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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진 Dec 07. 2023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다

07 DEC23

    3학년 2학기 수업에서 담당교수는 20여 명 남짓한 수강생들에게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소개했다. 특히, [애러비]는 모든 구문과 문장을 읽어 주시고, 해석과 해설을 곁들여 주시며 매우 꼼꼼하게 작품 분석을 해 주셨는데 지금도 나는 소설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던 수업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간 차근차근 소설을 읽어온 문학도도 아니고 외국문학을 원서로 읽어낸 적도 없는 터라 처음 몇 주간은 읽고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진땀을 빼야 했다. 대학원 수업처럼, 학생 한 명 한 명이 돌아가며 몇 줄씩 해석하고 해설을 덧붙여야 해서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하기 싫으면 수강취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지옥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작품 하나하나를 읽어내는 것이, 문학사 전체를 요약하며 단기간에 섭렵하는 일보다 어려운 공부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야 번역서와 해설서가 따로 있으니, 사실 발표 준비는 어렵지만은 않았다. 다만, 담당교수가 어디서 베낀 듯한 해석이나 번역을 귀신같이 알아보시고는 학생들에게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하셔서, 그것을 비껴가는 것이 매 시간 모든 학생들의 희망사항이었다. 나는 돌발 질문을 당하지 않기 위해 수업 시간 내내 머리를 책상에 박고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몇몇 우수한 학생들과 미리 공부한 학생들은 무장을 하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 같다. 처음 만난 영미권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들은 그때 나에게는 너무 어렵게 느껴졌었다.


  [애러비]를 다 읽고 다음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가고, 소설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해 보면서, 나는 문학수업이란 이런 것이구나, 문학이 주는 어떤 힘 같은 것을 처음 느꼈다. 소설 속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애러비]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한 것만 같았다. 자기 중심주의라던지, 현현의 순간과 같은 매우 철학적이고 중요한 핵심 주제와 용어들을 배우면서는, 문학작품에 이 모든 것이 담겨있다니, 묘한 희열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신기한 변화였다.


  매주, 하기 싫은 미션처럼 예습을 해 가며 수업에 참여하면서 한 학기를 보내고 기말시험을 치르고 난 뒤 어느 날, 담당교수가 나를 불렀다. 그때 하셨던 매우 개인적인 질문들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는데, 아마 그날의 짧은 면담이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다른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해 영미소설 수업은 그러니까 나를 영문학에 정식으로 입문하게 해 준 수업이면서, 내 인생의 진로를 바꾼 수업이기도 했다.


    세계문학의 거장인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조이스는 위대한 작가이자, 영향력 있는 작가군에 속하는 대문호이기도 하다. 그런데, 매우 잘 알려진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나 [율리시스]나 [피네간의 경야]와 같은 걸작들보다, 내가 좋아하는 단 한 편의 소설은 언제나 [애러비]이다.


  물론, 조이스의 작품은 독서보다는 연구대상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읽어내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그가 문학계에 미친 영향은 대단하기에 필독 리스트에서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비평가인 헤럴드 블룸도 손꼽는 작가이며, 바다 건너 [위대한 개츠비]에도 영향을 주었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


 [애러비]를 읽는 영문학 전공 수업이 지금 어딘가에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십수 년 전, 내가 처음 만났던 영미문학작품과 소설 수업을 떠올리다 보니, 아련한 추억처럼, 지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참 일관적이게도, 언제나 나에게, 영미소설의 시작과 끝은 [애러비],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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