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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Mar 15. 2021

엄마의 돈 공부

주식계좌 만들기가 이리 힘들 줄이야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옆에서 태풍이 불어도, 살랑살랑 내 귓가에 달콤한 바람이 불어와도 내 신념을 믿었다. 마치‘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처럼 나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바로 주식 얘기다. 난 주식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주린(주식+어린이)이다. 아니 주린이도 아닌 '주식 아기', '주식 문외한'이 더 잘 어울리겠다.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2020년 초에는 그야말로 주식 광풍이 일어났다. 외국인들과 기관에서 매도한 주식을 개인투자자들이 사기 시작했다. 개인투자자들은 2020년 3월에만 코스피 시장에서 11조 원 넘게 주식을 사들였고 지난 일 년간 약 100조 원가량의 주식을 사들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동학 개미 운동’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개미들이 바삐 움직였다.


  내 주변에서도 주식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생겼다. 그들은 자기가 투자한 주식이 얼마나 올랐는지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나 주식 투자해서 얼마 벌었어’라며 투자 수익을 이야기하며 뿌듯해했다. 난 마음속으로 ‘주식이 얼마나 위험한데', '지금이야 올랐지만 나중에 언제 떨어질지 몰라’, ‘주식으로 돈 벌었단 이야기 들어본 적 없는데’라고 생각했다. 나랑 상관없는 딴 세상 이야기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때도 나는 내 신념을 믿고 나갔다.


  주식에 대한 이런 태도는 부모님 영향이 가장 컸다. 내 아버지는 1970년대 한국 경제발전을 이끄신 세대다. ‘성실’을 최고 덕목이라 여기며 무조건 열심히 일하셨다. 열심히 일, 즉 노동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고 내가 벌어 들인 수익 내에서 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100을 벌면 욕심부리지 않고, 과소비하지 않으며 100 내에서만 쓰는 거다. 150을 쓰려고 하면 분수에 맞지 않는다며 욕심을 버리라 하신다. 300~400을 버는 사람의 이야기는 딴 세상 사람 이야기다. 그 사람이 어떻게 벌었는지는 관심이 없고 오직 현재 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아버지의 주어진 임무였다. 아버지에겐 부자가 되는 건 허황된 꿈일 뿐이다. 


  이런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주식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들을 리 만무하다. 누가 주식을 한다고 하면 ‘위험하게 그걸 왜 해?’, ‘그 돈 다 날리면 어떻게 하려고?’,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 본 적이 없다’라며 본인 생각에 자신 있어하셨다. 부모님이 내게 보여준 경제 교육은 이렇다. 일한 만큼 벌어서 그 돈의 일부를 저축하고 그 돈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것, 원금 손실이 있는 주식이나 투자는 꿈도 꾸지 않는 거다. 그 신념은 진리처럼 내 뼈 속까지 박혔고 나도 그 진리를 최고라 여기며 지난 40년을 살았다.        

 

  최근 내 신념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동학 개미들에 의해서도 친구의 꿀 발린 달콤한 투자 이야기에 의해서도 아니다. 바로 경제 서적을 통해서다. 2020년부터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그중 유독 눈에 많이 띄는 책은 ‘돈’과‘경제’와 관한 것들이었다. 이 책들은 주로 베스트셀러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어 머리는 외면해도 눈은 외면할 수 없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경제가 어떻게 바뀔 것 인지, 소위 뜨는 산업과 죽는 산업은 무엇인지 분석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주식 광풍이 불면서 주린이를 위한 초보 주식 상식부터 어디에 투자하면 좋을지 투자전망을 예측하는 책까지 다양한 책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


  잠자고 있던 내 경제 마인드를 일깨우기 위해 한 두 권씩 경제 서적을 읽어 나갔다. 특히 메리츠 자산운영 대표인 존 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내 생각과 주식에 대한 신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자본가가 되는 게 가장 부자가 되는 길이다’, ‘ 자본가가 되려면 남을 위해 일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일해야 한다’, ‘예금에 있는 돈은 갇힌 돈이다. 돈이 스스로 불어나지 않고 그 상태로 있다면 손해다’, ‘주식 투자는 기업을 사는 것이다. 사업자의 마음으로 주식을 사고, 동업자의 마음으로 그 기업의 성장을 지켜봐야 한다’는 그의 말이 인상 깊었다. ‘주식은 단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 수익을 남기는 거 아닌가’란 내 생각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돈 공부를 하기로 했다. 아니 엄마인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해야만 한다. 부모의 경제관념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체험한 나로서 부모님께 물려받은 경제관념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물려주기 싫었다.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여 자산을 축적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부터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경제교육은 부모가 해주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돈 공부는 현재 세상을 이해하고 아이들이 주축이 될 20~30년 후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그에 맞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곧 엄마가 교육 철학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미래에 필요한 인재가 될지, 공부 방향은 어떻게 잡을지, 아이들에게 어떤 신념을 심어줄지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제 망설일 시간이 없다. 바로 주식계좌부터 만들기로 했다.  


  주식계좌 하나 만드는 게 이리도 힘든 일이 던가. 현재 해외에 거주하다 보니 계좌를 만들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우선 정지시킨 핸드폰을 다시 살려야 했다. 주식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핸드폰 인증이 필수기 때문이다. 통신 사이트에 들어가 핸드폰 일시 정지를 해지하려는데 또 공인인증서를 요청한다. 마침 은행 공인인증서가 만료가 되어 다시 은행 사이트에 들어가 공인인증서부터 발급받았다. 인증서 발급을 받고 핸드폰 일시 정지를 해지해 기본요금으로 변경하였다. 겨우 1단계를 마무리했을 뿐인데 힘겨운 자갈밭을 걷는 것처럼 땀이 삐질삐질 난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식계좌 개설 단계로 들어갔다. 이 길은 좀 평탄하려나? 계좌를 개설하려 핸드폰 인증 번호를 보냈는데 인증번호가 오질 않는 거다. 이상했다. 정지 해지가 됐는지 몇 번을 확인했는데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문자가 오질 않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해외 무료 전화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봐도 긴급 전화만 가능하다고 연결되지 않았다. ‘그냥 포기할까? 한국 가면 다시 할까?’ 란 생각이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주식계좌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여자라니 내가 너무 초라했다. 그냥 포기하기보다 구원 투수에게 도움이라도 요청해 보기로 했다. 바로 남편을 불렀다.

“여보, 핸드폰 일시 정지를 풀었는데 문자가 안 와”

“왜 그러지? 다시 확인해봐.”

“몇 번을 보냈는데도 인증번호가 안 와” 남편은 핸드폰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더니 말했다.

“해외 로밍이 연결이 안 되어 있었어. 수동으로 연결하니 이제 문자가 오네”

역시 구원 투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우리 남편. 이럴 땐 우리 남편이 가장 예뻐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계좌 개설에 성공했다. 새로운 세상에 한 발짝 다가간 것 같아서, 돈이 스스로 일하는 길로 들어선 것 같아서 마음속에 희열이 샘솟듯 새어 나왔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시작을 했으니 반은 주식의 세계로 입문한 셈이다. 나머지 반은 시작하기 앞서 본격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 있다. 내 투자 철학을 세우는 것이다. 이는 투기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미래가 밝은 산업이 무엇인지 경제지를 훑어보기로 했다.  엄마의 돈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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