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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Jan 17. 2023

집사의서평#76 전력 질주

재능과 재난



들어가는 말


 이상 기후. SF소설의 단골 소재다.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를 여럿 접한 나로서는 이번에도 뭔가 기괴하거나 기상천외한 장르물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목차를 접하면서 '아무리 단편이라도, 이 정도라니. 초단편인가? 표지엔 경장편인데...?'라고 생각했고, 첫 챕터인 '롤링'을 다 읽고 나서야 모음집이 아닌 한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중반 이후가 되어서야 장르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물론, 모든 안전가옥의 쇼트 시리즈를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 취향에 따라서 그런 종류만 골라서 읽은 것도 아닌데...) 장르가 아닌 이런 경장편의 소설 역시도 상당히 좋은 느낌이다. 그리고, 뭔가 실험적인 소설의 등용문처럼 느껴지는 안전가옥이 이런 경장편도 시도를 한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언제부턴가 개인적으로는, 안전가옥이 나름 믿고 볼만한 출판사가 되어있는 것 같다.



재능과 재난


 진은 건강상태가 운동을 안 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이 듣기 싫어 운동을 시작한다. 달리기를 시작해 보지만 자꾸 넘어지고 다친다. 특히 줄 풀린 강아지들과 그 주인들의 몰상식에 트라우마까지 생긴다. 자꾸 다치자 의사는 수영을 권하고, 태어나 무엇에도 욕망한 적 없던 진은 수영에 미친다. 

 결국 아마추어 중에서는 소문이 날 정도로 빼어난 실력이 된 진. 어느 날 출전한 철인 3종 경기에서 자신과 반대인 설을 만난다. 

 설은 바다가 싫었다. 그래서 자꾸 바다를 등지고 달리기만 했다. 수영을 타고난 진처럼, 설은 달리기를 타고난 듯했다. 하지만 그런 설이 걱정된 부모님은 외로워서 그렇다 여겨 하얀 강아지 백일이를 사준다. 낚싯배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홀로 낚시를 나가던 날, 설은 동화책에서 봤던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강아지를 떠올리곤 배를 태워달라 억지를 쓴다. 하지만 바다의 변덕은 예상 불가능하고, 갑작스러운 풍랑에 그만 백일이를 바다에 잃고 만다. 그렇게 설은 물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언제부턴가 길어진 장마. 진과 설은 장마로 인해 바다 수영과 달리기를 못하게 되자, 인천 송도에 최대 스포츠파크인 송도 트라이센터를 찾는다. 각자 수영과 달리기를 하던 중, 기괴한 소음을 느낀다. 먼저 최하층인 5층에서 수영을 하던 진이 수영장 벽을 타고 들어오는 적갈색 흙비린내 나는 물을 목격한다. 

 엘리베이터도 멈추고 물이 차오르는 5층에서 에스컬레이터로 탈출하던 진은 설을 만난다. 인플루언서인 설의 모습과, 자신이 못하는 달리기에 두각을 나타낸 설에게 알 수 없는 열등감을 느낀 진은 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하 3층부터 비상계단으로 오르던 진과 설은 지하 1층 출입문이 막혀 다시 2층으로 내려갔다가 대여섯 명의 사람들과 조우하고, 계속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급박하게 탈출을 주도한다. 

 그런 와중, 설은 강아지가 내는 소리를 듣고 탈출에서 이탈하고, 진은 자신의 트라우마와 원래부터 재수 없던 설의 모습이 더해져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러나 탈출이 시급했기에 결국 둘은 힘을 합쳐 건물 밖으로 탈출하고, 피할 곳을 찾던 중 떠다니는 패들보트를 잡아 구해낸 강아지 초코와 함께 올라탄다. 



경장편으로는 살짝 아쉽다


 상당히 좋은 소설이다. 아무래도 재난이 배경인만큼 상당한 긴박감이 필요한데, 중간중간 진과 설의 회상 부분이 섞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긴박감이 전달된 것 같다. 그리고 진과 설 주인공 두 명 모두에게 정반대의 트라우마를 심어줌으로써, 재난 상황에서 약간 상호보완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도 좋았다. 그리고 어찌 보면 둘 모두 가지고 있는 강아지에 대한 트라우마(물론 그 트라우마의 방식이 서로 다른 듯 하지만)가 결국엔 재난의 극복 후에는 서로에의 연결고리가 되어 상처를 서로 감싸는 요소가 된다는 설정 역시 따듯했다.

 하지만 확실히 경장편의 취약점을 극복하긴 쉽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서사가 매우 좋은 반면에, 살짝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마치 아름다운 그림에 일부 색칠이 안되어있는 느낌이랄까. 

 일단 소설 설정 상 수영과 달리기에 특출 난 재능이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재난의 극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없다. 이렇게 되면 그저 이 둘이 빗속을 뚫고 트라이센터를 찾게 되는 원인의 설명에 그쳐버릴 여지가 있다. 즉, 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대척점에 있다고 할만한 각자의 특출 난 재능이 소설에서 별 의미 없이 비친다는 것. 게다가 결국 마지막 탈출에서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달리기나 수영이 아닌 클라이밍이었다.

 또한 이 둘의 만남 역시도 각자 물과 달리기에 트라우마가 있는데 철인 3종경기를 했다는 부분도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설에 대한 진의 무조건적인 반감이나 열등감 역시 설명이 조금 부족하거니와, 반대로 진에 대한 설의 감정이 대립하지 않으면서 약간 진의 감정이 공허해지는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부분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그저 내 개인적인 성향이 더 크게 작용할 듯하고, 결국 작가가 하고 싶던 이야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끊임없는 움직임에 대한 요구와 결국은 상처를 같이 입은 사람들 간의 유대로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는 상당히 좋은 여운을 남겼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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