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를 강릉으로 이끈 광경

- 서울을 떠나 강릉에서 삽니다 - 1부 완결

by 중현

어릴 적부터 만화를 즐겨 봤다. 장르는 액션, 코믹, 스포츠, 미스터리, 순정 등 가리지 않고 읽었는데, 그중 액션을 가장 좋아했다. 나 역시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파바박!'하고 불꽃 튀고 쉴 틈 없이 공방이 오가는 전투 장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손에 검을 쥔 용사가 검은 망토를 휘두른 마왕 앞에 선다. 곧이어 시작할 결투에 팽팽한 기싸움이 감돈다.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고요한 침묵이 이어졌다. 이윽고 '챙강 챙강' 소리를 내며 검과 검이 부딪힌다. 마치 불꽃이 튀는 듯 화려하고 격렬한 전투 장면에 좀처럼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끼니도 거르고 단숨에 한 권을 다 읽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흥미진진한 전투보다 더 보고 싶은 장면이 있다. 바로 '평화로운 광경'이다.


만화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갖춘다. 평범한 주인공이 어떠한 계기로 용사로 선택되는지부터, 주위로 하나 둘 동료가 모이고 그들을 위협하는 적과 싸우며, 전투가 끝나면 잠시간 평화가 찾아오는 식이다. 주인공은 이런 패턴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그중 나는 전투 후에 찾아오는 평화로운 광경을 좋아했다. 주인공과 동료가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 아침 일찍 어깨에 곡괭이를 짊어지고 웃으며 밭 일을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저녁밥 짓는 동안 집 위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모습같이 전투와 거리가 먼 분위기를 말이다. 비록 픽션이었지만 볼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전투 장면에 비하면 밋밋하고 따분해 보이는 장면도 내게는 흥미진진 그 자체였다. 그만큼 평화로운 일상이 주는 포근한 분위기가 좋았던 것이리라. 열 번을 읽어도 그때마다 새롭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치유된다고나 할까? 마을은 여느 때처럼 평온하고 잔잔했으며, 사람들은 여유롭고 정이 넘쳤다. 나는 이 소소하고 따스한 광경을 계속해서 보고 싶었다.


성인으로 자란 후에도 여전히 평화로운 광경을 좇았다. 다만 만화나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었을 때와 다르게 조금씩 실존 인물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관점도 바뀌는 거겠지. 검은 색 활자가 빼곡히 적힌 책을 들여다보는 날이 늘고 반대로 만화책을 읽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친구를 만나는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이 생활 또한 그리 나쁘지 않군.' 나는 조용히 책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안정을 찾아갔다.


나는 주로 따뜻한 말, 고요하고 잔잔한 말, 정직한 말, 사랑을 속삭이는 말, 깨우치도록 일깨워 주는 말에 반응했다. 그러한 글들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마치 '너도 할 수 있어. 좀 더 내면 깊숙이 생각해 봐.'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가 끌리는 문장은 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결코 쉽게 쓸 만한 글이 아니었다. 그 같은 글을 쓴 이는 하나같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들이었다. 책에서 읽은 내용이 그들의 삶 그 자체에 녹아있다보니, 실제로 못보고 책만 읽어도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이었다. 면면을 살펴보자 이들은 하나 같이 삶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인물들이었다.


법정 스님, 장일순 선생님, 노자, 간디, 비노바 바베, 마더 테레사, 헬렌 니어링&스콧 니어링 등 유명한 사람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평생에 걸쳐 다른 생명체를 위해 자비와 연민의 삶을 실천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종교인의 비중이 높았는데, 특정 종교에 치우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지구 상의 생명체를 존중하는 '평화주의자'였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식물의 모습을 존중했으며, 그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절제하는 삶을 살았다. 남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려는 삶의 방식이 후세에 전해지고, 그 울림이 오랫동안 이어진 덕분에 21세기를 살아가는 나 또한 접할 수 있었다.


만화 속 평화로운 모습과 평화주의적 삶을 실천하는 이들을 보며 닮고 싶다 생각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나 또한 그들이 걸어간 발자취를 좇고 싶었다. 평생에 걸쳐 실천하면 내 주위에도 가치관이 엇비슷한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지 않을까? 그래서 언젠가는 크러스터(Cluster : 조밀하게 모인 사람, 동물의 무리)처럼 지역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서 그런 꿈을 상상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그 꿈을 실현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서울에서 이루기 어렵다면 다른 곳으로 가야지. 과연 어디로 가면 좋을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부모님 고향인 강원도였다.

"그래,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강원도로 돌아가고 싶었던 거였구나."

이제야 알았다. 전부터 나를 강원도로 이끈 의미 불명의 정체를 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과 존중으로 감싸인 '평화로운 광경'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고향인 강원도에서, 직접 내 손으로 일구어 볼 기회를 말이다.


이제 2~3주 후면 진짜 강릉으로 간다. 그곳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갈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부터 품어온 '평화로운 삶'에 주안점을 두고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 마음을 견지하고 행복하게 보낸다면, 우리의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두드리러 오겠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물론이지, 새미와 함께라면 틀림없이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할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나아가자."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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