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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Mar 20. 2021

두 번째 대학생

진정한 복수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날이 있기 마련이다. 나 또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나는 그런 날이 있다. ‘지난주 토요일에 뭐했지?’, '어제 내가 무슨 옷을 입었지?’라며 가까운 과거 일도 까먹곤 하는데 유독 그날은 잊히지 않는다.


  2007년 나는 27살이었다. 그날은 다시 수능을 보기위해 회사에 퇴사 야기를 꺼내야 했다. 얘기해야겠다고 결심하기지 얼마나 수많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지 당시 내 머릿속 뇌 구조를 그려본다면 ‘수능+퇴사’ 비중이 90%를 넘겼을 것이다.


‘그만두겠습니다’ 이 한 마디는 회사 동료들과 맛있게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 먹던 을 추억으로 돌리이고, 예쁜 옷과 화장품사는 일이 사치와 같다는 걸 의미한다. 내 입에서 일곱 자를 내뱉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멋진 직장인도 아니고 연애는 꿈도 못 꾸는 그야말로 백수의 길이 내 앞에 펼쳐지는 것과 .


하지만 결심한 만큼 미룰 수 없다. 내 계획은 5월까지 회사를 다니고 6월부터 재수학원에서 공부하 그해 11월 수능을 대비하는 것이다. 후임도 구하고 인수인계를 위해선 퇴사시기는 5월 초가 적당해보였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아침 출근을 준비할때부터 마음속에 여러 마리의 나비가 힘차게 펄럭거렸고 평소 건조해서 거칠기까지 한 손에는 땀으로 윤기가 좌르르 돌았다. 이제 이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대신 학창 시절 이후로 안 잡아본 연필을 집어야한다. 물론 연필이 중간에 여러 번 부러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다시 깎아 나가기로 했다. 이 손과 함께 라면 '잘할 수 있겠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날  큰 일(?)을 치르기 위해 비장한 마음으로 사무실로 출근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회의실에 계신 차장님을 보고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차장님 저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왜? 하고 싶은 일 있어?” 의외로 차장님은 놀라는 대신 침착하셨다.

“다시 공부하고 싶습니다. 교사가 되고 싶어요.”


내 마음속에 간직해온 보석함을 처음으로 남앞에 펼쳐 순간이다. 교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마구 뿜어져나왔다. 내 긴장된 마음은 어느새 후련함으로 바뀌었다.


“……”

‘차장님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실까? 헛소리 그만하고 다니던 회사나 잘 다녀 라고 하실까? 아니면 응원의 말을 해주실까?’ 다음 말이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회의실을 맴도는 어색한 공기가 차장님 입까지 마비시킨걸까? 침묵이 계속 이어졌다.


오랜 정적 후 드디어 침묵이 깨졌다.

“잘 생각했어. 오랜 꿈이었다니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좋은 선생님이 돼. 알겠지?

“네~ 감사합니다.”


그 당시 차장님은 회사를 다니면서 다시 야간 대학을 다니실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이셨다. 다행히 나를 이해해 주셨고 내 미래를 응원해주셨다. 한 고비는 넘긴 셈이다. 


이제 사무실에 있는 모든 직원이 아는 건 시간문제다. 27살에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일은 수군거림, 조롱, 안 될 거란 걱정과 수 백 개의 안타까운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염려한 바는  현실이 되었고 내 소식을 들은 직원들은 하나씩 심장에 비수꽂는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금 나이에 무슨 공부야? 그냥 회사 다니다 시집이나 가지’,

‘벌써부터 시집 잘 가려고 준비하는구나’,

 ‘무한 도전하시려고요?’,

 ‘잘되면 좋지만 안되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꿈을 향해 새 출발을 한다는데 굳이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얼까? 애써 ‘너나 잘하세요’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이 정도쯤은 견딜만했다.


하지만 내 앞에 더 커다란 산이 마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는 미처 몰랐다. 결재 거리를 들고 부장님 방에 들어선 순간 알 수 없는 냉기가 느껴졌다. 말없이 해주시던 부장님이 나를 힐끗 보며 한마디 하셨다.


