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체크인을 보고
나는 '미래'라는 강아지를 1년 넘게 임시보호한 경험이 있다. 사설 유기견 보호소에서 태어났기에 '유기견'이라고 하기엔 약간 어폐가 있는, 8키로 정도의 진도믹스. 운 좋게도 국내로 입양되어 아주 좋은 보호자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내게는 어쩐지 무겁게 남아있는 '미래'와의 기억을 캐나다 체크인을 보면서 자꾸 떠올리게 된다.
'미래'를 임시보호하게 된 계기는 아주 간단했다. 납작한 선의, 그리고 기존에 키우고 있던 두 마리 강아지들에게 기간제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이기심. 그 두 마리도 유기견이었기 때문에 유기견과 함께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도 한 몫했다. 둘에게 위해를 끼칠 수 없는 적당한 크기와 사회성에 대한 코멘트를 참고하여 '미래'를 골랐다. '미래'는 보호소에서 태어나 엄마와 형제들과 계속 함께였기 때문에, 대견 (강아지를 대하는) 사회성이 특히 좋았다. 으쓱한 마음으로 신청서를 채워서 보내고,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보호소 봉사자와 전화 인터뷰를 하던 나에게 동생은 "언니가 선의로 임보 해주는 건데 왜 그렇게 쩔쩔매면서 굽신대? 임보 안 한다고 해버려."라고 짜증을 냈다. 실제로도 불쾌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인, 그런 '검증' 과정을 거쳐야 했다. 현재 키우는 강아지들의 산책 시간 및 가족 구성원의 출퇴근 시간 같은,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변명하고 증명해야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의문들과 절차들이었다. 실제로 이 까다로운 절차들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반려 동물을 키워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임보를 시작하게 된 이후, 동생에게 "네 말대로 임보 하지 말 걸."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었다. 보호소에서 '미래'를 데려와 집 근처 동물병원에서 간단한 건강 검진을 했는데, '미래'는 심장사상충이 있었다. 보호소 근처 병원에서 검사를 했더라면, '미래'를 포기하는 게 쉬웠을까? 아니면 심장사상충이 발견됐다는 걸 보호소에 알릴 때, 임보를 포기한다고 할 걸 그랬나? 임보 하는 기간 동안 울컥울컥 후회가 올라왔지만, '선한 나'에 취해버린 당시의 나는 그대로 '미래'를 집으로 데려와 치료하기로 했었다. 심장사상충을 치료하는 3개월 동안은 유예기간으로 삼자며. 하지만 유예기간은 필요가 없었다. '미래'는 심장사상충이 완치되고도 1년 가까이 입양 신청이 없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입양 신청은 있었다. 대부분 전화 면접에서 반려되어 임보자인 나에게 닿지 않았을 뿐. 평생 '미래'를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중압감과, 처음부터 '손님'으로 생각했던 '미래'가 가족이 되었을 때의 너무나도 선명한 단점들에 짓눌려있을 때, 유력한 임시 보호자 후보가 있다는 연락을 전해 들었다. '미래'를 가족으로 맞기 위해 목줄도 사두시고 세나개를 많이 보고 계시다는. 드디어 '미래'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고 괜스레 '미래'를 한 번 더 쓰다듬기도 하고 곁을 내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몇 번의 전화 면접 끝에, 그분은 임보 의사를 철회했다. '미래'는 영문도 모르고 다시 '저리 가'라는 손짓에 밀려야 했다.
(당시의 나는 너무 까다로운 입양 절차를 내세우는 보호소에 화가 났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분은 강아지를 키워선 안 되는 분이었고 그렇게 필터링된 게 '미래'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주로 이런 장면들이다. 사랑을 바라는 강아지에게 눈치를 주고 밀어내는 장면들. 늘 기존의 강아지들에게 우선순위를 주고 '넌 세 번째야'를 상기시켰던 목소리. '미래'에게 잠깐 무릎을 내줬다가도, 내 가족인 두 마리의 반려견들이 다가오면 망설임 없이 내려놓았던 손길.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먹기 싫어하는 '미래'에게 화를 내며 입을 억지로 벌려 씹게 했던 기억. 내 강아지들에게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는 나를 돌이키며 자책을 반복하게 되는 것도 너무 괴로웠다.
물론 '미래'는 그런 취급을 당할 이유가 없는 아주 멋진 강아지였다. 친구를 만나 신날 때에도 정중히 놀자는 신호를 보낼 줄 알았고, 반려견 놀이터에서 총알 같이 뛰어갔다가도 내가 부르는 소리에 바로 달려왔었다. 분리불안이 없었고, 집에 손님이 왔을 때에도 짖지 않았고, 산책하다가 시비를 거는 친구가 있어도 신사답게 무시했다. 나의 두 강아지들에게 '미래'를 보고 배우라고 수도 없이 말했지만, 결국 그들은 여전하다.
