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다.

by 혁꾸

모스크바에서 초고속 열차를 이용하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갈 수 있다. 약 4시간 정도가 걸리는 여정인데,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는, 기내식, 노트북을 할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 깔끔한 화장실 등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느낄 수 없는 호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저녁 7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별 다른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와 별 달라 보이지 않는 역의 풍경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까지 오려고 했으나,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타려면 집니다 55 루블을 내야 했다. 세상 비합리적인 가격이다.


짐이 좀 있어서 부담스러웠던 우리는 택시를 타기 위해 역 밖으로 나왔다. 역에서 숙소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30분 정도가 걸리는데, 걸어서 이동해도 30분 걸리는 거리였다. 역 밖으로 나왔을 때 택시를 타겠다는 생각은 싹 사라지고 없었다. 역을 나오자마자 들리는 거리의 버스킹 공연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술적인 건물들, 그리고 건물을 비치는 조명이 내 눈동자 속에 가득 차 버렸고, 택시를 타기보다는 걸어가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술적인 건물과 거리를 느끼고 싶었다.


또, 역 앞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모스크바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사람이 많았고, 사람들이 키는 또 엄청 길쭉했다. 그렇지만 나는 당당하게 캐리어를 끌며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인웅이 형과 성진이에게 같이 걸어가자고 했지만, 택시를 탄다고 해서 나 혼자 숙소로 걸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지 택시를 잡으며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러시아인들 사이사이를 거닐며 숙소로 가는 길은 꽤 멀었지만 기분은 상쾌하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정교회를 구경하기도 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을 흐르는 강과 아름다운 다리, 그리고 지나가면서 보이는 식당들은 새롭고 흥미로웠다. 특히 지나가다가 보게 된 식당 안에서는 원 테이블 식사가 열리고 있었다. 긴 테이블에 열댓 명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면서 웃으며 대화하고 있는 분위기가 엄청 인상적이었다. 가족일지도 모르고 친구일지도 모르고 처음 보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엄청 따뜻하고 화목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지도를 따라가다가 보니 여러 골목골목이 많았다. 물론 분위기가 떠들썩한 골목도 있었지만 음침한 골목도 있어서 무섭기도 했다. 안 주머니에 모든 중요물품을 넣은 후 캐리어를 끌고 남은 한 손으로는 주먹을 꽉 쥔 채 혹시 모를 괴한에 대비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뒤이어 성진이와 인웅이 형도 숙소에 도착했을 때, 인웅이 형이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중간에 둘 다 사라졌길래, 도중에 택시가 잡혀서 탔거나 버스를 탔겠거니 했는데, 인웅이 형이 소매치기를 당할 뻔해서 늦게 온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혼자서 걸어온 것이 조금 후회됐다. 타지에서 다 같이 으쌰 으쌰 해도 모자랄 판에 혼자 느끼는 거리의 분위기에 이끌려 걸어가다 보니 혼자서 너무 앞서 나갔던 것 같다. 남은 여행 얼마 안 되지만 조금 더 서로서로 신경 써서 다니도록 해야겠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오니 노년의 한국인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잠깐 얘기를 들었는데도 여행에 대한 내공이 상당하신 분인 것 같았고, 여행을 알뜰하게 잘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도 두 개를 가지고 다니시면서 러시아 유심도 구매하지 않으시고 와이파이만 사용하시면서 여행을 하고 계셨다… wow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시면서 끼니도 직접 요리하셔서 해결하시고 관광지도 전부 걸어 다니면서 구경하셨다고 한다.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너무 궁금한데 여쭤보지는 못했다. 아마 예사롭지 않은 일을 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말하지 않다노 느껴지는 것 같다.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일본인처럼 생긴 노년의 남성 한 명이 계속 쳐다보길래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었더니,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주시는데, 반가운 한국어였다. 한국에 대해 조금 알고 계시는 분이셨다, 한국어로 몇 가지 단어를 웃으면서 말하시는 것을 보고 일본인이냐고 물어봤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고 있는 현지인이라고 하셨다.. 틀린 답에 괜히 미안해지는 기부닝다.

그렇게 짐 정리를 어느 정도 끝내고 한국인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가까운 마트로 향했다. 세상에, 마트 물가가 너무 저렴했다. 진정한 로컬마트였던 것이다. 여태까지 다른 러시아 지역에서 어느 마트를 가도 이런 물가와 상품들을 볼 수 없었다. 아마 남은 3일 우리에게 아주 유용한 식량 및 간식 마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렴한 물가 덕에 라면, 과자, 콜라, 아이스크림 등 여러 가지 먹고 싶은 음식들을 가득 담아 사 왔다. 특히 아이스크림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한국 아이스크림에 엑설런트라는 아이스크림 30개 정도를 이어 붙인 크기의 커다란 아이스크림이 고작 몇 천 원 밖에 하지 않았다. 마트에서 나와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바로 아이스크림을 까먹었다. 사실 추운 날씨에, 녹는 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팔뚝만 한 크기의 아이스크림을 입으로 베어 먹는데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다. 한국이었으면 엄두도 못 낼 양의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고 있다니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우리는 풍족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몸에 쌓인 피곤함을 샤워로 씻어냈다. 어서 내일이 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구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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