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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에 Aug 13. 2022

1. 쳇바퀴

새벽 5시.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잠을 자던 이사무가 눈을 뜬다. 조용히 스마트폰의 잠금화면을 풀고 미국 증시의 마감상황을 확인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미국 증시의 주요 지수가 하락 마감했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이 모여 있어서 매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던 미국의 주가는 이사무가 투자를 시작하자 귀신 같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몸은 매우 피곤하나 이미 잠이 깨버린 이사무는 거실에 나와 '돈의 심리학' 책을 읽으며 짜증 나는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한다.

6시 30분. "아빠. 배고파"라는 말과 함께 이스타가 방에서 나온다. 블랙핑크처럼 유명한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이스타는 올해 9살이 되었다. 신생아 때부터 새벽에 이사무가 분유를 먹여서인지 아직도 새벽같이 일어나 먹을 것을 달라고 한다.

"뭐 먹고 싶은데?"

"핫도그 있어?"

"응. 전자레인지로 데워줄게"

"케첩으로 하트 그려서 먹어야지"

해맑게 웃던 이스타가 어느새 핫도그를 다 먹고 어김없이 한마디를 던진다.

"아빠. 학교 가기 싫어."

"오늘은 또 왜?"

"수학 문제 푸는 날이란 말이야"

"이스타. 너는 가수 할 거니까 수학은 못해도 돼. 그래서 댄스학원 다니는 거잖아."

"그래도 가기 싫단 말이야!! 빨리 방학이 왔으면 좋겠어"

이스타는 아기 때부터 워낙 주관이 뚜렷한 아이라 재미없는 학원은 절대 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초등학교 2학년이 수학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할 때마다 이사무는 이스타가 참 독특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7시. 이사무와 이스타의 대화 소리를 듣고 이작가가 잠에서 깨어 나온다.

이작가는 인사도 없이 쿨하게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다. 올해 11살인 이작가는 어릴 때부터 워낙 책을 좋아해서 한글도 혼자 책으로 마스터했다. 할머니들은 이작가가 천재인 거 같다며 "커서 판사가 되겠다. 의사가 되겠다" 기대를 많이 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작가의 꿈은 웹툰 작가다. 학원 숙제를 하다가도 종이 한쪽에 자신만의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곤 한다.

"이작가. 웹툰 작가로 성공하려면 그림만 잘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야. 스토리가 좋아야 돼"

"나도 알아. 그래서 조금씩 글도 쓰고 있어. 근데 다른 웹툰 보려면 스마트폰을 사줘야지. 키즈폰으론 볼 수가 없잖아."

"할아버지가 사주신 노트북으로 보면 되잖아. 스마트폰은 게임이랑 유튜브 때문에 안돼"

"내 친구들은 다 스마트폰 쓴단 말이야. 4학년 중에 키즈폰 쓰는 애는 나밖에 없어"

오늘 아침도 이작가는 자신만의 특기인 소리 내지 않고 울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7시 30분. 이사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김실장이 비몽사몽 등장한다.

올해 11년 차 부부인 이사무와 김실장은 포옹으로 아침 인사를 대신한다.

늘 그래 왔던 건 아니고 돈 문제로 많이 싸우다 점점 사이가 멀어지는 걸 느낀 이사무가 어느 날부터인가 먼저 포옹으로 아침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사무는 대한민국 중앙부처 공무원이다. 주사보(7급)로 시작해서 4년 후에 주사(6급)가 되었고 이후 9년을 고생한 끝에 사무관(5급)으로 승진했다. 8년 동안 이주사로 부르던 김실장에게 "이제 이사무관님이라고 불러야지" 했더니 너무 길다며 '이사무'로 부르기 시작했다.

김실장도 이사무가 사무관으로 승진하기 전까지는 김비서였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라는 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보길래 이사무가 붙여준 별명이다.

이사무가 승진하고 나서 김비서도 비서실장으로 승진시켜 주겠다며 '김실장'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다 모이자 오늘도 이사무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냉장고 안에 어린이용 주스랑 우유가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던데 왜 안 먹는 거야?"

"사과주스는 냄새가 싫고 딸기 우유는 맛이 없단 말이야" 이작가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한다.

"김실장. 당분간 애들 주스랑 우유는 사지 마"

"알았어"

"이스타. 너 어제 또 학교 문구점 가서 말랑이 샀지?"

"예뻐서 사고 싶은걸 어떻게 해. 친구들도 다 샀단 말이야"

"얼마 쓰지도 못하고 맨날 버리는걸 왜 자꾸 사. 또 그런 거 사면 용돈 안 준다."

"알았어. 근데 나 용돈 올려주면 안 돼? 내 친구는 일주일에 만원 받는단 말이야"

"용돈 올리고 싶으면 용돈기입장 써서 얼마나 부족한지. 왜 부족한지를 보여줘. 그리고 너처럼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 살면 나중에 커서 거지꼴을 못 면해!!"

이사무는 일주일에 천 원을 주는 용돈이 너무 적은가 싶다가도 주식투자로 손해 본 금액을 생각하자 더 큰소리로 짜증을 내게 되었다.

아침부터 어색한 집안 분위기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집을 나온 이사무는 최근에 본 '나의 해방 일지' 드라마의 OST를 들으며 "나는 언제 회사생활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공무원 외벌이로 경제적 자유를 얻어서 조기 은퇴를 하는 게 가능할까?"라고 생각한다. 그리곤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처럼 매일 똑같은 날 중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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