첫째 강아지가 디스크 때문에 걷지 못할 때, 봉사자분께 '미래'를 보호소로 돌려보내야겠다고 연락했었다. 책임감 없는 나에 대한 비난을 각오했었는데, 의외로 선선히 들어주셨었다. '미래'를 보호소로 데려다 주기로 한 날짜가 온갖 사정으로 몇 번이고 밀리고, '미래' 입양 홍보 계정에 보호소로 돌아가는 디데이가 빨간 글자와 이모티콘으로 도배될 때, 지금의 입양자분이 입양 전제 임보를 신청하셨다.
'미래'를 만나보러 우리 집에 처음 오셨을 때, 나는 혹시 또 의사를 취소하실까봐, 직접 보니까 생각보다 크다고 하실까 봐 마음을 졸였다. 그러나 그분은 세 마리의 강아지가 날뛰는 집에서 '미래'만 바라보고 쉬지 않고 쓰다듬어 주셨다. 사진보다 작지 않냐고 연신 되묻는 나의 말에도 그렇다고 성실히 응대해 주시고. '미래'는 원래 사람을 좀체 따르지 않고, 집에 손님이 오면 방에 숨어있곤 했다. 그런 '미래'가 입양자분이 잠시 화장실에 갔을 때 화장실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운명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캐나다 체크인에서는 임보 하던 강아지를 해외로 보내는 임보자가 펑펑 울던데, 그 장면에서 나는 내가 조금 싫어졌다. '미래' 입양자를 만나고 난 후 보내기로 한 날까지 나의 하루하루는 의심과 불안함과 입양자에게 취소 연락이 오는 악몽들이 가득했다. '미래'의 앞날에 대한 축복이나 걱정보다 내 부담감과 해방감만 생각하다니 너무 이기적이잖아! 솔직히 어디 말하기에도 부끄러워서 고해성사처럼 글로 써보는 것도 있다. 아무튼 '미래'를 보내는 날 나는 울지 않았고, 시원섭섭이라고 하기에도 시원 99 섭섭 1인 위선적인 그런 감정이었다.
'미래'가 입양 간 후로 '미래'를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미래'는 나를 알아보고 겅중겅중 뛰면서 달려들었고, 나는 '미래'의 발에 채이는 둘째 강아지를 안아 드느라 감동의 재회라기엔 어쩐지 그림이 어정쩡했다. 나는 그때도 딱히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입양자분은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단발머리였는데, 산책을 할 때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지나가면 '미래'가 꼭 돌아본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집 첫째와 둘째 강아지는 같은 말티즈인데, 웃기게도 사교성 좋은 '미래'가 유독 말티즈만은 외면한다고 했다. '미래'는 한 사람의 오롯한 사랑이 필요했던 강아지였나 보다.
캐나다 체크인에서 공손이와 헤어질 때, 멀어지는 이효리와 공길을 계속 돌아보는 공손이를 보며 '미래'가 많이 생각났다. 다시 만났던 '미래'와 주차장에서 헤어질 때, '미래'는 입양자 분을 따라가면서도 자꾸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면서도, 착실히, 떼쓰지 않고 입양자분과 함께 총총 걸어갔다. 진짜 가족이 누구인지, 돌아가야 할 집이 어디인지 '미래'도 '애로우'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미래'가 너무나도 좋은 가족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sns를 통해 보면서도 내가 '미래'에게 잘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 추억들을 묻어두었었는데, 캐나다 체크인을 보면서 자꾸만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내가 주지 못한 평온을 누리고 있는 '미래'. 결과가 좋다는 이유로 내가 '미래'를 냉대했던 날들을 추억해도 되는 걸까. 다른 임보자들은 온 마음으로 임보견을 사랑하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던데, 나도 그들과 함께 이효리에게 밥을 얻어먹어도 될까.
'미래'를 임보 했던 사실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미래'와 함께하면서 정말 많은 것, 예를 들어 사회성이란 이런 것이구나, 같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미래'는 내가 아니었어도 행복해졌을 거라고 확신하지만(미래는 그만큼 멋진 강아지다), 지금의 행복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에 만족한다. 앞으로 임보를 또 하게 된다면, 기한이 정해진 임보를 하는 게 마음의 안정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 뿐.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짓눌려 '미래'와의 시간을 소중히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
그래도 나의 죄책감을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적었으니, 앞으로는 갤러리에 '미래' 사진이 보이더라도 무거운 마음으로 넘기지 않고 유심히 봐야겠다. 가슴줄과 목줄을 이중으로 하고 처음 산책을 나왔던 '미래', 산책인지도 모르고 제자리에서 벌벌 떨었었는데 어느새 누구보다 빨리 달리게 된 '미래', 손을 내밀면 배를 보이던 '미래'. 안부를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행복하고 행복한 기억들로만 '미래'의 하루가 채워져 가기를.