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통해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관한 영상을 찾아볼 때면, 보드게임은 절대 빠지지 않았다. 보드게임은 그 좁고 지루한 공간에서 외국인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횡단 열차를 타기 얼마 전, 보드게임을 구매하기 부담스러웠던 나는 친구들을 통해 작은 보드게임 하나를 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열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지금, 보드게임을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을 만나게 되었다. 보드게임을 꺼내 들고 열차 안의 친구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침대에 뻗어 각자의 조그마한 바보상자를 바라보고 있던 친구들이 활짝 웃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그만 열차의 테이블로 친구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열차의 같은 칸을 이용하던 주변의 외국인들에게도 같이 게임을 하자며 제안했다. 그들이 하기 싫어서 그런 건지, 수줍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멈칫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방 우리 사이에 틈틈이 끼어 앉아 어울리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에게 게임을 알려주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게임을 알려주는 데 언어는 딱히 언어는 필요 없었다. 카드를 뒤집는 시늉을 하며 "음~!", 고무줄을 손가락에 끼우며 "으흠~", 미션이 끝난 사람은 종을 치면서 "으흠!". '음음' 거리며 설명하는 친구들이 우스꽝스러웠는지 러시아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낄낄거렸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이해하는 외국인들이 어이가 없다며 깔깔댔다. 정말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전부 서로를 보고 웃고 있었다. 게다가 다들 기가 막히게 게임을 이해하는 바람에, 게임에서 승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열정적으로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 깔깔댔던 우리는 어느새 체력이 전부 빠져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15분간 열차가 정차하는 역에 도착했다.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열차 안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탓에, 우리는 찬바람으로 열기를 식히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우리는 단체 여행을 온 사람들 마냥, 다 같이 둘러 모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러시아 친구들도 빠지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밖에서도 우리는 깔깔대며 눈 밭을 뛰어다녔다. 차갑게 몸을 식히고 돌아온 열차 안에서 더 이상 정적은 없었다. 자리에 누워 휴대폰을 쳐다보던 이전과는 달리
다들 여기저기 움직이며 서로 교류하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빌려서 영화를 보는 사람, 러시아 친구에게 카드놀이를 배우는 사람, 러시아 친구와 함께 휴대폰 게임을 즐기는 사람. 횡단 열차 여행의 또 다른 낭만이 일어나고 있었다.
저녁 8시를 한창 달릴 무렵, 오늘의 마지막 장기 정차역에 도착했다. 잠이 들기 전에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열차 안의 친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국에서부터 공수해온 추억의 불량식품 '쫀드기'를 굽기 시작했다. 러시아 친구에게 쫀드기를 찢어 라이터로 굽는 모습을 보여주며 해보라고 쫀드기를 건넸다. 열심히 쫀드기를 구워 나눠 주다가 러시아 친구가 쫀드기를 잘 굽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아뿔싸, 얼마나 지졌는지 러시아 친구의 쫀드기는 종이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덕분에 플랫폼은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첫 번째 횡단 열차의 마지막 밤이다. 뒤쪽으로 길게 쭉 이어져있는 열차를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러시아만의 차가운 겨울 공기가 느껴졌다. 낭만적인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방금 만지려던 강아지가 내 손가락이 소시지인 줄 알고 물려고 했던 것만 빼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떠올릴 때면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도 함께 떠오르겠지. 언젠간 다시 만나 함께 추억을 노래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