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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Feb 04. 2023

2022 암 희망 수기 공모전 출품작(낙선)

어머니는 곧 집에 오실테니까요


 "뭔 피여! 됐당께!"

 10여 년 전, 그 할아버지가 주삿바늘이 싫어서 건강검진 버스에서 뛰쳐나오신 것이 어머니에게는 천운이었을까요. 마을회관에서 매번 버스가 올 때마다 대상자들을 불러 모으는 방송을 하지만, 어르신들은 어찌나 사무가 바쁘신지 당최 오실 줄을 모릅니다.

 오시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렇게 피를 뽑기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은 다른 문젭니다. 하지만 어쨌든 건강검진버스도 먼 길 행차하였는데, 머릿수는 채워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아마 그 간호사분이 저희 어머니를 붙잡았나 봅니다. 할머니, 피검사 좀 하시라고요. 

 저희 어머니는 한 때 마을 이장 출마를 종용받으실 만큼, 마을에서는 빼어난 인재십니다. 올해로 벌써 나이가 일흔 넷이시지만, 마을에서는 젊은 축에 속하기도 하시고요. 비록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으셔서 한쪽 다리를 못 굽히셔서 불편하시지만 부녀회장도 하시고, 교회도 부지런히 다니시며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하십니다.

 그렇게 '똑똑한 순자 여사님'에게도 늘 마음의 불안이 있으셨는데, 그것은 B형 간염이었습니다. 비활동성이긴 했지만, 병원에서 권하는 정기적인 검사는 형편 상 늘 미루고 미뤄지기 마련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어릴 때에는 절대 완치가 안 된다는 B형 간염처럼, 가난이 늘 간염 바이러스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게다가 검사를 하려면 읍내에는 나가야 하는데 마땅한 교통편도 없으니 오죽했을까요.

 걱정은 하지만 현실의 어려움으로 검사를 잘 안 하셨던 어머니. 이런 걸 헛똑똑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가난 속에 아픔을 발견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외면하신 걸까요.

 어찌 보면 그날은 지레 겁을 먹고 땅 속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처럼 미련하게 모르는 척하고 있던 어머니에게 하늘이 귀띔을 해주려고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유난히 주삿바늘이 싫어서 피를 뽑지 않은 할아버지의 고집과 그날 따라 할 일 없어 마을회관에 마실을 나선 어머니의 한가함. 그리고 검진 대상을 채우려는 간호사의 절박함. 여러 요소들이 어머니의 첫 번째 암인 간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혈액검사상 간 수치가 엄청 높아 어머니에게 정밀검사를 해보라는 의견이 나왔고, 광주 내과에서 초음파 검사 결과 간에 혈종이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화순 전남대학교 병원으로 전원 하여 CT촬영과 조직검사 결과 간암 1기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당시 목포대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병원까지 가는 길이 꽤나 멀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때의 어린 저는 어머니를 잃는다는 생각을 하질 않았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병을 모르는 척하려고 하셨던 것과 같이, 저 역시도 어머니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을 끝까지 외면하고 싶었을 겁니다. 

 정말 다행히도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항암치료도 없이 10여 년을 건강히 사셨습니다. 물론, 깔끔했던 시골집이 전과 다르게 좀 어질러지고, 맛있던 어머니의 손맛은 사라지고 모든 음식이 밍밍해졌지만요. 그 사이 형은 금쪽같은 손자와 손녀를 안겨 드렸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꿈에도 그리던 직장에 합격도 했고, 귀한 며느리도 얻어드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영원한 행복이 계속될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러한 착각들이 못난 아들을 다시 불러낸 것일까요. 

 몸이 불편하신 고집쟁이 아버지를 혼자 모시고 사는 어머니에게 잘 찾아뵙질 않았습니다. 이제 결혼을 해서 나도 내 가정이 있다는 핑계로 두 달에 한 번, 세 달에 두 번 찾아가는 일도 적었습니다. 필요하다는 물건은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택배로 보내드리기 일쑤였고, 아프다는 말씀을 들어도 그저 가벼운 노환이겠거니 넘겼습니다. 

 올해 초 어머니가 큰 통을 들다가 허리를 삐끗한 것 같다는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그때 물리치료를 받으러 갈 때 택시를 타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라도 차에 태워서 큰 병원에 갔었더라면. 갑자기 빠진 살을 보며 뭐 먹고 싶은 건 없는지 물을 것이 아니라 건강을 의심했더라면. 조금 달랐을까요. 

 계속 물리치료만 받으시던 어머니는 차도가 없자 인근 의료원에서 CT를 찍으셨고, 늑골 쪽에 종양이 보여 보호자를 데려오라는 말을 듣고는 저에게 연락을 하셨습니다. 그때까지도, 전 두 번째 암이 어머니를 찾아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는 직장생활과 어머니 병원 진료로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림프종 3기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막 1차 항암이 끝났고,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일단 잘 버티고 계시고 종양의 크기도 줄어들었다며 계속 열심히 치료해보자고 합니다. 

 어떤 종교도 믿지 않지만, 기도해보고 싶습니다. 아니요. 물어보고 싶습니다.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어제는 시골집에 다녀왔습니다. 아버지는 늘 그렇듯, 별 말이 없으십니다. 50여 년을 함께한 어머니가 아프신데 무슨 할 말이 있으실까요. 그렇게 못 살겠다고 하시면서도 계속 걱정하신 아버지가 드실 곰탕이며 매운탕 거리며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뒀습니다. 

 이제 여름의 끝에 집은 구석구석 습기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분명 아버지도 계시고, 저도 왔다 갔다 들러보지만 아무래도 어머니가 없는 집은 어딘가 푸석푸석하고 오래된 냄새가 납니다. 이런저런 우울한 생각이 치밀어 현관에서 서서 집을 쓱 훑어봅니다. 

 아, 아닙니다. 이렇게 둘 것이 아닙니다. 

 항암 효과도 좋고 어머니도 힘내서 억지로 식사를 하고 계시는데, 제가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다음 주말에는 집 안에 묵은 때도 닦아내고, 작은 방에 거미줄도 걷고, 얇은 이불은 빨고 두꺼운 이불은 미리 빼서 볕 좋은 날 말려놔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곧 집에 오실 테니까요. 집에 오시면, 오랜만에 집에 오시면 편히 푹 쉬실 수 있게 준비해두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니는 곧 집에 오실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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