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강릉에서 일자리 구하기 - 2편

- 서울을 떠나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

by 중현

상대방 입장에서는 내 모습이 참 의아해 보였을 것이다.

새로운 바리스타가 필요해 구인 사이트에 공고를 올렸다. 그런데 그중 지원한 사람의 이력서를 살펴보니 사는 곳이 서울이란다. 대체 누군가 싶어 확인하니 나이는 서른 중반이요, 그동안의 경력으로 미루어 보아 커피 만들기는커녕 회사에서 주야장천 카누만 마신 것 같아 보인다. 커피 업계에서 일하는 신인치고 나이도 많고 경력도 쓸 곳이 없었다.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내키는데, 더 꺼림칙한 부분을 발견했다. 바로 구인란에 제시한 연봉보다 현재 이 사람이 받고 있는 금액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지금 장난하나?! 연봉을 깎아서 강릉까지 오는 사람이 어딨어?!!"

농담이라 치부하려 하자 자기소개에 '지금 일을 그만두고 강원도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글귀가 보였다. 내용을 살펴보니 번지수는 맞게 찾아온 듯싶었다.

"아~ 그래, 어릴 때 강원도에서 살았나 보지?"

이해가 가는 한편, 아무렴 어떨까 싶었다. 개인 사정은 알 바 아니었다. 지금 가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릴 적 추억에 젖어 지방에서 살기를 갈망하는 30대 중반의 청년'이 아니라, 강릉에서 출퇴근 가능하고 당장 내일이라도 출근할 수 있는 몸 튼튼하고 나이 어린 20대 초반 청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자기소개 등의 내용을 더 살펴보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이력서로 시선을 옮겼다.


위 내용은 내 이력서를 보고 적잖이 당황했을 인사 담당자들을 상상하며 쓴 내용이다. 어림짐작으로 썼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위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서울에서 일하다가 일을 그만두고 지방으로 가는 상황을 흔히 마주하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그 때문인지 15군데 가까이 이력서를 넣었지만 하나같이 답을 받을 수 없었다. 딱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3월 16일 오후 1시 20분. 나는 지금 안목항 가까이 어느 카페 앞에 서 있다. 카페는 하얀색으로 채색한 벽에 파란색 대문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건물이다. 흡사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건물을 본떠 만든 이 카페는, 가게 이름 또한 그곳을 연상시키는 '산토리니'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 계산대에 있는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1시 30분에 면접하러 왔는데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면접이라는 말에 힐끗하고 나를 본 직원은 손가락으로 내 오른쪽 뒤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인터넷 뉴스 등에서 접한 '산토리니' 대표가 조용히 신문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분께 다가가 인사한 후 안내해 주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의 첫인상은 다음과 같았다. 머리털은 희끗희끗하며, 머리카락은 거칠게 쭉 뻗어있다. 눈썹은 다소 예리한 데다 눈매가 부리부리한 편이다. 얼굴이 각져 있어서인지 깐깐한 인상을 풍겼다. 옷은 체크무늬 남방에 바지는 평범한 검은색 면바지, 그리고 넓적한 구두를 신고 있다.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까칠한 성격인 듯 보였다. 바리스타는 자기 분야에 까다롭고 또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과연 바리스타다운 분위기를 풍겼다.


이 사람은 왜 나를 채용하려 한 걸까? 과연 내게 어떤 말을 물어올까? 면접에서 어떤 질문을 던질지 몰라 오기 전에 커피 관련 책 3권을 사다 읽었다. 커피 품종은 아라비카와 로부스타가 있고, 커피 재배가 가능한 지역 북위 25도 남위 25까지를 커피 벨트라 했다. 그리고 커피 추출은 크게 침출식과 여과식이 있으며, 주요 생산지는 브라질, 에티오피아, 베트남 등등... 우선 내가 말할 수 있는 데까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그런데 정작 면접이 시작되자 커피에 관한 질문은 온데간데없이 다른 쪽으로만 물어보았다. 그는 나더러 카페에서 자기 다음으로 연장자라고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나이 어린 친구들과 어울릴 자신이 있냐고 물었다. 서른 중반인 내가 20대 초중반 사람들과 잘 적응해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나는 대표님께 일본 대학교 재학 시절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입학 당시 4살 아래인 대학교 동기들과 반말을 주고받으며 생활했고, 큰 불편을 못 느꼈다는 사실을 피력했다. 그는 안심이 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몸을 뒤로 젖히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전국에 3군데 점포를 갖고 있었다. 앞으로 점포를 늘려 테라로사처럼 전국구 커피 전문점으로 되기를 희망했다. 장차 회사가 커지면 그동안 해온 영업 업무를 내게 맡기고 싶어 했다. 국내 점포뿐만 아니라 해외 커피 농장으로 직접 가서 생두를 수입하는 일까지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최소 1년 동안 커피 관련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매장에서 일하면서 커피에 관한 지식을 늘려갈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아- 나를 뽑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구나. 커피 경력도 없고 나이도 많은 나를 채용한 까닭이 거기에 있었던 거구나. 비로소 이해가 갔다. 대표님은 내게 앞으로의 사업 계획을 설명했고, 나는 그 내용에 수긍했다. 우선 1년 동안은 강릉에 위치한 본점에서 커피 일을 배우기로 했다. 1년이 지나면 서울로 파견 나갈 수도 있지만, 그건 사업 진행 방향에 따라 달라질 터였다. 채용이 확정되고, 근무 시기를 조율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가장 걱정거리인 집과 일 중 하나를 해결했다!'

이제 집만 구하면 된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강릉 이주 계획을 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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