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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maPD Jan 05. 2025

화목할 결심

수영장에 미친 여자

 "저 운동량이 많지 않은 반에 가고 싶어요."

 "지금 접영반 밖에는 자리가 없어요."

 "접영이요? 네, 그럼 화목만."


 일 년 전 갑상선암으로 겨드랑이 로봇수술을 한 곳이 여전히 묵직하다. 간호사 선생님이 나눠준 목, 어깨 스트레칭도 열심히 해오고, 휴직 기간에 필라테스도 꾸준히 배웠다. 이제 진짜 좋아하는 운동, 수영. 그녀를 만날 차례다. 하고는 싶은데, 잘할 수 있을지? 막상 등록하려니, 무자비로 돌리던 힘든 수영강습이 떠올랐다. 가볍게 등록만 해두자. 회원이라면 언제든지 2천 원에 자유수영이 가능하다니. 여긴 내 앞마당의 내 수영장이 아니던가. 




 한창 부부가 류현진 투수에게 빠져있던 신혼 때, LA다저스 경기를 보러 미국에 갔었다. 그때 로스앤젤러스 외곽 한 에어비앤비에 머물렀는데, 그 집에는 다정한 노부부와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수영장이 있었다. 대대로 살고 있는 100년도 넘은 집이라고 했다. 오랜 기간이 무색할 만큼 잘 관리된 정말 아름다운 집이었다. 우리는 포근한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햇살이 떨어지는 수영장에서 가벼운 물장구를 쳤고, 야외테이블에 직접 준비해 주신 아침을 먹었다. 스코틀랜드 가문의 레시피로 갓 구웠다는 스콘이었다. 그 집에서의 따뜻한 경험은 내 안에 깊은 로망으로 새겨졌다. 수영장이 있는 집에 살고 말테야.  




 서울에 수영장이 있는 단독주택을 꿈꾼다는 건 너무 파티풍선 같은 이야기일까. 금수저가 아닌 우리는 직장 가까운 작은 오피스텔에서 시작했다. 수영장이 아니라 욕조 하나 딸린 집을 짓는 것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때쯤 남편의 꿈도 사대문 안에 집 짓기였지만, 세월은 우리를 전혀 다른 공간으로 안내했다. 시월드. 우리는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부모님을 섬기는 삶을 선택했다. 시부모님 107동, 고모 105동, 그리고 우리 101동. 수박 덩어리 안의 검은 씨들처럼 우리는 한 단지 안에 모여 함께 붙어 헤엄쳤다. 나의 수영장 로망은 어디론가로 뱉어진 채로.


 내가 물을 좋아하니 아이들도 물이 좋았을까. 매일 욕조 목튜브로 단련된 남매는 수영을 가르치지 않아도 물개처럼 잘 놀았고, 수영을 가르치는 유치원에 보내면서부터는 금메달을 목에 걸어왔다. 코로나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기가 되었을 때, 나는 결단했다. 서울이 어렵다면 강원도는 어떨까? 땅을 사고, 농막을 짓고, 밭을 갈면서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그놈을 꺼냈다. "여보 수영장도 만들자."



 그럴듯한 수영장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족히 2천만 원은 있어야 가능한 로망은 대략 20만 원이면 가능한 차선책으로 옮겨졌다. 매번 아빠의 근력과 애정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코스트코 물놀이장이었지만, 그 시절 아이들에겐 워터파크였다. 나는 우리만의 간이 수영장에서 넥스트레벨을 꿈꿨다.  


 매일 수영하는 삶을 살고 싶다.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수영장 딸린 아파트! 수영장과 사우나가 있는 상암동 주상복합을 몇 년 전부터 계속 탐하고 있었으나 회사가 마곡으로 이전하면서 미련을 털었다. 시간이 금이요, 보금자리의 최우선은 직주근접이다. 지난해 4월 복직하고, 바로 회사 5분 거리 아파트로 전입을 결심했다. 이사 온 집과 회사 사이, 상가건물 지하에 수영장이 새로 생겼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건 신이 내게 준 선물이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코딱지만 한 수영장 관리비용과 노동력을 이미 다 계산하고 경험해 본 터, 나는 이곳이 내가 적은 비용으로 빌려 쓰지만 청소는 안 해도 되는 내 마당의 최적의 풀이라 뇌에 품었다. 정문으로 구획이 나눠졌을 뿐, 다른 동까지의 거리보다도 훨씬 가까운 수영장. 가는 길이 귀찮아 안 갈 수가 없는, 진짜 엎어지면 코앞 무핑계 풍덩 수영장.





 그리하여 5개월째 화목한 수영을 이어오고 있다. 강습시간과 생방송이 겹친 날을 제외하고는, 자유수영이라도 꼭 화목할 결심을 지켜왔다. 매일 운동과 화목한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꼬박 수영을 하면서 심장의 뜀박질을 느껴온 내가 새삼 대견하다. 물론 수영장이 가깝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중요한 또 다른 동기부여 비밀이 있는데…

(다음 편에 풀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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