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우데 Episode. 1

by 혁꾸

횡단 열차에서 내리기도 쉽지 않다.


아주 미치는 줄 알았다. 울란우데라는 이름은 휴대폰 시간에도 없다. 분명 우리가 역에 도착해야 할 시간은 오후 2시 20분인데, 왜 2시 20분에 열차는 달리고 있는 거냐고. 왜 러시아인은 아무도 불안해하지 않고, 한국인만 덜덜 떨어야 하는 거냐고! 휴대폰의 시차가 맞지 않았던 우리는, 열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약 20분 뒤, 오후 2시 40분 열차가 역 플랫폼에 도착했다. 워후, 드디어 도착이구나. 열차가 왜 이렇게 연착된 건지 이유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난 지금 내려야 돼!'라는 생각만이 가득히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열차가 정차하고 우리는 열차에서 내리기 위해 열차의 출구로 향했다.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열차 안, 인종을 불문하고 낯이 익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스비 다니야!, 다스비 다니야!" (안녕히 계세요 라는 뜻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귀엽다는 듯이 우릴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복도의 차장님 실을 지나는데, 차장님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와서 우리를 막아섰다. 뒤에서는, 우리와 함께 지냈던 러시아인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우리가 내리는 걸 막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차장님은 아직 우리가 내려야 할 역이 아니라는 걸 러시아어로 또박또박 말씀해주시고 계셨다. 근데 우리는 그 말을 어떻게, 알아듣고 있었다. 민망함에 한바탕 깔깔 웃어대며 다시 자리를 향해 뒤를 돌았다. 아이고, 이제 간다고 온 동네에 아쉬운 인사를 건네며 지나왔는데 여기를 어떻게 다시 돌아간담. 정말 가시밭 길이 따로 없었다. 실실 웃으며 되돌아가는데 하도 민망해서 슬쩍 인사를 건넸다. "프리 비앗~" (안녕하세요~). 어휴 나의 민망함에 부끄러운 인사가 웃겼는지, 주변 러시아 인들이 호탕한 웃음으로 떠들썩거렸다.


Tip - 열차에서 내리는 역에 도착하기 전, 차장님이 직접 좌석으로 찾아와 표를 건넨다. 이번 정거장에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또, 열차에서 내리기 전에는 사용했던 배게 피와 이불 덮개를 잘 정리해서 차장님 실에 가져다 드려야 한다.



호텔이라는 사치


정상적으로 열차에서 내린 뒤, 역의 플랫폼을 나왔다. 역 앞에는 유럽 느낌을 물씬 풍기는 눈 쌓인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씻. 고. 싶. 다." 원래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었으나, 눈 깜짝할 새 택시를 잡아 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뭐, 예정은 예정일뿐이니까.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3성급 호텔이었다. 사실 관광객이 많은 도시도 아니라서, 숙박비가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다.


도착한 호텔은 예상외로, 아주아주 높고 커다랐다. 호텔의 꼭대기를 보려면 목이 부러질 정도다. 아무튼 구경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부리나케 호텔 카운터로 달려가 체크인을 부탁했다. 그리고 룸 카드를 받은 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제가 생겼다. 카드키에 쓰여있는 층은 9층이 맞는데, 웬 글씨체 아주 심상치 않다. 대체 902호인지 907호인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봐도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 없었던 우리는 바로 앞에 보이는 907호에 카드키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 "삐용~ 삐용~" 하는 경고음이 울렸다. 옆으로는 잽싸게 902호로 달려가고 있는 친구가 보였다. 아, 친구란 이렇게 쉽게 버려지는 건가 싶다.


호텔은 꽤나 아늑하고 좋았다. 가장 좋았던 점은 침대가 아주 푹신하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침대는 에이스 침대 뺨치는 나른함을 우리에게 가져다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른함도 잠시 샤워를 위한 설전이 벌어졌다.

"나 먼저 씻는다."

