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gi Sogi Aug 30. 2021

광야에도 꽃은 피는가

낡은 일기

정말이지, 한동안, 내 안으로 깊이 깊이 잠겨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괴로움에 젖고, 외로움이 젖어들수록 깊이, 더 깊이 들어갔던 때가.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다가 옛날에 다 써버린, 그러나 차마 버리지 못한(난 다 쓴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노트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의 나를 들춰보며 한 장 장을 넘기다 작은 글씨로 눌러 쓴 글 하나를 발견했다. 괴로움과 외로움에 가득 젖어, 스스로에게 깊이 빠져든 예전의 내가 쓴 글이었다.


(주변에 해부학과 관련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창 요가강사를 준비하던 작년으로 보인다. 저런 글을 썼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희미한데.. 기억은 음식 투정을 하는 어린아이 같아서 쉽게 잊을 것들에는 참 무정한 모양이다.)




Rotator cuff 극상근 극하근 소원근 견갑하근

Harmate 유구골 ... (페이지 가득 해부학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


/페이지 하단/

비도 오고. 우울해지는 오늘 같은 날은.

그러나 나에게 낯설지 않은 이 감정은.

익숙해지지는 않는지,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히는 녀석.


외롭다? 이게 맞는 감정일까? 단순히 외로운 감정일까 이게? '외롭다'라는 말로는 충족이 되지 않는 듯한데... 뭔가 헛헛하고 공허하고 다소 답답하기도 한...


중요한 건 절대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건.. 너무 무모하다.


내 문제점을 외부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외부의 누군가에게 나를 위탁하고 맡기겠다는 것인데,


우선 외부의 누군가가 나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려고 할 만큼 이타적이지 않을 것이며 '적극적'인 소수의 사람들은 분명히 나에게서 무언가를 취하려는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정말 가까운 누군가는 진심으로 내 문제점에 귀를 기울이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외부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아닐테니.


결국은 내가 내 내부에서 일을 해결해야만 한다. 괴롭고 힘들겠지만 원래 옳은 길은 괴롭고 힘든 법이다.


/두 줄 이상의 공백/


27년을 살며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내가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으려 할 때마다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다는 점. (아, 예외는 두 차례 있었다. 이용당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괴로웠지만 난 계속 내 내부에 귀를 기울였고 자연히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이런 메모를 쓰는 데도 과거의 그 시간들이 중요하게 작용하였으리라 생각한다.


/또다시 잠시간의 공백/


비유하자면 광야에 내가 덩그러니 서 있고 시기 때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날이 좋고 따뜻해지면 광야에 그러고 서 있는게 그렇게 괴롭지 않다. 조금 있으면 따뜻한 날씨에 주변에 꽃이 피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연히 날이 사나워지면 너무 괴로워지는 거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도 없는 광야니까. 어쩔 수 없이 비바람을 몸으로 맞으면서 버텼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조금은 단단해져서 지금 또 비바람이 불고 있지만 서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춥지만. 힘들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스주의자의 함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