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의 좋은 점, 끝이 있다는 것.
슬기로운 여름방학까지는 아니었지만 별일 없이, 무탈하게 첫째의 초1 여름방학이 끝났다. 아이는 방학이 끝난다는 아쉬움과 선생님,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고 나는 방학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하며 출근했다. 이제 아이의 돌봄 공백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될 터였다.
아이를 키우며 고비는 여러 번 있었다. 수족구처럼 전염성이 강한 질병으로 일주일씩 어린이집에 가지 못 할 때에는 친정엄마가 육지에서 제주로 날아오셨고, 코로나로 인해 두 달여간 어린이집 등원을 하지 못했을 때에는 시부모님 댁에 아이를 맡겼다. 굵직굵직한 사건 이외에도 아이가 열이 나서, 아파서 급하게 회사에 연가를 내고 돌봄에 투입되었던 날들은 무수히 많다.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듯 크고 작은 고난들을 하나하나 넘기고 이제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아이의 첫여름방학을 함께 겪으며 왜 일하는 여성들이 '초1 맘'이 되면 경력단절을 고민하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방학 전, 여름방학 돌봄 교실 신청서를 받고 작성하다 보니 하원시간이 오후 1시였다. 작년에는 신청자가 많아 추첨을 하긴 했으나 (어찌 되었든) 오후 3시까지 돌봄을 운영했다고 들었는데 올해는 왜 1시까지만 하는지 의아해하면서 신청서 하단에 연장반 신청은 따로 받는지 질문을 적어서 보냈다. 돌봄 선생님께서 전화로 말씀하시길, 작년에 신청을 받을 때와는 다르게 실제로 연장반에 참여하는 아이가 거의 없어서 올해는 연장반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그러면 엄마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외쳤지만 실제로는 "네......"하고 공손하게 전화를 끊었다. 오후 1시에 끝난다고? 오후 1시라니. 이건 너무 이르잖아??? 하루 두 시간 사용가능한 육아시간을 써도 오후 4시는 되어야 퇴근이라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없는 부모들에게 방학은 고통의 시기임이 분명했다.
방학 동안 수업 시간 변동이 있는지 알아보기 태권도 학원에 전화를 해보았다. 방학이 짧기도 하고 여러 학교의 방학을 맞출 수가 없어서 평소랑 동일하게 운영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평소 아이가 관심 있어하던 축구교실에도 전화를 해보았는데 화, 수에는 2시 30분, 목, 금에는 4시 30분이고 방학이나 학기 중이나 시간이 동일하다고 했다. 돌봄 공백을 메우기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고 매일 가는 태권도랑 시간을 맞추기에도 애매했다. 방과후학교와 학원 일정이 있으니 방학 통째로 조부모님댁에(친가든 외가든)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할수록 학교를 마치고 태권도 학원 가기까지 2시간의 공백을 메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시락일지언정 학교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시간이 흘러 방학이 되었고 아이는 일단 집에 혼자 있어 보기로 했다. 그전에도 집에 혼자서 있어본 경험이 있으니 두 시간 정도는 괜찮을 거 같다고 의젓한 모습을 보였고 나의 소란한 마음도 가라앉았다. 단, 비가 내리기 전까지. 방학하고 3일째 되던 날 아이 하교 시간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은 있으니 집에 가는 건 문제가 아니다 싶었는데 하늘이 금세 어두컴컴해지고 바람이 부는 게 날씨가 심상치가 않았다. 아파트 공동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는 전화를 걸어왔다. 천둥이 쳤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멈출까 봐) 무서워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간다고도 했다. 비가 계속 많이 오면 태권도 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는데 곧바로 다시 전화가 왔다. 조금 전까지도 의연했던(것 같았던) 아이가 금방 울 것처럼 겁을 먹은 목소리로 "엄마 무서워! 이상한 소리가 들려! 으아! 으아! 엄마 어떡해! 살려줘!" 하는 것이 아닌가. 바사삭. 내 정신이 급속도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소리에 민감해서 외부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음에 쉽게 놀라고 움츠러들곤 했다.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고 외출하겠다고 복무 결재를 올린 뒤 집으로 출발했다. 이만저만 한 사정으로 아이를 사무실로 데리고 와야 할 것 같다고 미리 양해를 구한 뒤라 돌아올 때는 아이와 함께였다. 쭈뼛쭈뼛해하는 아이에게 동료가 탕비실에 있던 아이스크림과 과자 등을 건네주자 아이도 긴장을 풀었다. 동료는 일곱 살 아이를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병설유치원에 보내고 있어 더욱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다.(안타깝게도 머지않은 미래에 그녀 역시 이 상황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이날 이후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고 아이는 방과 후 사무실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아이는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엄마의 퇴근을 기다렸다. 사무실 규모가 크지 않고 일하는 직원이 나 포함 3명이라서, 부서장님을 비롯해 같이 일하는 분들이 흔쾌히 응해준 덕분이 가능한 일이었다. 문득 다른, 일하는 엄마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 궁금했고, 한편으로는 일하지 않는 전업 엄마들이 몹시도 부러워졌다.(물론 전업 엄마들에게도 고충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첫째와 둘째를 합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 총 6년이다. 그중 급여를 받을 수 있는 휴직은 첫째가 태어나고 1년, 둘째가 태어나고 1년, 총 2년으로 모두 소진하였다. 4년의 휴직 기간이 남아있지만 무급이라서 실제로는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돌봄이니, 늘봄이니 매체에서는 돌봄 공백을 위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홍보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도움받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 가정을 이룬다는 건 부모로부터 독립했다는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일 것인데 부모로부터 돌봄 지원을 받지 않고는 자녀를 기르기 매운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어디 돌봄 뿐인가? 내 집 마련 역시 부모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현실이 매우 유감스럽다.)
겨울 방학에는 아이가 혼자 집에서 보낼 수 있겠지? 내년에는 2학년이니까 상황이 지금보다는 조금 낫겠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사이 여름방학이 끝났고 아이는 이제 사무실에 오지 않는다. 방학이 좋은 건 '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일하는 엄마가 처음 겪어본 방학은 매운맛 그 자체였다. 저출산에서 '초'저출산 시대가 된 지금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출산장려금 지급처럼 '출산'에 집중하는 정책을 넘어서 유급육아휴직 연장, 육아휴직 자동의무화 등 '돌봄'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사회적 돌봄이 확대되는 건 반가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는 가정 내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이 더욱 간절하고 소중하다. 둘째의 첫 여름방학엔(앞으로 6년 뒤) 이것과는 다른, 긍정의 소회를 남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