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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에 Aug 13. 2022

2. 흙수저

"아빠. 나는 무슨 수저야?" 밥을 먹던 이작가가 이사무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친구 중에 수연이라고 있는데 걔는 금수저래. 책가방도 4개나 있고 집도 엄청 넓대"

"너는 흙수저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던 이사무가 잠시 생각을 하다 대답했다.

"왜? 아빠 돈 없어?"

"응. 없어. 공무원은 원래 돈 많이 못 벌어. 그냥 안정적인 직업이라서 인기가 좋은 거야"

"이 집도 아빠 꺼 아니야?"

"이 집 살 때 은행에서 받은 대출이 1억 원 넘게 있어. 그거 아빠가 다 못 갚고 죽으면 큰딸인 네가 갚아야 돼. 그러니까 넌 흙수저야"

"아니야. 아빠가 사무관인데 금, 은, 동 중에 은수저는 되지" 이사무의 직설적인 대답에 놀랐는지. 아니면 어린 이작가의 마음이 걱정되었는지. 김실장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수습에 나선다.

이사무도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에서 태어난 친구들이 부러웠던 때가 있었다. 주변에 논밭이 많은 경기도 외곽에 살 때는 모두가 비슷한 형편이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서울 시내로 이사를 오면서 빈부의 격차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주거형태가 단독주택이었고 대문에는 그 집주인의 이름이 쓰여있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사무가 처음 이사 간 집은 단독주택 담장 끝쪽의 작은 철문을 열고 내려가는 반지하 집이었다.

처음에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다가 같은 반에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자신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사무의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가는 길에 그 여자아이의 단독주택 집이 있었는데 정원도 넓고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이사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걸 눈치챈 어머니가 그 아이의 엄마와 친해져서 그 집에 놀러 가자고 했는데 싫다고 했다. 나중에 그 친구도 이사무의 집에 초대해야 할 텐데 반지하에 살고 있는 게 창피해서 도저히 부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한마디도 나눠 보지 못하고 이사무의 짝사랑은 끝이 났다.

이사무의 중학생 시절에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큰 빚을 지게 되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채권자들이 집에 와서 이사무의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결국 이사무는 어머니와 함께 근처 건물 지하에 있는 방하나에서 살게 되었다. 내부에 화장실도 없어서 건물 1층에 있는 화장실을 다른 방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사용해야 했다. 화장실 안에서 볼일을 보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갑자기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와서 서로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사무의 어머니도 돈을 버느라 집에 신경을 쓰지 못해서 방안 곳곳에 퍼져있는 곰팡이는 한 식구처럼 같이 지내게 되었다.

다른 방에는 근처 유흥가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주로 살았는데 새벽이면 술에 취해서 욕하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사무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 집에는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한 친구 두 명이 새로 이사 간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아무리 부탁을 해도 모두 거절했다. 하루는 그 친구들이 이사무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일부러 모른척하고 한참을 다른 길로 가다가 좋아 보이는 단독주택 대문 앞에서 벨을 누르고 들어가는 척 벽에 숨었다. 친구들은 멀리서 한참을 쳐다보더니 사라졌다.

친구들이 없는 걸 확인하고 지하 단칸방으로 돌아오면서 이사무는 몇 번을 다짐했다.

"이건 내 인생이 아니라 부모님 인생이야.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건 내 책임이 아니야. 나는 나중에 커서 절대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내 아이한테 이렇게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하지 않을 거야. 꼭 부자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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