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성희 Feb 15. 2022

난 너의 '야'가 아니다.

정월대보름이라 날은 날카롭게 차가워도 달은 크고 크게 밝다.


난 밤 9시 55분이 된 시간이 되서야 점심을 거른 저녁을 먹는다.


엄마가 어제 문 앞에 내어놓고 가져가라던 시장 가방에는 끝도 없이 나물들이 담겨져있었다. 매일 한달을 먹어도 남을 만큼 가득하다. 거기에 빠질 수 없는 김치 한통까지.


그 나물들을 꺼내 큰 국그릇에 냉장고 앞에 서서 담는다. 

그리고 밥을 더하고 푹푹 아무렇게나 비벼,

입에 우겨넣는다.


나의 고통과 슬픔과 화를 마음 속으로 꾹꾹 참아내듯

비벼진 밥을 입 속으로 구겨 넣는다.



조금 전, 너는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야!!


난 너의 '야'가 아니다.


난 기억도 못하는 정월대보름이라고 미리 나를 위해 손 크게 나물을 부치고 김치를 해서 가져가기 편하도록

현관 앞에 놓는 엄마의 소중한 딸이다.

난 나와 세상 모두의 시간을 소중하고 감사히 여기고 쓰는 좋은 사람이다.


난 너의 '야'가 아니다.


니가 아파트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악을 지르고 욕을 해댄 뒤 부르는 '야'가 아니다.

니가 소리지른 곳에는 내 동료들이 살고 있고, 내 제자들이 살고 있다.


그 비참함과 부끄러움을 너는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너의 '미안해'는 미안함이 아니다.

나에게 너의 '미안해'는 와서 닿지 못한다.


와서 닿기 위해선 그동안의 신뢰와 행동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일이 몇 번째인지 너는 기억할 수 있을까?


지겹다.

짜증난다. 라는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나는 지,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는가?


'미안해'

'이제 그 말을 믿지 않아.'


'그럼 어쩌자는 거야?'


내가 그것을 알아야 하는지 궁금했다.


'미안하다고 하는데 안 받아주면 그럼 결론이 뭐야?'


그 대답을 내가 알 수 있을까? 지금?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그 때는 언제이든 상관없지만 소중하게 아끼지 않으면 그 때가 눈 앞에 있어도 

넌 다른 길을 선택한다.


난 정월대보름에 인사를 보내는 제자와 부럼을 챙겨주는 동생과 조카가 있고 힘든 몸으로 나물을 무친 엄마가 있다. 


그 나물들로 밤 늦게 밥을 썩 썩 아무렇게나 비벼 입에 서럽고 억울한 울음을 우겨 넣어야 하는 나는 내가 아니다.


난 너의 '야'가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남편의 퇴사일기] 쿠팡잇츠를 시작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