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가 정차하는 시간

by 혁꾸

[ 횡단열차에서 샤워하기]


운동하는 친구

좌석으로 돌아오니 성진이가 좁은 좌석에서 마저 운동을 하고 있었다. 1층에 앉아 있는 내 눈 앞에 성진이의 엉덩이가 오르락내리락 반복해서 움직였다. 성진이의 엉덩이에 펜을 꽃았다. 하지만 성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을 반복했다. 눈 앞에 엉덩이가 왔다 갔다 하니, 확실히 기분은 조금 그렇다.



운동이 끝난 성진이가, 샤워를 하고 싶다고 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는 샤워하기가 쉽지 않다. 2등석 혹은 1등석 칸에 있는 차장실을 찾아가서, 차장님께 돈을 지불하고 차장님 전용 샤워실에서 샤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나는 귀찮다고 칭얼거렸지만, 성진이는 꼭 샤워를 해야겠다며, 나를 이끌고 차장실을 찾아 나섰다. 우리 열차 칸의 차장님께 샤워를 하고 싶다고 여쭸더니, 역방향으로 3번, 식당에 도착하기 전 칸에서 샤워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가격은 200 루블, 약 4천 원 돈이다. 한번 샤워하는 데 4천 원이라니, 쉽지 않은 가격이다.

샤워가 가능한 칸에 도착하니, 차장님이 불쑥 튀어나와서 “No!”라는 소리와 함께 우리를 막아섰다. 그리고 그만 돌아다니라는 듯이 되돌아가라는 손짓을 보였다. 잠깐만요, 차장님 우리 씻으러 왔어요, 돈 쓰러 왔다구요. 우리는 몸의 언어와 “Shower”라는 단어로 씻고 싶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러자 차장님은 “oh~ shower~?” 하면서 자본주의의 친절한 미소로 우리를 안내했다. 하하. 도착해보니 샤워는 한 사람당 150 루블에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씻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 별로 찝찝하지도 않은 데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 씻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 씻는다는 것을 알린 뒤에, 돈을 지불했다. 마냥 기다리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먼저 자리로 되돌아 가려고 했지만, 빨리 씻을 테니 같이 가자는 성진이의 말에 문 옆에 구비되어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성진이가 하는 말 “혁구야, 나 수건 안 가지고 왔어…”. 하하, 이 자식이? 젠장, 하도 이리저리 지나다녀서, 이제는 차장님이 되돌아가라고 하는 판에, 한번 더 다녀오라고? 더 이상 돌아다니기 무서워서, 돌아간 뒤에는 잠자코 있으려고 했는데. 하, 외국만 아니었으면 바로 도망갈 텐데.



역사진 예쁜.PNG


[열차가 정차하는 시간]


열차가 조금이나마 길게 정차하는 역에 도착한다면, 꼭 열차에서 잠시 내려 바깥공기를 마시며 환기를 시켜주는 것이 좋다. 강력한 추위에 밖으로 통하는 조그만 틈 조차 허락하지 않는 따뜻한 기차 안에서는 환기가 잘 되지 않는다. 특히 3등석 칸에서 생활하다 보면 신선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금방 그리워진다.

열차가 정차하고,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매 정차시간에 맞춰 같이 나와 담배를 피우던 친구가 있었는데, 괜히 한 번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23살 쟈드랏이라는 이름의 러시아인이었다. 사실 적어도 28살은 되어 보였는데, 나보다 동생이라니. 나를 배려하지 않는 그의 유창한 러시아어를 이해하지 못해, 번역기를 들이밀었더니, 같이 매점에 가자고 한다. 외국인 친구에게 무엇인가를 같이 하자고 제의를 받다니, 별거 아니지만 꽤나 좋은 기분이었다. 쟈드랏은 가게에서 슈크림 과자를 세 봉지 구매했다. 그는 나에게 러시아의 맛있는 과자를 맛보게 해 주려는 걸까? 매점을 나와 쟈드랏은 과자를 한 봉지 뜯어, 자신의 입에 몇 개를 집어넣은 뒤, 나에게 맛보라며 하나를 건넸다. 아하, 세 봉지 중 한 봉지를 나에게 주려는 것은 아니었구나? 아하, 그렇구나. 시원하게 김칫국을 원 샷 했다. 이게 당연한 건지. 그래도 쟈드랏이 먹어보라고 준 과자는 정말 맛있었다. 다음 역에 정차하면 꼭 사 먹어 봐야겠다.

과자 따라가는 역 플랫폼의 개

열차로 다시 돌아오는 중, 커다란 개들을 만났다. 쟈드랏이 들고 있는 슈크림빵의 냄새를 맡았는지, 그를 졸졸 따라간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귀엽고 똘망이는 눈으로 간식을 갈구했다. 우리가 열차에 오르니, 따라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한쪽 발을 열차 계단에 올리고 글썽이는 눈으로 차장님을 쳐다본다. 신기하게도, 누구 허락이 있어야 열차에 오를 수 있는지 아나보다. 저렇게 똑똑하고 귀여울 수가, 러시아 역 플랫폼에는 개들의 출입이 자유로운 것 같다. 경찰견 치고는 너무 자유로운데,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이전 09화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식당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