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강릉에서 일자리 구하기 - 1편

- 서울을 떠나 강릉에서 삽니다 -

by 중현

이른 아침 새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오빠... 잘 잤어?"

목소리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하다. 그 순간 우리 계획에 어떤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 사달이 났는지 아직 못 들었으니까.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말투로 대답했다.

"응, 나야 잘 잤지~! 그런데 새미야 목소리가 왜 그렇게 어두워? 무슨 일 있어?"

"응.. 그게..."

새미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휴내폰 너머로 망설임이 느껴진다. 숨소리와 함께 머뭇거리기를 수 차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우리 어제 발표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잖아? 그런데.. 아빠가 밤새 한숨도 못 주무셨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퀭해 있었어."


그럴만하다. 결혼과 이사라는 게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니까. 나는 걱정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아.. 그래. 우리가 어제 발표한 강릉 이주 때문에?"

"응.. 아빠가 집에 와서 많이 괴로워했어. 우리더러 아무런 것도 계획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강릉으로 간다며. 아빠가 보기엔 플랜 A 플랜 B 둘 다 형편없다고 느꼈나 봐. 오빠가 강릉에서 일을 못 구하면 당분간 내가 야탑과 강릉을 오가며 먹여 살려야 하는 건 아니냐고 말씀하시더라고."


새미의 직업은 놀이치료 상담사다. 놀이를 통해 아동, 청소년이 갖고 있는 심리적 부적응이나 발달상 문제의 원인을 평가 진단하고 치유하는 직업이다. 근무지는 야탑과 노원이었는데, 만약 강릉으로 간다면 지금 맡은 아이들과도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상담사의 직업상 곧바로 맡은 일을 그만두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혹 놀이치료 기간 중 상담 선생님이 바뀌면, 아이가 다시 처음부터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나 상담사에게나 좋지 않다. 그래서 새미가 내린 판단은 강릉과 야탑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종결할 때까지 책임질 생각이었다. 나도 그 판단을 존중했다.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눈 끝에 우리는 강릉으로 이사하면 초기 일자리를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나는 강릉에서 생활하면서 직장을 구하고, 새미는 현재 만나고 있는 아이들의 상담이 마무리될 때까지 야탑과 강릉을 오가는 것으로 말이다.


새미의 말을 듣은 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맞아,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새미는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아빠가 이런 말도 했어. 그 남자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나보는 건 어떻겠냐며."

잠자코 듣고 있다가 난데없는 날벼락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안돼. 무슨 일이 생겨도 그건 안 돼!'

다급한 목소리로 새미를 추궁했다.

"그래서 뭐라 했어?"


"응 아빠가 그렇게 말하길래 난 이렇게 받아쳤어. 아빠, 지금 내 벌이로는 오빠를 먹여 살릴 수 없어. 그리고 난 오빠 외에 다른 사람 만날 생각 없고. 직장 때문에 그런 거잖아? 오빠가 새로 일자리 구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라고.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지만 새미의 마지막 말 덕분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숨을 크게 내뱉은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 말을 건넸다.

"그다음엔 뭐라 하셨어?"

"응? 그 뒤로 아무 대답 없으셨어."

그래? 그렇단 말이지?! 더는 말씀이 없었단 거지?! 구겨진 내 얼굴에 점차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강릉에서 일자리를 구하면 문제없는 거지? 그렇지?!"

"응 그렇지?"

"그렇다면 간단하네! 나만 직장을 구하면 되니까!"

조금 전 울상이었던 얼굴은 온데간데 가고 없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취업한 사람처럼 거침없이 말했다.


다행이다. 최악의 경우 아버님께서 말을 철회할 가능성까지 생각했다. 거기까지 아닌 것만으로 천만다행이다. 딸의 미래를 걱정해 반대하셨는데 자녀를 둔 부모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좁은 틈이지만 아직 강릉살이의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현지 일자리만 구하면 된다! 남은 것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일 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동시에 같이 가기로 해 준 새미에게 감사했다. 강릉에서 어떻게 생활할지 아직 하나도 못 정한 상태였다. 새미는 그럼에도 나 하나 믿고 강릉에서 살기로 결정해 준 것이다. 더없이 고마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없이 손을 꼬옥 잡아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릉에서 일자리를 구해야겠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그래 한 번 해 보는 거야!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서 강릉 구인 공고 사이트를 검색했다. 단체 성격에 따라 강릉 지역 일자리를 크게 3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로 정부 주도하에 구인 공고를 올리는 워크넷과 강릉 시청. 그리고 지역 내 취업 사이트인 강릉 교차로. 마지막으로 종합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과 잡코리아다.


