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제상 Feb 16. 2023

그 밤, 키스는 멘솔 맛이 났다.

삶이란


  여럿이 골방에 앉아서 대본을 만들고 있었다. 그 합동 작업에서 그 애를 처음 봤다.


  골방에 쭈그려 앉아 있는 그 애를 봤을 때 그 장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진한 스모키 화장과 고스로리 풍의 옷차림까지, 전형적인 일본 애니에 나올 법한 음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애의 대사와 표현력도 예상대로 가학적이었다.   


  “이렇게 쓰면 등장인물들이 전부 속에 시커먼 슬픔을 지니고 있는 것 같잖아!”


  인사도 제대로 안 했는데, 나는 화부터 냈다.


  “선배, 슬픔이 없는 등장인물은 입체적이지 않아요!”


  그 애는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을 동그랗게 만들며 나를 바라보며 호소했다.


  자신의 문장을 살려달라고, 자신이 심어준 슬픔을 살려달라고.


  “아무리 이번에 추리극을 쓰고 있지만, 단편적인 조연들까지 이러면 극이 너무 무거워진단 말이야.”


  어디서 감히 선배의 말을 물어? 바로 따끔하게 혼내줬다.


  대충 쪽대본이 완성되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극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무대 소품을 밤늦게 까지 만들고 자정쯤에 자취방에 돌아왔다. 씻기도 귀찮아 일단 누워서 SNS를 보고 있었다.


  3분 전, 그 애의 SNS에 글이 올라와 있었다.


  ‘범해져, 살해당하고 싶어.’


  이 글을 보자 맨 처음에는 물음표가 찍혔다. 이번 극의 대사인가? 아님, 다음 작품의 대사인가? 궁금증에 댓글을 길게 쓰고 있었다.


  ‘댓글을 달 수 없습니다.’


  댓글을 달자 저런 문구가 나왔다. 짧은 사이 그 애는 자신의 글을 지웠다.


  뭔가 불안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 애는 멀지 않은 고시원에서 살고 있었다. 당장 전화를 걸었다.


  “뭐 해? 잠깐 나와봐. 대사 좀 다시 따자.”


  보통 자정이 넘은 이 시간에 나오라고 하면 민폐지. 그래도 부르고 싶었다.


  이 이상하고 불안한 기분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 애는 순순히 나왔고 우리는 공원에 앉아 캔맥주와 담배를 피우며 본심이 아닌 극 이야기를 나눴다.


  “선배는 내가 이상해요?”


  “네가 보기에 내가 더 이상하지 않냐?”


  “흠... 선배 같은 스타일은 은근히 흔해요. “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


  우리는, 아니, 나는 슬슬 SNS의 글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눈치는 그 애가 더 빨랐다.


  ”선배의 전화 오기 전에 이미 다섯 통의 전화가 왔어요. “


  ”아...? 그래? 다들 뭐래? “


  ”뻔하죠. 무슨 일이냐, 술 마실래? 이런 이야기? “


  ”그런데 왜 나를 만난 거야? “


  ”선배가 평소 나에게 사심이 없어 보여서요. 제가 우울증을 꽤 오래 앓고 있어서요. 가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다른 게 목적이더라고요. “


  “얘 좀 봐라. 내가 제일 위험한 사람이면 어쩌려고? 내가 어떤 줄 알고?”


  “진짜 위험한 사람은 자신이 위험하다고 하지 않아요. 언제나 달콤한 말로 다가오는 사람이 제일 위험하던데요? “


  “하!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


  그날 많은 과거와 아픔이 오고 갔다. 시간이 꽤 흐르고 담배가 떨어졌다.


  “담배 없어. 이제 들어가자.”


  “선배 제 것 하나 남았어요. 나눠 피워요.”


  “반갈(한 대로 나눠 피기)은 아무나 하고 안 하는데? “


  그 밤, 키스는 멘솔 맛이 났다.


작가의 이전글 강남호스트바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