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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Jul 20. 2021

빵순이의 빵 이야기

코로나도 막지 못해

요즘 바디 프로필 찍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인스타그램만 가봐도 건강해 보이는 몸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근력 운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도 저런 몸을 갖고 싶다’란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하지만 그런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탄수화물을 끊고 주로 단백질과 채소로 식단을 채워야 한다니 그야말로 탄수화물 러버인 나에겐 시작하기 전부터 진 빠지는 조건이다. 특히 빵으로 세끼를 때워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진수성찬이 생각나지 않는 그야말로 빵순이인 나에게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도 빵 냄새다. 아니 빵 향기다. 그냥 냄새도 아니요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엔 냄새(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을 다 포함하는)란 단어보단 향기(보통 좋은 냄새에 붙이는)가 어울리겠다. 정확히는 빵을 구울때 나는 향기를 좋아한다. 어릴 때 자주 가던 시장 안에 조그마한 동네 빵집이 있었다. 그 가게에서 3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도 코끝을 살짝 간지럽히는 빵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러면 어느새 내 발걸음은 터벅터벅 그 빵집을 향했. 사람이 향기에 취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빵을 통해서 깨달았다.


빵집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코끝에만 살짝 머물던 빵 향기는 내 콧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왔다. 나는 빵 향기를 온몸으로 음미하기 위해 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빵 향기를 가득 채우고 천천히 느끼기 시작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향기, 나를 기쁘게 하는 향기, 걱정, 근심을 다 없애주는 향기. 그 향기가 나에겐 빵 향기다. 그 순간 내가 서 있던 빵집 앞은 그야말로 내 세상이 된다. 그 앞을 지나가기 전 수없이 다짐을 했건만 매번 실패다. 어김없이 빵집 문을 열고 내가 좋아했던 단팥방(지금은 별로 즐겨하지 않는), 아빠가 좋아하는 카스테라, 엄마가 좋아하는 슈크림빵, 언니가 좋아하는 소보로빵 몇 개를 담는다. 꾸깃꾸깃한 용돈으로 빵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면 내 지갑 속엔 돈 냄새 대신 빵 향기로 가득 채워진다. 빵 향기와 더불어 내 마음도 풍성해진다.


어른이 된 후로는 프랜차이즈 빵집을 자주 찾게 된다. 그 이유는 단지 동네빵집이 없어져서다. ‘제과점’이란 간판이 붙고 빵 향기 솔솔 풍기던, 흰색 종이봉투에 한꺼번에 빵을 담아주던 빵집은 어느새 사라지고 대신 영어 간판, 화려한 조명과 테이블, 낱개로 포장해주는 비닐, 여러 빛깔을 자랑하는 빵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게도 크고 깨끗해졌으며 회사에서 고용한 빵 전문가들이 여러 날 고심 끝에 개발한 빵들도 입맛을 자극한다. 이곳 하노이에도 한국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빵집이 많이 들어선  보면 한국은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안 간다.


그런데 이런 프랜차이즈 가게 앞에선 이상하게도 문밖에서부터 나를 자극하던 빵 향기가 더 이상 나지 않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빵 향기보단 커피 냄새가 먼저 코끝에 느껴진다.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지만 오로지 어릴 적에 맡아본 본연의 빵 향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똑같은 맛이 아닌 투박하지만 그 가게 사장님만이 낼 수 있는 멋과 맛이 깃든 그런 빵 향기 말이다.


빵 종류가 많아졌지만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빵들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설마 어느 빵을 좋아하는지 알면 그 사람의 특징도 알 수 있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빵을 보면 꼭 나와도 닮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빵은 연예인을 보듯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케이크도 아닌, 얼굴에 예쁘게 분칠 한 크림빵도 아닌, 형형색색의 과일과 소시지로 장신구를 착용한 빵도 아니다. 식빵, 모닝빵, 베이글, 크로와상 같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요소는 없지만 빵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빵들이다. 어릴 때는 빵속에 단맛을 내는 무언가가 들어있는 단팥빵, 슈크림빵 등을 즐겨먹었지만 요즘 내 손길이 는 빵들은 대부분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빵들이다. 화려한 옷보단 회색, 갈색, 검은색 옷을 즐겨 입고 꾸미기보단 자연스러운  모습을 더 좋아하는, 기본을 중요시하는 나와 왠지 닮아 보인다.


통식빵, 모닝빵, 크로와상, 커피번 등은 이 집이 빵을 잘 만드는 집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나름의 내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런 빵을 손으로 갈라 자세히 보면 그 나름의 결을 가지고 있다. 그 한 결을 떼어보면 종잇장처럼 얇다. 그 결이 윤기를 내면서 부드럽게 갈라지면 내 기준에선 합격이다. 난 그 한 결 한 결을 혀끝으로 음미하며 먹는 것을 좋아한다. 먹었을 때 버터향이 너무 진하게 나서도 손에 기름 같은 버터의 흔적이 남아서도 안 된다. 이런 빵들은 몇 조각 더 먹게 되면 느끼해지기 마련이다. 은은한 버터향이 내 입안을 감돌고 빵을 뜯은 손은 먹기 전과 같이 보송보송해야 먹고 나서도 기분이 좋다.


또한 빠삭한 느낌과 부드러운 맛이 적당히 공존하며 조화를 이룬다면 그 집도 합격이다. 크로와상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싸악 소리를 내며 낱낱이 흩어지는 겉껍질과 그 속에 숨어 있는 부드러운 속살의 만남은 대조를 이루면서도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커피번을 손으로 갈랐을 때 딱딱하게 봉긋 솟아오른 겉과 달리 속에는 한없이 연약한 듬성듬성 엉켜있는 실타래와 같은 속살이 숨어 있다. 서로에게 동화되지 않고 각자 본연의 특성간직한 체 번갈아 가며 느껴지는 아삭함과 부드러움의 만남은 그 자체로도 훌륭하다. 잼이나 땅콩크림 따위는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여행지에 가서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갈 때에도 내 눈길을 끄는 곳은 당연히 디저트 코너다. 케이크, 쿠키, 과일 등이 알록달록 색을 뽐내며 저마다 고개를 내밀 때 내 눈길은 중력에 이끌리듯 차분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빵에게로 향한다. 크림이나 과일장식 등으로 화려한 요소가 조금이라도 섞이지 않고 온전히 갈색, 황토색으로 무장된 모닝빵, 크로와상, 머핀, 식빵으로 말이다. 나에겐 아무리 산해진미를 먹었다 할지라도 커피와 함께  빵으로 배를 채워야 ‘아, 잘 먹었다’라는 만족감이 몰려온다. 여행지에서 빵은 내게 식사의 끝인 동시에 여행을 즐겁고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는 시작이자 원동력이다.


요즘은 배달 앱을 이용하빵도 앞까지 배달된다고 한다.  나에겐 아직까지도 직접 매장에 가서 빵을 보고 고민 끝에 집게로 들어 기름종이가 깔린 쟁반에 담아야 진짜로 빵을 샀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현재 하노이에는 코로나가 다시 심해져 외출 자제 명령까지 내려졌다. 오늘 처음으로 카톡으로 빵을 주문해보려 한다.(한국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매장은 카톡 주문이 된다) 비록 직접 매장에 가서 빵을 담을 수는 없을지라도 내 빵 사랑은 코로나도 막을 수 없는 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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