우선 정부가 주도하는 워크넷과 강릉 시청을 살펴보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기대보다 아쉬운 점이 많았다.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는 워크넷은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간호사처럼 공공 기관 일자리가 많다. 사설 기관 일자리도 있으나 대부분 건설 현장 일이다. 내가 희망하는 분야는 서비스업인데, 그와 관련된 일은 거의 없었다. 반면 강릉 시청은 구인 공고 자체가 적었다. 강릉 관광개발공사에서 정규직을 채용하고 있었으나 내게는 공사 시험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애초에 이주 시기와 엇갈려 지원 자체가 불가능했다. 여러모로 살펴본 결과 정부 주관 구인구직 사이트에서는 내게 맞는 일을 찾기가 힘들어 보였다.


다음으로 지역 구인구직 공고 사이트인 강릉 교차로를 살펴봤다. 이곳은 서비스업의 종류가 다양했다. 식당 서빙, 대리운전, 청소원, 그리고 방문 교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교차로가 오래전부터 지역 정보를 다룬 '생활정보신문'인 영향 때문 일터. 그래서인지 일자리도 40~50대의 고연령 층이 눈에 띈다. 워크넷 보다 서비스업이 종류가 많았으나, 이곳 또한 정보가 상당 부분 한정돼 있었다. 아쉽지만 교차로에서도 내가 일할만한 곳은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대형 구인 사이트인 사람인과 잡코리아였다. 다행히 이번엔 번지수를 맞게 찾아온 듯하다. 이곳은 20~30대 구직자가 주축이 되는 공간이었다. 30대 중반인 내게 맞는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카페 바리스타, 제과제빵, 호텔 프런트, 목장 관련 종사 그리고 여러 연구기관 등 종류도 다양했다. 그중 하나에 시선이 쏠렸다.


그건 바로 '목장'이었다. 나는 대학생 시절 격주 또는 매달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갈 정도로 시골과 농사일을 좋아했다. 또래 친구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얻을 건 적은' 인기 없는 분야로 취급했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달랐다. 내게는 농사일을 거드는 것뿐만 아니라, 농촌으로 향하는 여정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요, 지치고 피곤한 일상의 단비와도 같았다. 갈 때마다 편도 3~4시간과 교통비 2~3만 원의 비용이 들었지만 그런 건 당시의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 날은 밤샘 편의점 알바를 끝내고 전철 안에서 꾸벅꾸벅 졸며 시골로 간 적도 있다. 그 정도로 나는 예전부터 빌딩 속 도시를 떠나 나무와 꽃과 새들이 있는 자연에 둘러싸인 삶을 살고 싶어 했다.


목축 또한 예전부터 관심을 가진 분야였다. 그런데 때마침 목장에서 '우사' 즉 소를 돌보는 사람을 모집했다. 장소는 대관령이다. 강릉에서 약 40km, 시간으로 따지면 30분 정도 걸린다. 장소와 시간은 크게 문제없어 보인다. 그 정도면 수도권에서도 흔히 있는 거리이니까. 목장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내 눈이 반짝 반짝였다. 아직 새미한테 말도 안 꺼냈는데 나 혼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여기 취직하면 바로 눈앞에서 소를 볼 수 있어!! 나 '목동'이 될 수 있는 거야???!! 아라카와 히로무가 그린 <은수저>의 주인공처럼 매일같이 소를 돌볼 수 있는 거야?!! 머릿속으로 목장을 거니는 소들과 그 옆에서 소를 이끄는 '목동'의 모습이 그려졌다. 다음날 나는 곧바로 새미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득 담은 채 '목장' 입사 지원서를 넣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새미 입에서 나온 한 마디.

"난 싫어.. 목장에서 일하면 매일 오빠한테서 소 응X 냄새날 거잖아."

짧은 꿈이었다.


목장은 포기하고 곧바로 다음 일자리를 찾았다. 구인 사이트에 '커피'와 '호텔'이 자주 눈에 띈다. 아무래도 강릉이 커피 거리로 유명해지고 국내를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보니 관련 일자리도 많은 것 같다. 일본어 실력을 살려서 호텔에 취직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커피'에 더 눈길이 쏠렸다. 회사를 다니면서 매일같이 커피를 마셨지만, 좋아서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웠다. 내게 있어 커피는 어디까지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시는 '각성제'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새미를 만나고부터 맛 좋은 커피를 마시러 다니고, 또 강릉에서 일자리를 찾으면서 커피를 향한 인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실제로 커피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바리스타, 로스터, 생두 유통 등 관련 공부도 끝이 없어서 한 번쯤 커피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해온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분야였지만, 내 안에서 자꾸 도전의식이 샘솟았다. 그래, 어차피 강릉에서 일본어를 활용할 만한 직장도 거의 없을 터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커피'를 공부해 보자.


카페에 이력서를 넣기로 마음먹은 후 구인 공고가 올라온 곳 중 10~11군데에 입사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안목에 위치한 어느 카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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