"안돼"

"왜 너 누워 있잖아"

"(일어나면서) 안돼"

우리는 서로 먼저 씻겠다고 투닥거리며 쌩 난리를 피워 댔다. 관대한 내가 그냥 나중에 샤워를 하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샤워기의 따뜻한 물줄기였다. 너무 따뜻해, 눈을 감은 채 따뜻한 물줄기를 즐겼다. 머리는 두 번이나 감았다. 한 번으로는 머리의 기름기가 가시질 않았다. 행복했던 샤워를 마치고 짐 정리를 했다. 빨래를 옆에 꺼내 놓은 후, 우리는 푹신한 침대에서 잠시 달콤한 숙면을 즐겼다. 3일간 열차에서 불편한 잠자리를 가지다가 침대에 누우니까, 정말 천국이 여기인가 싶다.



울란우데의 맛집을 찾아라


해가 어두워지고, 우리는 시내를 구경하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왔다. 커다란 입구처럼 보이는 조형물을 시작으로 울란우데의 레닌 광장이 보였다. 레닌광장은 신년을 맞아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아주 큰 얼음 미끄럼틀이었다. 어느 누가 이렇게 새로운 재미를 지나칠 수 있으랴, 그것은 여행에 대한 실례이다. 하지만, 열차에서 내리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우리는, 밥을 먼저 먹고 오기로 했다.


아직 이 도시에 온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았지만, 한국인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부랴트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는, 서양인보다는 우리와 비슷한 동양계의 모습을 가진 몽골인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저녁식사를 위해 우리가 방문한 곳은 울란우데 맛집으로 소문, 소문까지 난 것은 모르겠고, 그나마 정보가 있는 곳이었다. ‘부쟈만두’라는 곳이다. ‘부쟈만두’는 울란우데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한다. 식당에 들어가 앉고 나니,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러시아어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배고픔 앞에 주저할 시간은 없다. 당당하게 카운터 앞에 서고 나니, 크림 파스타와 부쟈만두 세 덩이가 한 접시에 담겨있는 그림이 보였다. 손가락으로 메뉴판의 그림을 가리키면서, 크림 파스타 한 접시와, 부쟈만두 세 접시를 달라고 표현하니, 직원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포스를 두드렸다. 주 관광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가격이 엄청 싸다?


그럼 그렇지, 가격이 싸도 너무 싸다 했더니, 만두 세 접시가 아니라 세 개가 나왔다. 아니 배고픈데 이걸 누구 코에 붙이냐고요. 그 와중에 만두는 꽤 맛있다. 다시 주문을 하러 가는 김에, 겸사겸사 맥주도 한 캔 주문해야지.



울란우데의 신년 맞이


밥을 먹고 나서 다시 레닌 광장을 찾았다. 그 많던 사람들은 거의 사라지고 몇 명만 남아 썰매를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썰매를 이용해서 미끄럼틀을 즐기고 있었다. 음, 그렇지만 나는 썰매도 없고, 썰매를 빌릴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명색이 스키강사 출신,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찢어진 상자 조각만 있다면, 스노보드 타듯이 내려오는 건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노보드는 무슨, 나는 엉덩이로 신나게 미끄럼틀을 내려왔다.


레닌 광장에 주변에는, 단 한 개의 맥주집이 있었다. 오늘을 끝내기 아쉬웠던 우리는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기 위해 ‘샤슬리 코 FF’라는 가게로 들어왔다. 여기도 어김없이 옷을 걸어 둘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신년의 밤이라서 그런지,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간단하게 맥주 한잔을 마신 후 가게를 나왔다. 가게 앞에는 울란우데 현지인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듯 말을 걸어왔다. “니하오!” 그래, 그럴 수 도 있지. 영어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얼굴이 찢어질 것 같은 밤바람에,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얼른 자야지, 내일이면 저녁에는 다시 기차를 타야 한다. 어서 빨리 이 침대를 다시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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