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111 '나는 누구일까' 이어 쓰기
일전에 용산 쪽에 사는 이가 나를 초대했는데, 그쪽 지리에 어두운 나를 위해 남영역까지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주겠다고 했다. 시간이 안 맞는 경우 몇 번이라도 역 주변을 돌겠노라고 하면서 차 번호랑 핸드폰 번호까지 알려주었다. 나는 남영역이라는 데는 처음 가보는 데라 어디서 어떻게 갈아타야 되나 전철 노선표를 펴놓고 꼼꼼하게 예습을 하고 나서 떠났다. 요즘처럼 주차 사정이 나쁜 때는 그저 차 얻어 타는 쪽에서 먼저 가 있는 게 수라는 걸 알기 때문에 약속 시간보다 15분가량 먼저 남영역에 도착했다. 나는 만 원짜리 회수권을 쓰는데 그게 그때 마침 다 되어 표는 되돌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큰일이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마중 나오기로 한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 군데 서 있는 것도 거치적댈 정도로 역 주변의 인도는 좁고도 복잡했다. 20분, 30분이 지나도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약속이 뭔가 잘못된 모양이었다. 아마 이럴 때 써먹으라고 핸드폰 번호를 알려줬지 싶어 번호를 적어놓는 쪽지를 찾았다. 그 쪽지를 지갑에 찔러 넣은 생각은 나는데 핸드백 속에 지갑이 없었다. 나는 지갑을 빼놓고 핸드백만 들고 나오기를 잘하지만 소매치기를 당했을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어서 우선 집에 전화를 걸어봐야 할 것 같았다. 전화카드도 핸드백 속에 없길래 잔돈을 찾았다. 워낙 큰 백이고 안주머니와 겉주머니까지 있는지라 잔돈푼이 숨어 있을 데가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넣고 휘저어봐도 십 원짜리 한 푼 만져지지 않았다. 시간은 약속 시간에서 거의 한 시간 가까이나 경과하고 있었다.
나는 차를 기다리는 걸 단념하고 남영역사 안으로 들어가서 계단에 자리 잡고 앉아 본격적으로 핸드백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정리하지 않은 온갖 잡동사니들을 다 쏟아놓고 바닥까지 훑어도 어쩌면 땡전 한 푼 안 나왔다. 복잡한 역사 안에서 내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내친김에 수첩 갈피까지 뒤지고 나서 쏟아놓은 것들을 수습했다. 그때까지도 가까운 은행만 찾으면 현금카드로 돈을 찾을 수 있으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드도 지갑과 함께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더럭 겁이 났다. 나를 이 낯선 곳에 세워놓고 마중을 나오지 않은 이에 대해서도 분노보다도 걱정이 앞섰다. 지갑도 궁금하고 궁금한 것 천지인데 달아볼 방법이 없었고, 첫째 돈 없이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아무런 묘안도 떠오르지 않았다. 만 65세만 넘으면 노인증이나 주민등록록증만 보이면 공짜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돈을 버는 노인이니까 돈 내고 표사서 다니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이야말로 그따위 잘난 척을 할 형편이 아니었다. 공짜 표를 청하러 창구로 가려다 말고 생각하니 노인증은 아예 발급도 안 받았고 주민등록증도 잃어버린 지갑 안에 있으니 이를 어쩔 것인가.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에 벼락 치듯 내 맹한 정신을 때렸다.
여기서 우리 집이 도대체 몇 리나 되며, 방향은 어느 방향일까? 여기도 같은 서울 시내일까? 나는 갑자기 남영역 주변이 서울의 어떤 곳과도 닮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길을 잃은 게 서울이 아닌 어느 먼 낯선 도시처럼 여겨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여기가 어딘지 알기 위해서,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빨리 집안 식구 누구 하고라도 연락이 닿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무슨 수로 전화를 걸 것인가.
남영역 앞 인도에는 전화 부스가 열 개 가까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현금으로 걸 수 있는 데를 지키고 서서 누군가가 돈을 남겨놓은 채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고 나오는 데가 없나 잔뜩 눈독을 들이고 기다렸다. 그날따라 아무도 거스름돈을 남겨놓지 않았다. 길에 나가면 가끔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독자를 만나게 된다. 돈 남은 공중전화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자 남은 희망은 단 하나, 누가 나를 알아보는 거였다. 나는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가 승객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계단 밑에 턱 쳐들고 서서 누가 나를 알아보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누군가가 "박완서 씨 아니세요?"하고 말을 걸어온다면 그렇다고 하고 나서 500원만 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한테 아는 척을 안 했다. 혼잡한 통로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모두 귀찮다는 듯이 밀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거기서 어딘지 종잡을 수 없는 아득한 마음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는 더 막막한 무서움증으로 변했다. 도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 카드나 주민증 없는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그때 내가 남영역에서 잃은 건 지갑도, 길도 아니라, 명함만 한 주민증이나 카드에 불과한 나 자신이었다. 다행히 역전엔 빈 차가 많이 늘어서 있었다. 선금 없이 집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러나 나는 선뜻 타지 못하고 기웃대며 카폰_car phone_이 있는 차를 찾았다. 전화를 통해서라도 내 자식이건 친구건, 아무튼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기 전엔 그냥 집으로 가봤댔자 집에 아무도 없을 수도, 혼자 문 따고 들어간 집에 돈도 지갑도 없을 수도 있었다.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엥? 정말 이렇게 끝난다고요?
▶ 창작 스타트!
"저, 카폰 좀 쓸 수 있을까요?"
"아니, 박완서 작가님 아니세요?"
나를 알아보셨다. 기사님이 나를 단번에 알아봐 주셨다. 지갑하나 잘 챙기지 못하는 500원짜리 동전만큼도 못한 오락가락 늙은이를 알아보시고, 팬이라면서 우리 집까지 요금도 받지 않고 데려다주셨다. 보조석 앞 수납칸에는 정말로 내 첫 소설 '나목'이 사랑 많이 받고 여러 번 읽혀서인지 손때 묻어 있었다. 지하철도 공짜로 타는 법이 없는 사람인데, 그냥 내릴 수는 없었다. 감사의 인사로 무어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핸드백 안의 온갖 잡동사니 중에 그나마 작가협회에서 받은 만년필이 눈에 띄었다. 책에 사인을 해드리면서 정말 감사하다고 만년필을 함께 선물했다. 막막하게 느껴졌던 남영역부터 우리 집까지 거리는 기사님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어서인지 짧게 느껴졌다. 나를 알아봐 주시는 독자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날 나는 지갑을 집에 두고 나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