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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Jul 11. 2021

90년대 감성에 물들다

시간 여행

나는 초중등 시절 일명 대중가요 덕후였다. 지금이야 K-POP이란 이름이 전 세계적으로 불리고 있지만 한국적인 감성이 깃든 대중가요란 이름이 나에겐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많은 이들은 BTS가 빌보드 1위를 하고 많은 한국 가수들이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지금이 가요계의 황금기라고 하지만 나에겐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변방국이었을 지라도 90년대가 가요계의 르네상스 시절이 아닌가 싶다. 요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 자기 전에 90년대로 추억여행을 떠나는 일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 시절 처음으로 TV 속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가수는 박남정, 김완선, 소방차였다. 박남정이 <널 그리며>란 노래를 부르며 일명 ㄱ, ㄴ춤을 출 때 나도 언니와 함께 손으로 신나게 따라 췄다. 김완선이 빨간색 옷을 입고 <삐애로는 우릴 보고 웃지>이란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모습을 감탄하며 쳐다봤고 소방차가 <어젯밤 이야기>를 부를 때 중간에 들리는 ‘우. 아’와 같은 추임새를 맛깔나게 따라 불렀다. 그들은 노래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들의 현란한 발재간에 시선을 빼앗겨버린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가수들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가요를 좋아하기 시작한 때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1992년부터다. 이때는 가요계에 혁명 같은 존재가 등장했으니 그들은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를 아직도 기억한다. 한 프로그램에서 신인들이 나와 자신을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면 몇몇 전문가들이 점수를 매겨 그들의 노래를 평가했다(지금에서 보면 음악을 점수로 매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설정이었다). 처음으로 TV 프로그램에 나와 데뷔곡인 <난 알아요> 노래를 불렀다. 서태지의 음악은 다른 여타 가수와는 완전히 달랐다. 현란한 댄스는 물론이고 세련된 음악, 랩이 섞인 가사가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나에게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 음악을 처음 들었던 심사위원들도 혼란스러웠던 걸까. 그 무대를 직접 본 심사위원단들은 전부 혹평을 쏟아냈다. 그들도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을 듣고 적잖게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 후 서태지와 아이들은 심사위원의 혹평을 비웃기라도 하듯 빠르게 문화 대통령으로 등극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식 앨범뿐 아니라 콘서트의 생생한 함성까지 들을 수 있는 콘서트 실황 앨범까지 모조리 구입해서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들었다. 그중에서 나는 1993년도에 발표한 2집 타이틀 곡인 <하여가>를 가장 좋아했다. 국악적인 요소를 접목시킨 노래로 후렴구에 들리는 태평소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하고 신나게 들리던지 서태지의 음악적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증명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을 시도했던 그들은 그 당시 명불허전 문화 아이콘이었고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다. 그렇기에 1996년 들려온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친구와 부둥켜 앉고 펑펑 울었고 은퇴 전 발매한 스페셜 앨범을 들으며 은퇴 후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요즘 가전제품 TV 광고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이 BGM으로 쓰인걸 우연히 들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음악이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 잘 만들어진 음악은 이렇게 세대를 아우르는 힘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서태지와 아이들뿐 아니라 90년대 초중반 그러니깐 H.O.T을 시작으로 많은 아이돌이 쏟아지기 전의 시대에는 다양한 가수들이 다양한 음악 장르로 나의 귀를 즐겁게 했다. 발라드 황제 신승훈, 레게음악 김건모, 천일동안 이승환, X세대 대표주자 김원준, 긴 팔과 다리로 시원하게 춤추었던 박진영 등의 솔로 가수뿐 아니라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 꽃미남 더 블루, 귀여웠던 투투, 우리 언니가 좋아했던 가수 노이즈, 홍일점 멤버가 돋보였던 잼, 사랑할수록 부활, 내 친구들이 열광했던 넥스트, 개성 강했던 룰라 등 다양한 가수들이 모두 혼재하며 그들은 나의 학창 시절 추억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시절 노래를 들으면 친구들끼리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시청 소감을 나누고 서로 테이프를 빌려 듣고 가수들의 사진을 공유하던, 나이는 어리지만 감성만은 충만했던 순수했던 내가 떠오른다. 아마 그런 추억들이 있기에 그 시절 노래가 더욱 가슴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요즘 아이돌 가수의 음악을 즐겨 듣고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그들이 자랑스럽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생각할 때 K-POP이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니 그들은 문화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다양성이 결여된 체 천편일률적 아이돌의 등장과 비슷비슷한 음악, 퍼포먼스 위주의 현 가요계에는 전 세대가 공감하고 따라 부를 수 있는 호소력 짙은 노래가 나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도 내가 학창 시절 즐겨 들었던 한국적인 감성이 충만한 노래들은 더더욱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때 그 시절의 노래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나는 90년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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