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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Mar 26. 2021

내 첫 번째 꿈에 대한 이야기

처음으로 악플을 받다

  베트남에는 바케트 빵이 참 맛있다. 그중 긴 막대기 모양의 바게트 빵은 길거리에서 아주머니들이 자전거에 올려놓고 파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바게트 빵은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가격 또한 저렴해서 베트남 사람들이 그 자체로 즐겨먹기도 하, 바게트 빵 안에 다양한 야채와 고기를 넣으면 ‘반미’가 된다. 이 빵은 베트남 대표 별미 메뉴로 빵집과 카페에서 쉽게 을 수 있다.

  집 앞 빵집에서 브런치 세트 메뉴로 반미 빵과 커피를 사면 대략 70,000동,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3,500원에 살 수 있다.  빵과 커피를 같이 사도 3,000 원대의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 그곳은 어느새 내 단골집이 되었다.

  책 읽기 적당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할 때쯤, 앞 테이블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가림막이 있어 그들을 볼 수 없었지만 대략 3-4명의 한국 여성들이 모여있는 듯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엿듣고 싶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커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들어보니 그들은 베트남어를 잘하는 한국인 선생님으로부터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었다.


“선생님 요즘 최강희가 드라마에서 한 머리가 있는데 그 머리 해 달라고 하려면 어떻게 얘기해야 해요?”,

 “요즘 붙임머리 많이 하던데 그건 뭐라고 하나요?” 라며 수강생들은 미용실 관련 표현을 배우고 있는 듯했다. 수강생들의 질문에 선생님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베트남어로 관련 표현을 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의 목소리가 너무 듣기 좋았다. 하이 톤에 통통 튀면서 여성스러운 그녀의 목소리는 떨어져 있는 내 귀까지 쏙쏙 박혔다. 저런 선생님에게 공부하면 베트남어도 금방 늘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예쁜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중학교 때 일화가 생각났다. 중학교 1학년 쉬는 시간에 앞에 앉아 있는 친구들이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걸어왔다. 학기 초라 아직 친해지지 않아 어색함이 감도는 중 한 친구가 갑자기 내게 말했다.


 “미연아 너 말해봐.”

“응? 무슨 말?”

내가 황당하다는 듯 대답했다.

“아무 말이나 길게 해 봐.”

내가 이때 친구 말 따라 무슨 말을 길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친구는 뜬금없이

“네 목소리 굉장히 좋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 친구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 목소리가 좋다고?’ 생전 처음 들은 칭찬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내 눈가와 입가에는 서서히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정말? 고마워~”

이는 감정표현에 서투른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고마움의 최대 한계치다.


“너 아나운서 하면 잘할 것 같아. 사람들이 가장 듣기 좋은 톤이 ‘솔’ 톤이라고 하더라. 미연이 네 목소리가 ‘솔’ 톤이라서 듣기 좋아.”


  이 말은 당시 내가 들은 칭찬 중 가장 듣기 좋은 말이었고 40년을 살아온 지금까지도 최고의 칭찬으로 기억한다. 그 친구는 무심코 ‘아나운서 해봐’라는 말을 던졌지만, 나는 이 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특히 90년대에 아나운서는 꿈의 직업 아닌 가. TV에 나와 뉴스를 진행하는 내 모습을 떠올려봤다. 그날 이후로 앞에 카메라가 있다고 상상하며 신문 기사를 큰 소리로 읽는 연습을 했다. 진짜 앵커가 된 거 같이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아나운서는 나의 첫 번째 꿈이 되었다(두 번째 꿈이 교사다). 그 꿈은 고등학생까지 이어졌고 아나운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씩 알아봤다.

첫 번째, 기존 아나운서들은 거의 명문대를 졸업했다. 난 고등학생 때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상위권 학생이 아니었기에 명문대를 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둘째, 여자 아나운서들은 다 예쁘다. 거울에 비친 못난 내 얼굴이 더 못나 보였다.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의학기술이 투입되어야 할 것 같았다.

셋째, 그들은 스피치 아카데미에서 아나운서를 준비한다. 스피치 아카데미에서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다 해준다고 하지만 비용이 너무 비쌌다.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려웠으니 여길 다닐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런저런 조건들을 현실적으로 따져보니 ‘내 주제에 무슨 아나운서냐’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결국 내 능력과 내 외모와 내 형편에 맞게 대학을 나오고 취업을 했다.


  내가 아나운서와 다시 인연을 맺은 계기는 의외로 회사에 입사하고부터다. 대리님께서 갑자기 나를 부르셨다.


 “오늘 수주 딴 거 전체 직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사내 방송을 해야 해. 미연이가 방송실에 가서 하고 와. 네가 우리 부서에서 목소리가 가장 좋더라.”


“네?” 갑작스러운 요청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사내 방송이라니, 그럼 내 목소리가 회사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진단 말인가?

  나는 당시 대기업에 다니고 있어 회사 건물에는 거의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듣게 된다니 가슴이 떨려왔다. 기대감에 부픈 떨림이 아닌 자신감이 없는 떨림이었다. 그 당시 아나운서를 꿈꾸던 고등학생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존감이 바닥인 초라한 이가 앉아 있었다. 내 맘도 모르는 대리님은 방송에 나올 멘트를 적어주시며 3시 정각에 방송하도록 지시하셨다.


  그냥 마이크 앞에서 A4 반 장 짜리 원고를 읽으면 되는 건데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평소에 신경도 안 쓰던 숨소리,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도 귀에 거슬렸다. 드디어 정각 3시. ‘딩동댕동’ 하는 알람 소리 후 내 목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회사 전체로 퍼져나갔다. ‘알려드립니다. 오늘 OO에서 수주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 멘트를 시작으로 나는 점점 염소로 변해갔다.  듣기 좋은 ‘솔’ 톤의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축 처진 목소리와 거친 호흡으로 말이 계속 끊기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방송을 마치고 든 첫 번째 생각은 '제대로 망했다'였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부서로 돌아가서 직원들 얼굴을 어찌 본담, 나를 보면 뭐라고 하실까, 분명 대리님께서도 나에게 이 일을 맡긴 걸 후회하고 계실 거야’라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 영혼은 사라졌고 힘없이 축 늘어진 육체만이 방송실에서 끌려 나왔다.

며칠 후 사내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 회사 사내 아나운서 좀 바꿔주세요. 방송 나올 당시 1층에서 외국인 바이어와 미팅 중이었는데 방송을 듣고 창피해서 혼났습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바로 이런 게 악플이구나. 연예인들이 악플에 상처 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 직원은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방송을 망친 건 사실이니깐.

나는 더 이상 방송은 하지 않으리 마음먹었지만 차장님은 ‘그런 말에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라고 하셨다. 나는 결국 퇴사할 때까지 사내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나중에는 사장님께서 내 방송을 듣고 굉장히 기뻐하셨고 ‘아나운서 잘 뽑았다’라는 칭찬까지 하셨다고 들었다.

악플에 주저앉았다면 나에게 아나운서에 대한 기억이 최악이었겠지만 실수를 인정하고 끝까지 해낸 덕분에 지금은 ‘그럴 때도 있었지’라며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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