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강릉에서 집 구하기 - 1편

- 서울을 떠나 강릉에서 삽니다 -

by 중현

사람은 살면서 때때로 불확실한 상황에 마주한다. 그때 우리는 그동안 쌓은 삶의 경험과 이성적인 판단을 종합해 최선의 답안지를 선택한다. 대부분 내게 익숙한 경로를 고를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면 보다 안전한 선택을 하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불안한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강릉에서 살기로 정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본 곳은 부동산이다. 전월세 중 한참을 고민하다가 처음에는 월세로 생활해 보기로 했다. 길게 보면 전세가 나았지만 이주 초반은 월세로 하는 편이 리스크가 적어 보였다. 그렇게 정한 데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월세살이를 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나는 지금껏 전세로 살아본 적이 없다. 뉴스와 주위 사람들에게서 '전세'라는 단어를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어서 용어 자체는 익숙했으나 실제로 은행에서 대출한 적은 없었다. 그보다 10년 가까이 일본에 살면서 월세살이를 해 온 탓인지 내게 있어선 월세를 내는 편이 훨씬 익숙했다. '전세'는 마냥 생소한 단어였다. 그 때문인지 강릉에서 처음으로 집을 구할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다. 모두가 한결같이 전세로 계약하라는 것이었다.

'왜지? 왜 다들 우리가 전세로 계약할 거라고 당연하다시피 말하는 거지? 빚을 지고 사는 전세가 월세에 비해 월등히 좋다 말할 수 있나?'


한국에 온 지 2년도 안 된 내게 '전세'는 낯선 시스템이었다. 모르는 것투성이다 보니 나로서는 의심을 품고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 시장에 어느 정도로 무지했냐고 하면, 대한민국의 신혼부부 중 다수가 전세로 집을 시작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보다는 전세 계약을 하면 은행에서 '대출'을 해야 하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개인이든 사업체이든, 누군가에게 빚을 지는 행위에 거부반응이 일었다. 전세를 꺼려하는 마음은 아마 그곳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내 개인적인 경험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다. 월세를 결심한 현실적인 요인 또한 존재했다. 이전에도 언급했듯 강릉은 우리들에게 '황무지'다. 생활할 곳도, 제대로 된 직장도, 지인도 거의 없었다. 전부 개척해야 한다. 사실 그 정도는 어떻게 해서든 구할 수 있다. 지인도 하나둘 사귀어 갈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강릉에서 무사히 안착하느냐는 것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강릉으로 갔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 기대한 바와 달리 어긋나는 상황이 생기고, 어그러지는 일이 반복되면 강릉 생활에 불만이 생길 것이다. 감정을 해소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쌓이다 보면 종국에는 정착하기보다 다시 원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단기 계약으로 집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처럼 강릉에 무사히 정착하지 못하는 상황도 고려했기 때문이다. 적응하지 못할 경우 반년 또는 1년만 살고 바로 빠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월세를 선택했다.


2월 말. 새미와 함께 월세집을 찾기 위해 강릉으로 간 날. 첫 건물은 언뜻 보기에도 허름했다. 외관에는 금이 가고, 밤에 보면 폐가로 착각할 것만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 상태를 확인했더니 바닥이 푹푹 꺼진다. 집 모양이 이래서는 다른 부분은 볼 것도 없었다. 지체 없이 다음 집으로 향했다. 두 번째 집 상태는 나름 준수했다. 하지만 연식이 오래되었고 집 크기에 비해 월세가 터무니없이 비쌌다. 결국 이곳도 탈락. 그 후로 3~4곳을 더 보러 다녔다. 개중에는 한눈에 봐도 정말 괜찮은 집도 있었다. 포남동에 자리 잡은 어느 아파트였는데, 집 안을 들어선 순간 '이곳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을 구석구석 살펴보니 리모델링도 잘해 놓아서인지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마음에 쏙 들어 그 자리에서 가계약을 할 찰나였다. 새미가 등기부등본을 확인해야 한다며 잠시 멈춰 세웠다.

'아! 그렇지. 얼른 계약하고 싶은 마음에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럼 한 번 살펴볼까? 그런데, 어? 이게 무슨 일이지? 등기부등본에 약 9천만 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정보도 못 보고 그대로 가계약을 넣을 뻔했는데. 위험했다. 이대로 가계약금을 송금했다면 골치 아픈 상황에 처할 뻔했다.


우리가 설정한 금액은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40~50만 원이다. 처음에는 이 정도면 17~18평짜리 집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결과가 빗나갔다. 우리 희망 금액대의 월세방은 여럿 있었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과 실제로 본 건물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했다.


결국 그날 우리가 방문한 5곳은 전부 기대 이하였다. 집 상태가 예상한 것보다 더 안 좋았다. '우리가 기준치를 너무 낮게 잡았나? 우리 자금으로는 이 정도밖에 못 사나?!' 하는 자격지심이 들 정도였다. 강릉 이주는 팍팍한 수도권 살이를 떠나 여유로움을 찾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하다 말할 수 있는 주거 생활이 안정되지 않고서야 어디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여러 논의 끝에 월세를 포기했다. 대신 방향을 틀어 전세 매물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원점이다.


첫 방향을 잘못 잡은 탓에, 10일 동안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다 날아갔다. 시간은 많지 않지만, 괜찮다. 이 정도 실패쯤이야. 아직 끝나지 않았다. 퇴사 전까지만 전세 계약을 마치면 된다. 아직 한 달의 시간이 남았다. 그 사이 매물을 찾아 계약하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강릉으로 갈 수 있다. 집으로 돌아와 또다시 인터넷을 뒤졌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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