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강릉에서 집 구하기 - 2편

- 서울을 떠나 강릉에서 삽니다 -

by 중현

2019년 2월 말. 여느 때처럼 밀려 들어오는 업무를 차례차례 처리하는 중이었다. 맡은 일을 얼추 끝내고 시간을 확인하자 어느새 5시가 가까워졌다. 슬슬 말할 적기라고 판단한 나는 가림막 너머 팀장님을 향해 상담을 요청했다. 팀장님은 말 없이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뒤편에 있는 응접실로 따라오라 손짓했다. 방 안으로 들어간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은 다음 팀장님을 마주보며 소파에 앉았다. "흠흠" 헛기침을 몇 차례 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크게 한번 숨을 들이마신 뒤 팀장님을 향해 말했다. "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내가 다니는 회사는 서울에 사무실을 둔 일본계 회사다. 도쿄에서 일한 곳과 분야는 달랐지만 일본에서 일한 경력을 인정받아 귀국 3달 만에 취업했다. 회사는 삼성동에 위치해 있었는데, 장소만 한국일 뿐 기업 문화는 일본 본사의 형태 그대로였다. 개인주의적인 면과 톱다운 방식이 섞인 회사 모습이 일본에서 일한 내게 익숙한 업무 환경이었다. 덕분에 예상보다 일찍 회사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영업 방식의 차이다. 일본에서 일할 때는 직접 발로 뛰어가며 거래처를 돌아다녔다. 하루 동안 적으면 4~5군데 많으면 20군데의 회사를 찾았다. 전화 영업을 하는 날은 하루에 80~100군데 정도 신규 거래처에 연락했다. 약속이 잡히면 담당자를 만나러 가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에 맞는 자사 상품을 홍보했다. 나서서 이야기하기 보다 주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했다. 그 방법이 상대방에게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중소기업 사장님의 심심풀이 대화 상대로 1시간 동안 주야장천 이야기만 듣고 나온 적도 있다. 허탕을 친 날도 많았지만 그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고객이 늘어났다. 소개를 통한 문의도 점점 많아졌다. 실적이 느는 모습을 보며 나만의 영업 방식에 자신감이 생겼다. '이 정도면 어디를 가든 잘 해낼 수 있을거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서울에서는 내 영업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상대방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고객의 말에 대한 리액션하면서 말을 많이 하는 게 더 좋은 평가를 받는 회사였다. 친근하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건네고,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게, 쉴 새 없이 말을 걸면서 상대방에게 내 존재감을 알려야 하는 곳. 비단 거래처 고객뿐만아니라 본사 담당자와 생산 공장 직원, 회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대상이다. 만약 그렇게 안 할 경우 동료 직원들에게 무시당하고 곧 내팽개쳐진다.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직원에 해당했다. 평소 말수도 적고, 능청스럽게 말을 걸거나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고집 불통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향한 지적과 비판이 많아졌다.

"그렇게 조용하면 안 답답해?"부터 시작해서, "영업직인데 말 좀 해라 좀", "넌 자아가 너무 강해, 여기는 회사니까 개성을 죽여"라는 말까지. 팀장님부터 일본인 주재원에게서 하루가 멀다하고 질책섞인 소리를 들었다. 회사의 방향성 아래 개개인의 성향은 존중받지 못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경쟁을 유도하는 분위기여서 누구에게 마음 터놓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들었다. '듣기'와 '진정성'이 내 강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하루하루 회사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날이 이어졌다. 회사 생각에 근심 걱정이 깊은 날, 그 순간 새미를 만나고 그해 연말 둘이서 강릉 이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팀장님은 예상했다는 듯 덤덤히 내 말을 들어주었다. 십여 분을 이야기 나눈 우리는 마지막으로 출근 시기를 조율했다. 진행 중인 사안, 거래처 영업 대응, 거래처 인수인계 등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의논했다. 3월 22일을 마지막 출근 날로 정했다.


2월 말에 월세 매물을 보러 강릉을 다녀온 후 꼬박 10일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매물을 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다. 마음에 드는 건물을 못 찾는다면 강릉살이는 물 건너간다고 봐야 한다. 부동산에 연락해 놓은 매물은 총 5곳. 시작은 포남동이었다. 병원 근처 비탈진 곳에 위치한 빌라였는데, 월세 매물에 비하면 집 상태가 비교도 안 되게 깨끗했다. 다만 베란다에 세탁기를 설치할 공간이 없고 주차장도 대부분 경사진 부분이 흠이다. 게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 외진 곳에 자리한 느낌이 들었다. 건물 앞에는 소나무 숲으로 된 언덕이 있었는데 밤에는 어둡고 으스스할 것만 같았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다. 건물 상태만 확인한 채 다음 매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노암동에 위치한 매물은 건물 안에 진돗개가 있었다. 1층 현관 끝에 묶여있는 진돗개는 우리가 현관을 들어서기 전부터 짖기 시작해, 2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목줄을 매고 있길 망정이었지 안 그랬으면 집 안으로 들어설 엄두도 못 낼 뻔했다. 계단을 오르면서 '혹시 끈이 풀어져 물면 어떡하나'하고 속으로 걱정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임대인으로 보이는 분이 품에 아기를 품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드리고 방 안을 살펴봤는데 구조가 특이하다. 집 안에 방이 2개 뿐이다. 그리고 세탁기가 설치돼 있었는데, 커튼만 쳐져 있고 이를 가로막는 문은 보이지 않았다. 2층이었지만, 느낌이 흡사 옥탑방 같았다. 안 그래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좁아서 위험해 보이던 참이다. 게다가 진돗개의 존재는 그런 걱정을 한층 가중시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은 아닌 것 같았다. 애타게 갈망하는 임대인의 눈빛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집을 나섰다.


