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술관에서 마주치던 사이였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2018년 여름, 내가 아직 런던에서 가이드를 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특히 인상주의 화가들의 방 내지는 그 직전 영국 화가들의 방에서 종종 마주치는 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스치듯이 만나면 플랏 메이트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게 나란 인간인데 이걸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면 이 어르신의 남다른 포스 때문이었다. 옷차림은 언제나 같았다. 체크무늬에 무릎까지 상의가 길게 내려오는 정장 세트, 앞쪽 주머니에 곱게 접어 넣은 하얀 손수건, 반질반질 윤이 나는 검정과 흰색 조합의 구두 그리고 여기에 조금 튀어 보이는 베이지색 중절모까지. 참, 또 있다 - 까만 선글라스. 이 정도쯤 되면 기억 못 하는 게 이상한 거다. 그는 항상 혼자였는데, 말없이 그림만 아주 진지하게 들여다보다가 총총 갈 길을 가버리곤 했다. 매번 비슷한, 아니 같은 그림인데도 질리지도 않으신가 보다 싶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셔널 갤러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보러 오는 걸 수도 있고, 어쩌면 밤새워 이야기해도 부족할 절절한 추억이 이곳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며칠 후 내가 그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건 영국 왕립 미술원 여름 전시회에서였다. 이 분을 본 순간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인사할 뻔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TV에서 하도 많이 봐서 연예인이 굉장히 친숙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다른 유명 배우와 막역한 사이인 것처럼 인사했다가 나중에 깨닫고 너무 민망했다는 어느 배우의 경험담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자주 보긴 했어도 그 어르신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으니 그냥 잠자코 있었다.
'역시. 오늘도 같은 복장이로군.'
그 할아버지는 어느 작품 앞에서 한동안 꼼짝도 않고 있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다른 날, 내셔널 갤러리 투어를 하느라 손님들이랑 윌리엄 터너의 그림이 있는 방에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나타나셨다! 이건 운명인가 - 그럴 리가 없지만. 또 휘적휘적 가버리시는 걸 한참 쳐다봤었다.
내가 런던에서 유난히 좋아하는 장면이 몇 가지 있었다. 나이에 관계없이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펍, 고운 파스텔톤의 원피스 정장을 차려입은 할머니들,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 공원에서 운동하며 깔깔대는 청소년들. 점심시간에 정장 입은 사람들이 공원에 아무렇게나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수다 떠는 모습, 홈리스에게 사 가지고 가던 음식을 선뜻 건네는 모습, 버스커에게 인사를 건네고 칭찬과 함께 흔쾌히 음반을 사는 모습, 유모차나 휠체어가 버스에 들어서면 당연하다는 듯이 공간을 비우고 흩어지는 모습. 그리고 전시회에서 자연스레 작품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
한국에서는 나이 드신 분들이 전시회에 가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전시에만 가서, 혹은 사람이 미어터지는 주말에만 가서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예술의 전당에서 종종 열리는 명화 전시회에서도 '노인' 관람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무료인 곳이 많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지만, 런던은 유료 전시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어르신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좀 안타깝다. 문화와 상황이 다르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지금의 한국 어르신 세대에게는 삶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과제였을 것이다. 평생 해본 적 없던 걸 나이가 들어서 새롭게 시도하는 데에는 또 얼마나 큰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가. 삼십 대인 나도 힘든걸. 그래서 런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더욱 부러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상의 여유와 자유가 우리나라 모든 계층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 나이가 들면 어떤 모습일까. 그냥,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 '잘'이라 함에는 많은 게 담겨 있지만 그게 경제적인 면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세상에는 얼마나 즐기고 누리고 감동할 게 많은가. '이 나이에 무슨'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것들 - 그게 사람이든 무엇이든 - 을 찾아다니며 눈에 많이 담았으면 좋겠다. 느끼는 바를 충분히 표현하고 그 귀한 말들을 입 밖에 내는 것을 주책이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가만히 있기만 해도 먹는 나이를 내세우지 않았으면 좋겠고, 염치와 부끄러움을 늘 기억하면 좋겠다.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이 되는 데 열심이었으면 좋겠다. 발 붙이고 사는 곳이 어디든 만족하고 주변에 가득 차 있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에 취해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