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표영어의 수혜자였을까, 마루타였을까?
“싱아이나루 소노꼬. 센큐 핫큐 하찌쥬 니넹 공아쯔 쥬~고니찌. 하~이 소노꼬. 와따시와 쟈넷또 브라웅. 토시와 쥬닛사이데 오탄죠비와 싱아쯔 하쯔까요.”
초등학교 2학년 즘으로 기억한다. 이 일본어 테이프를 듣기 시작했던 건. 우리 가족이 서울, 그것도 학구열이 높기로 소문난 곳 중 하나인 목동으로 전학을 온 이후 무렵이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우리 집 안에는 하루 종일 일본어, 영어, 중국어를 포함해서 8개국어의 생활언어 테이프가 흘러나왔다.
집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이 다양한 언어들이 무슨 뜻인지 알 리 만무했다. 워낙 순서도 다르고, 내용도 달랐다. 반복에 반복이 거듭되서, 어느 순간 무슨 언어인지 파악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기억하기로 이 테이프에는 8개국어의 상황별 회화가 랜덤으로 녹음되어 있었다지.
엄마가 언제부터 나에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신 건지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결혼하고 출가하기 위해 짐 정리를 하면서, 엄마가 읽던 유대인의 양육법에 관한 책들을 몇 권 발견했을 뿐. 하지만 고작 책 몇 권 읽었다고, 엄마가 이 방법(엄마표영어, 소리 노출 환경)이 소위 ‘먹힌다’ 혹은 '그렇지 않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우리 엄마는 영어를 글로 배운 사람이니까.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의 마루타였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나와 내 동생에게 제공해주려 육아서를 읽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매일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뒤로 한 채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하루도 빠짐 없이 소리 노출 환경을 만들어주셨다.
그 결과, 나는 소리에 매우 예민하고, 미세한 디테일도 잘 잡아내는 아이가 되었다. 워낙 다양한 언어를 듣고 자라서인지 영어 발음 역시 나쁘지 않다는 평을 받는다.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 발음 지적질을 당하는 건 논외다. 나 영어 좀 한다는 여잔데 말이지..)
나의 어렸을 적 이런 경험은 내가 첫째와 둘째에게 엄마표영어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내가 직접 경험해 보았기에 어떤 것이 효과가 있고, 어떤 것이 의미 없는 노출인 지에 대해 이미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한국인 엄마들처럼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하는 불안함은 없었다. 큰 목표나 로드맵이 없었을 뿐, 내가 생각하는 방향성 역시 확고했다.
엄마표영어를 하는 엄마들이 엄마표를 꾸준하게 하지 못하고, 결국 포기하고 학원으로 돌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엄마가 영어를 잘 하고 못 하고의 문제도 아니고, 방향이 잘못되어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엄마들은 이 길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이 길이 맞다는 '확신'이 없어서가 아닐까.
나에게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환경을 제공해 준 우리 엄마는 아직도 영국인 사위와 대화할 때면, 단어 몇 개를 겨우 영작해서 더듬더듬 말하신다. 이마저도 어려우면 그냥 한국어를 쓰신다. 알아들을 테면 알아들으라지 정신인가. 눈치로 한국말을 알아듣는 신랑과 대놓고 한국말을 쓰는 엄마의 대화가 통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지, 우리 엄마는 영어를 글로 배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