세 번째 매물은 포남동에 위치했다. 대로변 가까이에 자리 잡았고 주위에 음식점과 넑직한 주차장이 놓여 있다. 매물은 단독주택 건물 2층이다. 알고 보니 건물주가 1층에 살고, 앞으로 살게 될 세입자가 2층에 주거하는 방식이었다. "건물주와 함께 살다니.."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마음이 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부담스럽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안은 살펴봐야하지 않겠는가? 현관문을 열고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건물 내부는 예상보다 괜찮다. 방도 2개에 평수도 20평으로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거실 바닥이 꺼진 부분이 있는거 외에는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앞선 두 곳보다 집 상태가 월등히 좋았다. '이렇게나 깨끗하다면 1층에 집주인이 있어도 감수할만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밖으로 나와 무심코 왼쪽을 돌아봤다. 바로 지근거리에 모텔 하나가 떡 하니 서 있는 게 아니겠는가.

"아, 안된다 이 매물은."

우리가 집을 찾을 때 중요하게 여긴 사항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집 근처에 '유흥 시설'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주택 주위에 '유흥 시설'은 없었지만, 근처에 목욕탕과 모텔이 몇 군에나 늘어선 모습을 발견했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음 건물이 있는 송정동으로 향했다.


송정동의 매물은 결과부터 말하자면 별로였다. 연식이 오래되고 바다가 가까웠기 때문인지 집안 전체가 습기로 가득찼다. 천장과 바닥 군데군데에 곰팡이가 피어있고, 그 모습을 매트 또는 종이로 가려놓았다. 나는 평소에도 둔감한 편이라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청결한 환경을 중요시하는 새미의 눈과 코는 피해갈 수 없었다. 집 구조에 관한 새미의 질문이 여러 차례 이어졌다. 거주자는 횡설수설 답변을 했으나 쉽사리 납득이 가질 않았다. 이곳 또한 아닌 것 같았다.


고만고만한 집들을 보며 좀처럼 마음을 정하지 못 한 가운데 우리는 마지막으로 초당으로 향했다. 이곳은 사전에 예약하지 않은 곳이다. 강릉에서 집을 둘러보다 다급히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매물을 확인했고 다행히 남아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초당에 도착할 즈음 시계는 이미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시간상 이번 매물이 마지막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부동산에 도착했더니 정작 부동산 사장님은 인터넷에서 본 매물이 아닌 다른 곳을 안내해 주었다. 알고 보니 아직 인터넷에 안 올라와 있는 아파트를 우리에게 소개해 준 것이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다다랐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탁 트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들어서자마자 이곳밖에 없다고 직감했다. 지금까지 본 매물 중 단연코 최고였다. 새미 또한 이제까지 보인 반응과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이곳이야'라고. 해당 매물은 지금까지 봐온 모든 곳 중 가장 깨끗하고 넓었다. 아파트 뒤에는 산이, 앞에는 탁 트인 풍경과 약간의 오션뷰가 펼쳐져 있었다(바다가 손톱만 하게 보였다). 방은 3개인 데다 평수도 우리 둘이 살기에 충분했다.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개중에는 지저분한 곳도 있었다. 벽지는 아직 새로 바르지 않은 상태였고, 군데군데 청소할 부분도 많았다. 괜찮다 그 정도야 하루 이틀 공들여 쓸고 닦으면 끝날 일이었다. 과연 가격이 어느 정도일까? 사장님께 전세가를 물었다. 지금까지 봐온 매물 중 가장 비쌌다.


우리가 상정한 예산을 넘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 80%의 금액은 은행에서 대출할 수 있으니, 자금 부담 또한 크게 무리가 안 가는 수준이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근저당 여부를 확인했다. 문제없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릉에 전세 매물이 거의 없다는 점과 10군데 이상 둘러보면서 이곳만 한 집이 없다 판단했다. 매물을 본 다음 날 바로 계약금을 입금했다. 그로부터 10일 후, 재차 강릉을 찾아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은행 전세 대출금도 내가 퇴사하는 시기에 딱 맞춰 승인이 났다.


"됐다!!"

강릉에서 직장도 새로 구하고, 집 또한 계약을 마무리했다. 이것으로 강릉으로 갈 준비가 모두 끝났다!! 이제 몸만 가면 된다. 2013년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줄곧 강원도에서 사는 꿈을 꿨다. 수년 이상 마음 속으로만 품고 있다가 새미를 만났다. 만난 시간은 짧지만 서로 통하는 점이 많은 우리는, 본격적으로 강릉 이야기를 꺼낸 지 단 4개월 만에 강릉 이주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나 혼자서는 결코 못 해냈을 것이다. 새미가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새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기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이주시기는 4월 15일로 잡았다. 3주 후면 그토록 꿈꿔온 강릉살이가 시작된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우리? 결혼과 동시에 강릉 생활 시작이다. 이제 와 새삼 긴장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새미와 함께할 즐거운 강릉살이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그래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지금껏 착실하게 계획한 대로 잘 밟아온 우리였잖아."

마음속에 이는 흥분과 떨림을 느끼면서 우리는 천천히 마음을 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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