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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Nov 22. 2021

아이들은 행복했던 기억을 먹고 자란다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

짐을 보낸 지 3주, 한국에 온 지 2주 만에 하노이에서 짐이 도착했다. 가족의 온기가 스며든 짐으로 텅 빈 집안을 채우고 나니 비로소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드디어 내 집, 우리 집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니 짐 정리하는 수고로움도 힘들지 않았다. 나는 식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일상이 기뻤고 아이들은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고, 공부도 하고, 자전거, 스케이트와 보드 등을 즐길 생각에 들떠 있다. 짐이 정리된 집을 보니 ‘본격적으로 한국살이가 시작되었구나’가 실감났다.


 ‘한국에 왔구나’가 가장 실감 날 때는 뭐니 뭐니 해도 그동안 못 본 가족을 만날 때다. 기존 살림과 새 살림이 혼재된 집에는 익숙함과 설렘이 공존하듯 오랜만에 만난 가족에게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친숙한 양가 부모님들, 형제들에겐 반가움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음에 감사함이 솟구쳤다. 새로운 가족이 된 고모부와 앞으로 태어날 조카, 그리고 생후 7개월이 된 조카에겐 어색함과 동시에 물보다 진한 피의 끌림이 느껴졌다.


특히 피의 끌림을 가장 잘 느끼는 순간은 아이들을 보면서다. 7세, 5세가 된 아이들과 9세, 7세인 조카는 어색한 인사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방으로 거실로 몰려다니며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2년 3개월의 세월은 작은 틈처럼 대수롭지 않은 것 같다. 어릴 적 같이 놀 수 있는 또래 사촌은 누나이자, 언니이자, 오빠이자 동생이자 친구다. 무엇보다 그들은 피가 섞여 있는 가족이다.


4명이 다람쥐처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니 30년 전 모습이 떠올랐다. 언니와 나 그리고 사촌이 어울려 놀던 모습과 어쩜 그리 닮았는지 그때 모습을 재현한 것 같았다. 2~4살 터울인 사촌과 만나면 우리 넷은 방 하나를 아지트 삼아 어른들이 부르기 전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곳에서 희희낙락 웃음꽃을 피웠고 잠을 같이 자는 날은 캠핑 온 거 마냥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무서운 이야기로 잠을 설치곤 했다. 헤어지는 날이면 울고 불고 떼를 쓰며 아쉬워했고 오랜만에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영락없이 어울려 놀았다. 어른들은 우리 넷을 보고 “너희들은 어쩜 싸우지도 않고 그리 잘 노니?”라고 신기해하셨다.


지금 돌이켜봐도 사촌들과 언니와 나는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어느 친구보다 더 친숙했고 어디서 무얼 하든 응원해주는 든든한 가족이었다. 그 어린 꼬마들이 다들 애 아빠, 애 엄마가 된 지금. 예전보다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몇 년마다 볼 때면 아무 걱정 없이 놀던 그때가, 마주하면 그저 즐거웠던 그때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와 더불어 어려운 시절 정겨운 추억을 함께했던 할머니, 이모, 삼촌들과의 기억을 마음이 힘들 때면 하나씩 꺼내본다. 나에게 힘을 준 가족들을 떠올리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가족의 힘이 이런 게 아닐까.


우리 아이들도 어린 시절 내가 그랬듯 가족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촌, 고모, 이모, 삼촌들까지. 그들의 사랑은 아낌이 없고 한계도 없다. 하노이에 있는 2년 동안 부모 외엔 가족을 만나지 못했던 아이들에겐 이 보다 더 큰 선물이 있을까. 아이들이 ‘빨리 한국에 가고 싶어’라고 외쳤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부모 밖으로 더 넓은 사랑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사랑을 울타리 삼아 자란다. 1차 울타리는 부모의 사랑이다.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듣고 느끼고 본받는 존재인 부모는 아이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든든한 울타리다. 2차 울타리는 부모 외 가족의 사랑이다. 가족의 사랑은 부모가 주는 사랑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밀접한 거리에서 다양한 색을 보여주는 게 부모의 사랑이라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한 가지 기분 좋은 색으로 채워지는 것이 가족의 사랑이다.


울타리가 클수록 아이들이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도 클 수밖에 없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받은 가족의 사랑 덕분에 아이들은 외롭지도 춥지도 않다. 아이들은 가족의 사랑을 먹고 행복했던 기억을 양분 삼아한 뼘 한 뼘 성장 중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행복했던 기억을 꺼내 사랑을 다시 돌려주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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