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승무원을 하며 찾은 인생의 선물

여행이 일상인 직업 승무원.

매일 짐을 싸고, 어디론가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삶을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여행에 대한 열정이 그리 크지 않은 사람으로 변화했다.


그러던 중 그를 만났다.

나보다 더 여행을 좋아하는 그를.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1년 동안 자신이 세계 일주를 하며 만난 각 나라들에 담긴 이야기를 나에게 전했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그가 좋았다.

그렇게 우린 3년의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하게 되었다.


남편 주변 친구들은 나에게 말했다.

승무원인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그에게 '항공권 할인 혜택'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그렇게 사랑하는 그와 함께하는 비행 겸 여행이 시작되었다.


뉴욕에서 보았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빛나는 야경과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치명적인 뉴욕의 추위를 기억한다.


파리에서 함께 손잡고 구경했던 에펠탑과 추운 유럽 날씨를 이기기 위해 뜨거운 커피를 손에 들고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마침내 샹젤리제 거리의 나무에 일제히 불 켜진 로맨틱한 순간도 기억한다.


우리가 함께 한 발리, 방콕, 하와이, 일본 각각의 나라마다 담겨있는 이야기들이 다르다.


그와 함께한 여행은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와 함께하는 여행을 마음 편하게 즐기진 못했다.

그 당시 나는 비행을 하며 석사와 박사 공부를 했었다. 어디론가 떠나는 비행기에서는 논문을 보거나, 휴양지 호텔 반신욕하는 욕조에서도 과제를 들고 있었다.


그와 함께했던 여행은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비행과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느새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내 곁엔 사랑하는 그와 그를 닮은 두 명의 아이가 생겼다.


우연히 본 그와 나 단 둘이던 신혼시절 해외 어디선가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 그때 피곤했지만 함께 여행 다니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여행을 가는 게 남는 거야."


처음엔 공감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나는 늘 해외를 나가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와 함께 살아온 지도 10년이 되어가면서 나의 생각도 점점 바뀌게 되었다.


나도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는 것들이 있는데,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 부분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

내 볼을 스치는 기분 좋은 여름 바람.

야자수가 흔들리는 푸른 하늘을 보며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이곳은 파타야다.


7일 휴가가 나왔다.

아이들도 즐겁게 놀 수 있고, 어른들은 맛있게 먹고,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파타야, 방콕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눈엔 야자수가 샤르륵 흔들리는 수영장에서 신나게 웃으며 수영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렇게 7일의 휴가를 즐겼다.


오랜 시간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하니 25개월이 된 둘째는 그 사이에 부쩍 말이 늘었다.

많이 안아주고, 지금의 예쁜 모습들을 눈에 많이 담았다.


아빠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생의 길이를 늘이는 것.


누군가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의 시간 속에서 평범하게 보내는 일상은 기억 속에서 쉽게 지나간다.


하지만 여행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24시간은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만들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나는 사람은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버지의 유언이 기억이 난다.


지구에 태어나
세상을 살며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반짝이는 너희 둘이 태어나
함께 행복한 시간 많이 보내서
 아빠는 삶에 후회가 없어."


호스피스 병동 침대에 기대어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주시던 죽음 앞 아버지의 말씀에서 나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지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찾았다.


 

잡을 수 없는 시간.

유한한 삶에서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인생의 선물은
 여행이란 것을.

인생에 기억하고 싶은
행복한 순간들을
많이 남기는 것.

그것은 오롯이
 나라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남는다는 것을.









*이미지 출처: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