“공부 다시 한다며?”

“네.”

“너 교대 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전교 1~2등 해야 교대 들어갈 수 있어. 그런데 네가 무슨 교대를 간다는 거야?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너 지금 회사를 나가면 다시는 네 발로 못 들어와!”


부장님은 그동안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법한 회사에 다니는 것과 '대기업 부장'이란 타이틀에 자부심이 넘치셨다. 한편 그에게서 그 자부심 이면에 감춰진 메시지가 들려왔다. ‘나는 갈 데가 없어서 여기서 이렇게 몇십 년 버티는 중인데 네가 감히 박차고 나가?’라고.


“우리 딸도 지금 기숙학원에서 재수하며 교대 준비하고 있어. 하루 종일 공부만 해도 붙을까 말까인데······”


말끝에는 ‘그런데 네가 감히 어떻게 붙는다는 거야?’라는 부정적인 말이 생략됐다는 걸 직감했다. 


그렇다. 부장님 딸도 교대 입시를 준비 중이었다. 부장님은 그전부터 종종 자기 딸 자랑을 늘어놓으며 ‘우리 딸 공부 잘해’, ‘우리 딸은 이화여대에 들어갈 감이야’라고 수없이 말해왔었다.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딸과 내가 같은 목표를 향해 공부를 한다는 게 기가 막혔는지 곧이어 결정적인 한마디가 날아왔다.


“맹랑한 것!”

“……”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느라 복잡했다. 평생 처음 들어본 말이다. ‘맹랑? 이거 좋은 의미인가 나쁜 의미인가? 나보고 맹랑하다고?’

그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좋은 의미로 하신 말이 아닌 건 누구도 알 수 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내 심장은 아침에 들어왔던 나비보다 몇 백 마리가 더 들어와 힘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를 이렇게 얕잡아 봤다니. 나를 회사를 나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 봤단 소리잖아.'


 부들부들 떨렸다. 그 자리에서 얼어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체 나온 내가 미워졌다. 결국 난 복수의 날이 오길 기다리며 5월에 회사를 나왔다.


  그 후로 내 목적지는 회사 대신 학원과 독서실이었다. 정장 대신 운동복을 입고 머리를 예쁘게 매만지는 대신 고무줄과 실핀으로 올백머리를 완성했다. 수능을 코 앞에 두고는 좀 더 공부량을 늘리기 위해 학원도 끊었다. 진짜로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 거다. 힘들고 지치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그 부장님 얼굴을 떠올렸다.

‘나는 당신이 생각한 그런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거야.'

고 다짐하며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나갔다.


  2008년 2월 어느새 운명을 결정짓는 날이 다가왔다. 20살에 대학입시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기분과 28살에 기다리는 기분은 천지차이다. 무거운 추 하나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이번에 안되면 내년엔 더 힘들 수도 있어’라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그동안 입시결과에 대해 심한 압박을 느끼고 있었던거. 그래도 주사위는 던져졌고 더 이상 피할  없었다. ‘이번에 안되면 일 년 더 도전해보자. 이대로 그만둘 순 없잖아’라며 마음을 가다듬고 결과를 확인했다.


“귀하의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같은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던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눈물은 나 자신에 대한 감동의 눈물이며  부장님의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한 기쁨의 눈물이기도 했다.


  2008년 3월, 드디어 나는 두 번째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장님의 자랑스러운  딸도 만났다. 우리는 같은 학교에 입학했고 그렇게 대학교 동문이 되었다. 난 결국 그날 아무 말없이 부장님 방을 나오면서 속으로 삭이던 말들을 행동으로 복수했다.


 그리고 알았다. 진정한 복수는 '상대방이 나에게  행동을 그대로 '복사 붙이기' 하는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 이란 것을.


그때 행복한 교사가 될 거라 결심했고 지금  난 행복한 교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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