!"
줄줄줄줄 읊어지는 이상한 맥락의 잔소리에 어쩌지 못하고 내 웃음이 따라붙었다.
"몸짱할머니? 푸흐흡"
"응응. 나 할머니 될 때까지 꼭 함께 있자."
그 후로도 품에 꼭 안겨 복제인간은 어떻고 엄마는 어떤 할머니가 되어야 하고 그런 시답잖은 말들을 줄줄 늘어놓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감은 눈의 속눈썹을 한참 바라보다 생각했다.
정말로 그러고 싶다고.
몸짱 할머니로.
천 살 만 살까지.
네가 할머니가 되도록.
어른이 되고 겁이 많아졌다.
어린 시절에도 그렇게 눈에 띄게 용감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로 겁이 많진 않았다. 동네 언니오빠들을 따라다니며 높은 담벼락에도 올라가 펄쩍 뛰었고, 물가에도 겁도 없이 첨벙첨벙 들어갔다. 자전거건 자동차건 기차건 비행기건 어떤 거 하나 무섭지 않았고 하나같이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세상에 무서운 거 천지다. 높으면 높아서 무섭고 좁으면 좁아서 무섭다. 컴컴하면 컴컴해서 무섭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무섭다. 바퀴 달린 건 다 무섭고 날개 달린 건 다 싫다. 어려서 돈을 내고 탔었던 놀이기구들은 지금은 돈을 준다 해도 탈까 말 까다.
어른이 되고 많아진 겁은 엄마가 되고 더해졌다. 세상이 그리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 사고라는 게, 병이라는 게 그리 삶과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 그런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탓에 엄마의 이상한 '용기' 못지않게 이상한 '두려움'도 커져갔다. 남편과는 장난 삼아 항상 이야기한다. 우리가 삶에 대한 욕망이 강해져서 그렇다고.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해질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건 당연하니 살고 싶어 질수록 겁이 많아지는 건 무조건 따라오는 수순이었다.
나하나 죽는 것 따위 크게 무섭지 않았던 한 인간은 어른이 되면서, 엄마가 되면서 '죽음'이 조금 더 무서워졌다.
살고 싶고, 이왕이면 오래 살고 싶고, 게다가 한 번 사는 거 '잘' 살고 싶기까지 해지는 걸 보면 아이라는 건 인류가 계속 생을 이어가게 하는 굉장히 커다란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천 살, 만 살까지 살아내라는 아이의 이상한 요구에 '삶'에 대한 의지가 조금 더 강해지는 이상한 어른이다.
아이의 말은 오늘도 이렇게 수시로 어른의 마음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